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이상직 입김?…금융당국 "이미 대세 기울었었다"
by유현욱 기자
2020.10.28 16:33:20
KKR-보고펀드, 한국토지신탁 대주주 변경 승인안 논란
2015년 2월17일 이후 사실상 적격성 심사 중단돼
[이데일리 유현욱 기자] 이상직 무소속(구 새정치민주연합, 현 더불어민주당 탈당) 의원이 수년 전 자신과 관련 있는 기존 최대주주를 감쌀 목적으로 금융당국의 ‘한국토지신탁 대주주 변경 승인’에 대해 사실상 비토권을 행사한 정황이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은 이미 내부적으로 대세가 기울어진 뒤에 일어난 일로, 이 의원 발언이 미친 영향은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28일 이데일리가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금감원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 경과 문건’에 따르면 지난 2015년 2월17일 이후 사실상 심사가 중단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금감원은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가 현지 금융 관련 법령에 따라 적법하게 등록된 금융회사인지 여부 등을 확인하기 위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사실조회를 의뢰했다. 물밑으로는 KKR에 국제신용평가기관이 발행한 신용평가보고서나 글로벌회계법인이 작성한 감사보고서를 주문했다. 또 최근 3년간 SEC로부터 행정처분을 받은 적이 없음을 증명하는 자료도 요구했다. 시간순으로 심사 경과를 따라가며 이슈를 되짚어본다.
①2014.9.29. 파이어니어인베스트먼트, 한토신 주식 취득 위해 금융위원회에 대주주 변경 승인 신청
②2014.9.30. 금융위, 금감원에 심사의견 의뢰
③2014.10.2. 금감원, 심사대상자에 대한 대외기관(검찰, 공정위 등) 사실조회 의뢰
지난 2014년 8월25일 한토신은 파이어니어가 2대 주주인 아이스텀앤트러스트와 아이스텀레드 PEF의 보유지분 31.6%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하며 경영권 분쟁의 서막을 알렸다. 당시 최대주주는 MK전자 측이었으나 대표이사는 아이스텀 측과 가까운 김용기씨로 두 가족이 한살림을 차리고 있었다.
파이어니어의 업무집행(GP)은 프론티어인베스트와 한화인베스트먼트 양사가 공동으로 맡았다. 출자자(LP, 유한책임사원)는 해외 설립된 특수목적회사(SPC) 3곳과 세종저축은행 등 국내기관 컨소시엄 1곳이다. SPC 3곳에 자금은 댄 것은 KKR이었다.
그런데 이들 SPC의 파이어니어 지분율은 각각 30%를 조금 밑돌아 ‘쪼개기’란 지적을 받았다. 이 의원 역시 후에 이를 거론한 바 있다. “(KKR이)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피하기 위해 ‘꼼수’로 한토신 지분 한 90% 넘게 출자하면서 3개의 SPC로 쪼개 가지고 들어왔어요.” 진의를 떠나 금융당국 또한 받아들일 만한 내용이다.
④2015.1.12. 파이어니어, 대주주 변경 승인 자진 철회
⑤2015.1.13. 파이어니어, 대주주 변경 승인 재신청·금융위, 심사의견 재의뢰
⑥2015.1.15. 금감원, 심사대상자로 추가된 보고인베스트먼트에 대한 대외기관(검찰, 공정위 등) 사실조회 의뢰
우회·편법 인수 가능성이 불거지면서 심사는 차일피일 미뤄졌다. 그러자 KKR은 보고펀드와 아이스텀 지분을 공동 인수하기로 전격 합의하며 승부수를 띄웠다. 인수 자금 중 약 50%를 각각 마련하고 의결권도 동등하게 갖는 조건이다. 이로써 GP는 프론티어인베스트, 한화인베스트먼트, 보고펀드 등 3곳으로 늘었다. 실질적인 KKR 지분율도 크게 낮아졌다.
