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어떤 법 어떻게 적용?" 토론회..정부-업계 이견 확인
by이재운 기자
2018.11.21 17:11:07
법적 정의 견해부터 제윤경 의원 제출안 두고 이견
민병두 국회 정무위원장 "정부 의견이 안 오고 있어"
[이데일리 이재운 기자] “우리는 지키고 싶은데 규정이 없다. 먼저 기준부터 달라.” vs. “일단 법을 만들고 국제 추세를 보며 천천히 준비하겠다.”
불법 자금의 암호화폐 시장 세탁을 방지하기 위한 자금세탁방지(AML) 관련 사항을 두고 진행한 국회 토론회에서 정부측과 업계가 AML 도입에 대한 법·제도 정비를 두고 선후관계에 대해 이견을 보였다. 업계는 “AML을 자율적으로 이미 도입했고, 지키고 싶어도 기준을 명확히 주지 않아 신고를 못하고 있다”는 입장을, 당국은 “먼저 법안을 만들고 그 이후에 가이드라인을 줄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며 평행선을 달렸다.
21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블록체인산업 육성2법(전자금융거래법,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등에 관한 법률) 개정방향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은 암호화폐로 업계에서 부르는 디지털 토큰(자산)에 대한 법적 정의와 이에 대한 법·제도 정비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특히 제윤경 국회의원이 제출한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등에 관한 법률(특금법) 개정안에 대해 이견을 보였다.
업계 의견을 대표하는 최화인 한국블록체인협회 블록체인캠퍼스 학장은 “제 의원의 개정안은 금융기관인 은행이 암호화폐 거래소에 대해 이상거래 행위 등을 감시하고 당국에 신고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며 “마치 거래소를 믿을 수 없는 대상으로 치부하고 있는 자세”라고 비판했다.
또 “암호화폐 거래소가 AML 규정을 지키지 않아 실명계좌를 발급할 수 없다고 당국이 반복하는데, 오히려 당국이 거래소 등 업계 문의에 구체적이고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아 신고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현재 집금계좌로 입출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범죄 의심 거래가 발견되면 전체 계좌를 모두 정지하고 거래 내역을 다 대조해야하는데, 금융범죄 추적의 효율성 측면에서도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고 덧붙였다.
| 21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블록체인 산업육성2법 개정방향 토론회’에서 좌장을 맡은 민병두(왼쪽 네번째) 국회 정무위원장이 의사진행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송창영 법무법인 세한 변호사, 유재훈 금융정보분석원 기획행정실장, 구태언 테크앤로 대표변호사, 민병두 위원장, 최화인 한국블록체인협회 블록체인캠퍼스 학장, 이상용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서희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사진=이재운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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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에 참여한 법조인들과 토론회 방청을 위해 방문한 업계 관계자도 이에 동의하는 의견을 내놨다. 자유토론 시간에 본인을 거래소 관계자라고 밝인 방청객은 “AML 관련 사항을 신고하고 싶어도 당장 담당 부서조차 지정돼있지 않고, 규정도 모호하다”며 “관련 체계와 인력을 갖추고 싶지만 무엇을 준수해야하는지 기준이 없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한서희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도 “(제 의원의)개정안은 정부가 직접 규제 대신 금융기관을 통해 가상통화 취급업소(암호화폐 거래소)를 규율하려는 방향으로 보인다”며 “실제 문제가 생길 경우 거래관계인 금융기관이 취급업소를 실제 규제할 수 있을지, 또 이런 규율 권한을 금융기관에 부여하는게 타당한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발제자로 나선 구태언 테크앤로 대표변호사는 “현재 은행들이 자금세탁 문제로 실명계좌 발급을 거부하는 상황”이라며 “법안이 없어서 가이드라인을 줄 수 없다면, 일단 정부가 준비중인 사항을 먼저 공개하면 거래소들이 미리 준비해 기준을 바로 준수할 수 있지 않겠나”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부 측 입장을 설명하기 위해 참석한 유재훈 금융정보분석원 기획행정실장은 “일단 제 의원의 발의안이 통과돼야 취급업소(거래소)의 AML에 대한 법적근거가 마련되고, 시행령이나 가이드라인 같은 후속 작업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또 “FATF(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로부터 내년에 AML 관련 실사를 받는데, 취급업소에 대한 법제가 갖춰지지 않으면 우리나라에 대한 국제 사회의 AML 신뢰도가 하락할 수 있다”는 점도 언급하며 “(제 의원 제출안은)취급업소에도 보고 의무를 지우고, 은행에도 좀 더 조심하라는 의미의 성격”이라고 설명했다.
AML에 앞서 암호화폐, 혹은 디지털 자산이나 가상증표 등으로 갈리는 각종 용어와 정의를 정리할 필요가 시급하다는 의견도 이어졌다.
구태언 변호사는 “G20 재무장관회의 등 국제사회 논의에서 ‘통화’나 ‘화폐’ 용어는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정리되고 있다”며 “이들 용어는 규제 주체가 금융당국으로 한정되도록 하는 등 시장과 사회에 오해를 주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토큰(Token)이라는 용어를 번역한 증표라는 표현이 오히려 적합해보이는데, 전반적으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송창영 법무법인 세한 변호사도 “블록체인에 기반하지 않은 다른 디지털 자산과 구분하기 위해 법적으로 보다 명확한 정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이 대해 유재훈 실장은 “현재 금융당국이 사용하는 ‘가상통화’에 대해 비판이 많지만, G20 등 국제 논의는 아직 통일된 의견이 아니다”라며 “용어와 정의를 비롯한 법·제도와 규제는 국제사회의 규제 흐름을 보며 천천히 결정할 문제라고 생각하는게 현재 정부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참가자들은 증권과 유사한 성격을 갖는 ‘증권형 토큰’의 경우 자본시장법을 적용하자는 입장과 전자금융법을 적용하자는 입장으로 나뉘어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자본시장법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현재의 법 테두리 안에서 제도권 편입이 가능하다는 점을, 전자금융법을 주장하는 쪽은 증권형 토큰이 기존 자본시장법으로 규정하기에 특성이 다르다는 점을 각각 언급했다. 이상용 충남대 교수는 “어느 법으로 규정해도 큰 차이는 없지만, 정합성을 위해서는 자본시장법이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공동 주최자이자 토론회 좌장을 맡은 민병두 국회 정무위원장(더불어민주당)은 “정부에 11월까지 의견주면 그걸 바탕으로 국회에서 입법 공청회 등 관련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으나 아직까지도 정부의 의견이 오지 않았다”며 “현재는 장외에서 토론하며 의견 듣는 수준인데, 12월에는 공청회가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