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CVC, 역기능보다 순기능 기대되는 이유

by권오석 기자
2020.06.08 17:24:06

정부, 벤처투자 활성화 위한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 도입 검토
재무적 투자뿐 아니라 사업 협력도 가능하다는 기대감 고조
"성공적 벤처투자 위한 정보 접근성 강화 필요" 지적도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4일 서울 강남구 나라키움 청년허브센터에서 열린 ‘차세대 글로벌 청년 스타트업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권오석 기자]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을 통해 재무적 투자뿐 아니라 사업 협력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글 수는 없죠.”

정부가 CVC 도입을 검토하기로 한 데 대한 벤처·스타트업계의 입장이다. 정부는 최근 코로나19 영향으로 주춤한 벤처투자 열기를 살리기 위해, 일반지주회사도 벤처캐피털(VC)을 설립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기로 했다. 일각에서는 대기업의 편법 승계와 기술탈취 문제 등 역기능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엑싯(투자 회수)이 미약한 창업 생태계가 선순환하는 데 도움이 될 거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앞서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1일 ‘2020년 하반기 경제 정책 방향’ 발표를 통해 “일반 지주사의 CVC 제한적 보유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여당도 가세해,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일반 지주사의 CVC 보유를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대기업이 출자하는 VC를 의미하는 CVC는 그간 ‘일반지주회사는 금융·보험회사를 자회사로 둘 수 없다’는 금산분리 원칙 아래 제한됐었다. 이러한 이유로, 지주회사인 롯데그룹은 공정거래법 위반을 피하기 위해 CVC인 롯데액셀러레이터 지분을 지주사 밖인 롯데호텔에 매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법안이 개정되면 일반 지주사의 CVC 보유가 가능해진다.



업계는 환영 입장이다. 임채운 서강대 교수는 “금융기관의 투자는 대체로 수익을 목적으로 하고 조기 회수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CVC는 대기업의 재무적 투자뿐 아니라 스타트업과의 사업 협력, 전략적인 제휴가 가능하다”며 “궁극적으로는 M&A(인수합병), IPO 등 회수 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물론 대기업 지주회사가 해당 스타트업을 구속하고, 경쟁 기업과의 협력에 제한을 둘 수는 있다. M&A를 하기보단 기술탈취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부작용은 사후에 보수할 수 있으며, 일일이 규제를 하는 건 또 다른 규제를 만드는 것과 같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했다.

재벌이 CVC를 악용할 가능성에 대해선 상생협력법 등 기존의 안전장치가 있으며, 업계 간 협력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한 액셀러레이터 관계자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신뢰가 낮아지면서 국가 간 경쟁이 가속화될 것이다. 그러면 국가 차원에서도 글로벌 영향력이 큰 대기업 위주로 지원을 할 가능성이 높고 CVC를 통한 대기업·스타트업 협력 모델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며 “해외에서는 ‘벤처 클라이언트’(venture client)를 비롯해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 협력을 다양한 전략으로 풀어낸 전례가 있다”고 했다. 대기업 공급망에 스타트업을 포함하는 모델인 벤처 클라이언트로는 BMW의 스타트업 개러지(차고창업)이 있다. 자동차 분야로 기술을 발전시키거나 판로를 만들고 싶은 기술 스타트업의 고객이 돼 서비스와 상품, 기술을 구입하고 컨설팅을 진행해 성장을 돕는 프로그램이다.

제도 안착을 위한 핵심은 정보 접근성이다. 국내 모 LP(펀드출자자) 관계자는 “제도 초반에는 투자 전문성을 갖추지 못해 실패를 볼 수 있다. 벤처투자에 활용할만한 세부적인 정보가 마땅치 않기 때문에 투자 자체에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벤처 투자는 수익률이 일반 주식 투자와 비교해도 낮은 측면이 있다. 업계와의 정보 교류를 활성화 할 방안이 필요해보인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