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조원 주파수 재할당, '경매가 기준' 뜯어고쳐야"…전파법 개정 요구도
by윤정훈 기자
2025.12.01 16:50:12
정부는 5G SA 전환 조건부 최대 15% 할인 제시
SKT와 LGU+ ‘경매가 할인’ 정면 충돌
학계, 낙찰가 기준 바꿔야
박충권 의원 "재할당 대가 예측 가능성 높이는 법 통과시켜야"
[이데일리 윤정훈 기자]내년 이용 기간이 만료되는 3조원 규모의 이동통신 주파수(3G·LTE) 재할당 대가 산정 방식을 두고 이통사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현행 ‘경매 대가 연동’ 방식의 전면적인 개선을 요구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아이티스퀘어에서 열린 ‘이동통신 주파수 재할당 세부 정책방안 공개설명회’에서 LTE 주파수 재할당 대가를 기준 가격 대비 최대 15% 할인하는 안을 제시했다. 더불어 정부는 할인 조건으로 LTE망에 의존하지 않는 5G 단독모드(SA) 전환과 실내 무선국 2만국 이상 구축을 내걸었다. 2030년 열릴 6G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 5G SA 투자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오용수 과기정통부 전파정책국장은 이날 “AI 3대 강국으로 가기 위해 네트워크가 AI 인프라를 어떻게 받쳐주느냐는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며 “설비 경쟁을 넘어 서비스 기반 경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영준 과기정통부 주파수정책과장 역시 “이번 재할당 기간을 통해 국내 5G망을 SA로 고도화하여 AI로 활용할 수 있는 네트워크 효율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학계와 전문가들도 5G SA 전환의 필요성에 힘을 실었다.
최수한 단국대 교수는 “현재의 비단독모드(NSA)는 LTE 기반이라 초저지연 등 5G 본연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며 “2030년 6G 상용화 시 5G 망 위에 6G가 올라가는 형태가 되려면 지금 SA 전환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최대 쟁점은 2.6㎓ 대역의 대가 산정 기준이다. 2016년 경매에서 해당 대역을 낙찰받은 SK텔레콤(017670)은 2021년 재할당을 통해 같은 대역을 저럼하게 확보한 LG유플러스(032640) 수준의 할인을 요청하고 있다.
성석함 SKT 부사장은 “동일 대역, 동일 폭의 가치는 다르지 않다”며 “경매 대가가 10년, 20년 뒤 재할당까지 이어지면 경매는 기회가 아니라 불이익이 된다. LGU+가 2021년에 받은 27.5% 수준의 할인을 동일하게 적용해 달라”고 호소했다.
반면 박경중 LG유플러스 상무는 “SKT가 지불한 금액은 당시 가치를 보고 프리미엄을 스스로 지불한 것”이라며 “이제 와서 가격을 낮춰달라는 것은 경매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선례로 향후 5G 주파수 재할당도 할인 요청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법·경제학적 관점에서 현행 산정 방식의 모순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안정민 한림대 교수는 “10년 전 경매가를 기준으로 삼는 것은 초등학교 2학년 성적으로 대입을 치르는 것과 같다”며 “정부가 전파법 시행령 14조를 다 고려하지 않고 재량권을 남용해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적 처분을 하는 것은 위법 소지가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 | 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아이티스퀘어에서 열린 이동통신 주파수 재할당 공개설명회에서 토론이 진행되고 있다(사진=윤정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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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이번 논란의 근본 원인이 10년 전 경매가 기준의 비합리성, 시장 기반 접근 부족에 있다고 지적했다. 또, 미래 투자·서비스 연속성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예원 세종대 교수는 “과거 시점의 가격을 참고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시장 기반 접근을 통해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기업의 중장기 투자를 유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정상 중앙대 겸임교수는 “주파수 재할당은 신규 할당과 달리 기존 이용자 보호와 서비스 연속성이 중요하다”며 “과거의 비용 회수보다는 5G SA 전환 투자, 요금 인하 효과 등 미래지향적 요소를 대가 산정에 더 비중 있게 반영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부기관은 LTE 가치가 하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 가격은 적절하다고 이번 주파수 재할당 가격 산정의 배경을 밝혔다.
박승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전파연구본부장은 “현재 3800만 대의 5G 단말 중 80%인 약 3000만 대가 NSA 단말”이라며 “이 단말들이 재할당 기간인 2031년까지 모두 SA로 바뀐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LTE 주파수 가치가 급격히 하락했다는 주장에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대가 산정 방식을 둘러싼 통신업계 갈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박충권 국민의힘 의원은 “혼란의 원인은 정부의 자의적 행정에 있다”며 전파법 개정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했다. 박 의원은 “재할당 대가 산정 기준이 해마다 뒤바뀌는 ‘고무줄 잣대’가 오늘의 진흙탕 싸움을 만든 핵심 원인”이라며 “깜깜이 행정을 근본적으로 막으려면 명확한 기준의 법제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2024년 12월, 재할당 대가 산정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전파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주파수의 기술 생애주기별 가치 하락을 고려해 재할당 대가를 산정하도록 법에 명시해 행정의 자의성을 구조적으로 차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박 의원은 “주파수는 공공재이며 정부가 관리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예측 가능성과 신뢰”라며 “정기국회에서 개정안을 반드시 처리해 소모적 논쟁을 끝내고 투명한 재할당 기준을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