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대의 컬처키워드] 매니저와 배우의 20년 인연, 답은 신뢰였다

by고규대 기자
2020.07.30 17:29:42

[이데일리 고규대 문화산업전문기자] 매니저와 배우의 20년 인연, 답은 신뢰였다.

최근 신현준과 전 매니저의 공방을 보면 매니저와 배우가 10년 이상 좋은 인연을 이어가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려운 걸 해내는 사람들도 있다. 국세환-김상경, 김민숙-손예진, 손석우-이병헌 외에도 김종도(나무엑터스)와 문근영, 이은영(SALT엔터테인먼트)과 박신혜 등도 대표적인 찰떡 호흡을 맺은 이들이다. 매니저의 1세대로 꼽히는 정훈탁 대표의 경우 1997년 데뷔한 장혁과 현재까지 인연을 이어올 정도다.

(그래픽=문승용 기자)
10년 넘는 인연을 맺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신뢰’다. ‘신뢰’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그 이해가 낳은 ‘배려’로 켜켜이 쌓이게 된다. 한국연예매니지먼먼트 협회는 매니저 중 매해 ‘베스트 매니저’를 뽑아 노력을 인정하기도 한다. 이들 중 김민숙 엠에스팀 대표, 이은영 SALT엔터테인먼트 대표, 국세환 KOOK엔터테인먼트 대표에게 직접 비결을 들어봤다.

1999년 고등학생이었던 손예진을 처음 만났어요. 첫 인상이 ‘고요했다’고 기억해요. 주말마다 고향인 대구에서 서울을 오가면서 배우를 준비했죠. 바른손엔터테인먼트에서 엠에스팀(MS Team·김민숙 대표의 영문 이니셜을 딴 사명)까지 같이 하고 있어요. 부부가 처음 결혼하면 서로 맞추기도 하고 그러잖아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동료 같고, 친구 같기도 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손예진과는 매니저도 배우도 아니고, 가족도 넘어선 친구일지 모르죠. 이제는 원 없이 손예진의 옆을 지켰으니, 결혼도 내가 시켜야 되는 거 아닐까 농담도 건네곤 해요. (손예진은 한 인터뷰에서 “연예계에 입문시킨 분이니 한 가족인 셈이다. 유·불리를 따져 좀 더 좋은 조건을 찾아 떠나면 힘들어지고 상황이 바뀌었을 땐 그 반대의 처지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첫 주연작인 2001년 ‘맛있는 청혼’ 이후 작품을 다양하게 했고, 한국 배우의 한 축을 담당할 정도로 성장한 게 고맙죠. 연예계에서는 보기 드문 진중한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작품을 끝내고 평이 좋고, 나아가 상까지 받으면 매니저로서 보람을 느끼죠.



벌써 20년이네요. 2001년 드림팩토리 재직 시절 배우 김정화와 박신혜를 만났어요. 당시 박신혜는 연습생이었죠. 여자 매니저가 드물던 시절이라 김정화도 맡게 되고 박신혜의 안무나 음악 공부도 돕게 됐죠. 이후 김정화와 함께 몇몇 기획사에서 일했죠. 잠시 헤어졌던 박신혜와 2008년 다시 만났어요. 박신혜는 다음해인 2009년 ‘미남이시네요’로 단박에 스타덤에 올랐죠.

항상 감사한 이유는 서로에 대한 이해가 높다는 거였죠. 저를 믿어주니 몇 년 안에 회사에 수익을 내야 한다는 강박보다 멀리 보고 기획을 하게 되더라고요. 눈앞의 수익에 따라 작품 출연을 하지 않았어요. 박신혜의 경우 계약 기간이 만료될 때 즈음 결별한다는 소문이 난 적이 있어요. 우연히 그 말을 들은 박신혜가 말도 안 된다며 깜짝 놀라더니 SNS에 저와 찍은 사진을 올리고 건강한 매니저라는 글을 올려주더라고요. 그 후에는 소문이 싹 사라졌죠. 또 배우들이 선한 영향력을 갖고 있어 항상 마음이 든든합니다.

2001년 즈음 현장 매니저로 배우 김상경을 처음 만났어요. 표준계약서를 쓰고 함께하는데 때가 되면 계약서를 다시 쓰는 게 아니라 자동연장 조항에 따라 일할 정도로 신뢰가 두터워요. 작품 선택을 할 때 배우의 입장에서 살피고, 서로의 삶을 존중하는 데서 쌓이는 게 신뢰죠. 따지고 보면 제 일생에서 부모님보다도 더 오랜 시간 김상경 배우와 함께 한 셈이죠. 제가 이끌고 있는 기획사가 크지 않다 보니 서로 끌어주는 관계 형성이 잘 됐다는 게 장점인 거 같아요. 현장 매니저로 시작해 팀장, 대표 등을 거치면서 실행하는 일과 생각한 일의 괴리를 줄이고 발전시킨 능력을 갖게 된 것도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매니저에 입문하는 이들에게 하는 말이 있어요. 막연한 기대보다는 초보 시절 실무를 잘 배워 놓아야 관리자가 됐을 때 더 넓은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거죠. 바로 그게 김상경 배우와 신뢰를 쌓는 힘이 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