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영, 태영호 '주체사상 공세'에 반발…“평양특사 주저하지 않겠다”(종합)

by정다슬 기자
2020.07.23 18:14:34

"'북미의 시간'을 '남북의 시간'으로 되돌려놓겠다"
"창의력과 상상력으로 대북 제재 돌파"
전대협 출신…야 의원들 '색깔론' 공세 이어가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선서를 하고 있다.[사진=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이인영 후보자는 주체사상을 버렸다, 주체사상 신봉자가 아니라는 공개선언을 한 적이 있느냐”(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

“북한에서는 사상 전향이 강요되는지 몰라도,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있고 민주주의가 발전한 (남한) 사회에서는 강요하는 게 아니다. 그런 면에서 태 의원의 질의는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

통상적으로 국무위원으로서의 자질을 검증받는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는 겸양된 자세로 임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여당 원내대표를 지낸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23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과 설전을 벌이거나 말을 끊고 적극적으로 반론을 펼치는 등 실제 장관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 후보자는 이날 통일부 장관 후보자로서의 각오를 말하는 모두발언에서 “북미 관계가 멈칫하더라도 남북 관계는 그 자체로 목표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나아가야 한다”면서 주도적인 대북정책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남북관계 발전과 북핵문제 해결을 연계시키지 않고 병행함으로써 국제사회를 설득하고 북한의 협조를 이끌어 낸 경험에 주목해야 한다”며 “병행 진전의 출발점은 남북관계 복원. 그러면 남북관계의 동력에 힘입어 북미관계도 진전될 수 있으며 실질적으로 선순환을 실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도, 미국도 모두 섣불리 양보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한국이 먼저 북한에 손을 내밀러 변화의 모멘텀을 만들겠다는 주장이다. 다만 한국 역시 국제사회의 일환으로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안을 준수해야 하는 상황에서 한국정부의 선택권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이 후보자는 ‘북미의 시간’을 ‘남북의 시간’으로 되돌려놓기 위한 방법으로 “주도적이고 대담한 변화”를 강조했다. 국제사회와 미국 등 이중삼중의 대북 제재라는 현실적인 장벽에서 “창의력과 상상력”을 통해 남북 협력의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창의력과 상상력을 발휘한 한 예로 이 후보자가 제시한 것이 “금강산과 백두산의 물, 대동강의 술과 우리들의 쌀, 약품을 바꾼다”는 물물교환 형식의 ‘작은 교역’이다. 그는 “배에서 배로 혹은 이전하는 과정 등이 검토 대상이 될지 모르겠지만 물, 술, 쌀, 약품은 제재 대상일 수 없다”며 “작은 교역을 통해 큰 교역으로 상황에 따라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보건 협력에 대해서도 “코로나19와 관련해서 협력할 부분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해야 한다”며 “코로나19 외에도 아프리카돼지열병, 조류독감 등이나 더 나아가서 병원이나 의료시설, 의료진 양성과 관련해서도 많은 부분에서 협력할 필요성이 존재해 왔다”고 언급했다.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 특사로 평양을 방문할 의사가 있느냐”는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의 질문에는 “제가 특사가 돼 평양을 방문하는 것이 남북 관계의 경색을 풀 수 있다면 백 번도 주저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 “전면적인 대화 복원”을 제시할 것이라며 “인도적 교류를 통해 신뢰를 회복하고 더 나아가 남북간 합의하고 약속한 것을 지체 없이 이행하겠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 제기된 한·미 워킹그룹 무용론에 대해서는 “대북제재를 효율적으로 풀어내는 기능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면서도 “제재 영역이 아닌 인도적 협력을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주한미군과 관련해서는 “주둔하는 게 맞다고 생각이 정리되고 있다”며 “향후 동북아 전략적 균형과 힘의 균형에 대해 한미동맹이 군사적 측면에서도 유지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인사청문회에서는 과거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초대의장이었던 이 후보자에 대한 사상 공세도 거셌다. 포문을 연 것은 북한에서 외교관으로 지내다 망명한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이다.

그는 과거 북한에 있었을 때 “전대협 조직이 매일 아침 김일성 주석 초상화 앞에서 남한을 미제 식민지로부터 해방하기 위한 충성의 결의를 다지고 있다고 들었다”며 이 후보자에게 주체사상을 버렸다는 공개선언을 한 적이 있느냐고 질의했다.

이에 이 후보자는 “사상 전향은 태 의원처럼 북에서 남으로 왔을 때 해당되고 나는 그런 사람은 아니지 않습니까”라며 “아무리 의원님이 나에게 청문위원으로서 물어본다고 해도 이는 온당하지 않은 질의내용”이라고 맞받아쳤다.

이후 이어진 오후 질의에서도 태 의원은 “‘전향’은 종래의 사상이나 이념을 바꾸어서 그와 배치되는 사상이나 이념으로 돌림이라는 뜻”이라며 “나처럼 북에서 남에서 온 사람이 아니라 후보자님과 동년배들에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며 공세를 이어나갔다.

이 후보자는 “‘전향’이란 단어는 사전적 의미 외에도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통속적으로 낙인에 관련한 부분이 있다는 걸 아셨으면 좋겠다”며 “아직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 과정에 대해서 태 의원님이 나보다 깊이 있게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정중하게 말씀드린다”고 반박했다.

그런가 하면 이 후보자는 아들과 관련된 질의에는 격앙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김석기 미래통합당 의원은 이 후보자의 아들이 척추과절병증(강직성 청추염)으로 병역 면제 판정을 받기 열흘 전 무거운 물통을 자연스럽게 드는 모습이 찍힌 동영상이 있다는 것을 거론하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병역 면제 경위를 설명하던 이 후보자가 김 의원이 말을 끊자, “(김 의원은) 6분 동안 혼자 말씀하시지 않았냐”며 “여기서 맥주 한 박스를 가져다놓고 (말씀하셨던 대로) 수십킬로그램인지 확인해보자”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장면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