[안치영의 메디컬와치]정원 늘리는게 답 아냐…갈 곳 없는 간호사
by안치영 기자
2025.03.25 17:10:22
17년새 면허 취득자 2.1배 늘어…정원 '3만명'
취업 절벽·교육 질 하락 우려…처우 개선부터
[이데일리 안치영 기자] 한 전문대 간호학과장은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가 실습병원 구하기라고 토로했다. 간호학과는 간호사 임상 실습을 위한 병원이 있어야 하는데 전문대 입장에선 이러한 병원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한다. 병원은 예비 간호사를 가르칠 실무진을 추가로 배치해야 하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가고, 혹여 안전사고라도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해 실습병원 협력에 적극적인 곳이 많지 않다. 간호학과장뿐만 아니라 교수 전부가 실습병원 구하는데 나서는 이유다.
 | (그래픽=김일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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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인력 부족을 이유로 간호학과와 간호대 정원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수련의 질이 낮아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 또한 커지고 있다. 현장에서 근무하는 간호사가 늘긴 했지만 많은 정원이 투입된 만큼의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간호사 처우와 교육 인프라 개선 없이 정원만 늘린 정책이 어떻게 왜곡되는지 살펴볼 수 있는 대목이다.
2000년대 이후 간호학과를 가진 대학·전문대학은 200개를 넘어설 정도로 늘어났다. 학과가 늘어나면서 간호대 입학정원도 매년 증가했다. 간호학과 정원은 2021년 2만 1443명(정원외 포함 2만 7129명)에서 2025년 2만 4560명(3만324명)으로 늘었다. 2025학년도 수능에 응시한 재학생 수 34만 777명 대비 8.8%에 달한다. 학령인구 대비 8% 이상이 간호사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의미다. 정원 증가에 따라 연간 배출되는 간호사 수 또한 함께 증가했는데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에 따르면 신규 간호사 면허 취득자는 2008년 1만 1333명에서 2025년 2만 3760명으로 17년 만에 약 2.1배 증가했다.
간호학과와 간호대생은 늘어났지만 실습병원 숫자는 거의 그대로다. 간호학과 중 의대와 수련병원을 함께 가진 대학은 40곳에 불과하다. 실습협약을 맺을 수 있는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 숫자 또한 200곳에 못 미친다. 간호학과 실습기관으로 인정받으려면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이거나 300병상 이하 의료기관 중 독립된 간호부서를 갖추고 있는 병원이어야 한다. 이러한 기준을 갖춘 병원은 그리 많지 않다.
여기에 더해 취업 간호사 수가 포화 상태가 임박했다는 징조도 보인다. 최근 대한간호협회가 작성한 ‘전국 간호대학 입학정원 및 요양기관 활동 간호사 현황’ 자료를 보면 병원급 이상(요양병원 제외)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수는 2022년부터 증가세가 둔화됐다. 2021년 전년대비 1만 5305명이 증가했지만, 2022년에는 1만 2354명으로 둔화했고 2023년에는 1만 2280명으로 다시 소폭 감소했다. 특히 의정갈등이 시작된 2024년에는 코로나 유행 시기였던 2021년보다 30%(4574명) 가까이나 감소한 1만 731명이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를 반영, 정부는 간호사 취업난을 고려해 2026년 간호대 정원을 전년도 수준으로 동결했다.
간호계는 아무런 대책 없이 간호대학 입학정원을 늘리기만 하면 교육의 질이 더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한다. 실습 환경 및 교수진 확보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무리한 증원은 간호사로서의 역량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채 현장으로 나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간호계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교육 인프라를 개선하고 간호사 처우를 향상해 미취업 간호사의 복귀를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쩌면 지금 간호사가 겪는 어려움이 훗날 의사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지 않을까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