⑦2015.1.21. 금감원, 금융위와 협의 후 KKR & Co. L.P.를 심사대상자로 선정
⑧2015.1.26. 금감원, KKR & Co. L.P.에 대한 대외기관(검찰, 공정위 등) 사실조회 의뢰
그러나 인수 구조를 변경해 일부 우려를 불식시킨 KKR-보고 측에 악재가 덮쳤다. 2015년 1월22일(현지시각) SEC는 투자자들이 원하지도 않는 서비스가 포함된 계약 조건을 수용하도록 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KKR이 투자자에 자금 운영 수수료를 더 많이 받았다며 이를 시정할 것을 요청했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이런 가운데 대주주 변경 승인의 건이 2월4일 증권선물위원회에 보고안건으로 상정됐다. 법리적으로 복잡하거나 금감원 부대의견이 있는 경우 바로 의결에 부치지 않고 보고안건으로 올려 증선위 위원들이 내용을 공유한다.
⑨2015.2.17. 금감원, KKR에 대한 미 SEC 사실조회 의뢰
⑩(2015.3.10.) 임종룡 금융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⑪(2015.3.13.) 임 위원장, 공식 취임
⑫(2015.3.30.) 한토신, 정기주주총회 개최
이 시기 금감원과 KKR-보고 측 간 심사를 둘러싼 줄다리기는 절정을 치닫는다. 금감원은 자본시장법 시행령상 대주주가 사모펀드이고 외국법인이 30% 이상을 출자했다면, 국제신용평가기관에서 발행한 보고서를 통해 재무건전성을 충족하는지, 최근 3년간 본국에서 행정처분을 받은 사실이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채권 발행이 없었던 KKR이 제출할 신용평가보고서가 없다면 글로벌 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받은 감사보고서나 행정처분 관련 사실을 증명하는 미 SEC 확인서가 있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KKR-보고 측은 30% 이상 지분 투자를 하더라도 펀드 운영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점을 입증하면 심사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채권을 발행하지 않기에 신용평가보고서가 없다. 없는 자료를 제출하라고 강제해선 안 된다”며 “외감법인에 해당하지 않아 감사보고서를 낼 수 없고 언제 받을지 기약할 수 없는 SEC 답변서를 대신해 다른 공시 자료로 대체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 의원은 2015년 3월10일 윤종룡 금융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미 SEC가 ‘KKR이 차입매수로 피인수 기업에 막대한 부채를 떠넘기면서 각종 명목으로 막대한 수수료를 받아왔다’며 시정조치를 요구했다”며 “자본시장이 제일 발달한 미국에서조차 KKR을 거의 ‘금융마피아’ 수준으로 보고 있는데, 국내에 와서 지금 ‘먹튀’(먹고 튄다를 줄인 신조어)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질타했다.
이미 대내외적으로 잘 알려진 내용이었으나, 야당 청문위원 입을 통해 차기 금융당국 수장에게 전달된 것이어서 의미를 간과할 순 없다. 임 후보자는 이에 대해 “(입장을)언급하는 자체가 증선위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을 아끼는 한편 “관련 법령이나 절차에 따라 대주주 심사요건 충족 여부를 아주 엄정하고 공정하게 심사하겠다”고 했다.
⑬2015.4.30. 파이어니어, 사정 변경으로 대주주 변경 승인 자진 철회
결국, KKR-보고 측이 2015년 3월30일 정기주주총회 전에 대주주 변경 승인을 마무리 짓지 못한 상황에서 MK전자가 표 대결에서 압승하며 한토신 경영권을 완전히 가져갔다. 이날 이 의원 전주고 58기 동기 동창이자 절친으로 알려진 박차웅 변호사가 MK전자 추천으로 한토신에 사외이사로 입성했다.
KKR-보고 측은 한토신 인수에서 손을 뗐다. KKR-보고 측은 아이스텀 측에 지분 인수 계약을 연장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냈다. 아이스텀 측은 2015년 6월3일 키스톤프라이빗에쿼티 등에 지분을 분할 매각했다. 경영권을 손아귀에 쥔 차정훈 MK전자 회장은 2015년 10월28일 한토신 (각자)대표이사로 공식 취임했다. 차 회장은 이 의원, 박 변호사와 동갑내기(1963년 출생)이자 동향출신(전북 전주)이다. 세 사람은 ‘우석대 미르CEO문화아카데미 원우회’에서 활동한 인연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