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이름표 바꾼 文, 인건비 부담 외면…尹정부 `제2인국공 사태` 맞을라

by최정훈 기자
2022.03.16 17:28:31

文정부 임기 한 달 남기고, 공무직 임금 조사 착수
국민 부담 최소화 약속 공염불…윤석열 정부 숙제로
과거 `인국공 사태`처럼 임기 초 블랙홀 빠질 우려도
“객관적 직무가치와 합리적 임금체계를 조화시켜야”

[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틀 만인 2017년 5월12일 인천국제공항을 찾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0)`를 선언했다. 5년 간 이어질 공공부문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갈등의 서막이었다.

이른바 `인국공(인천국제공항) 사태`부터 지난해 건강보험공단 사태까지 갈등을 반복하면서 결국 문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정책은 정규직 이름표 바꾸기에 그쳤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7년 5월 12일 인천공항공사에서 열린 ‘찾아가는 대통령,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 행사에 참석해 박수치고 있다.(사진=뉴시스 제공)


특히 정규직 전환으로 인한 국민 부담을 최소화하겠다는 현 정부의 약속은 공염불이 됐고, 새로운 정부가 떠안고 풀어야 할 짐이 됐다.

16일 관가에 따르면 공무직위원회는 최근 공무직에 대한 임금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공무직의 임금 처우개선과 임금체계 개편의 근거가 될 이번 실태조사는 사무보조·연구보조·조리사·사서 등 4개 직종에 대해서 먼저 이뤄질 예정이다.

이번 실태조사는 지난해 12월 말까지 마무리하겠다던 정부의 원래 계획보다 한참 미뤄졌다. 지난해 11월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국회에 출석해 “공무직위원회서 민간 전문가와 합리적 임금 기준 마련을 위한 실태조사 중으로 12월 말 결과를 토대로 합리적 기준을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태조사는 차일피일 미뤄지다 결국 현 정부 임기 한 달여를 앞두고 진행하게 됐다.

고용부 관계자는 “임금 관련 논의를 위한 전문가 태스크포스(TF) 구성과 조사 방식 등에 관한 논의에 시간이 소요되면서 조사 착수에 시간이 걸렸다”며 “기관별로 제각각이던 공무직의 직무 분류 기준을 만들고 그 중 실태조사에 착수할 일부 직종을 선정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자료=고용노동부 제공


문재인 정부 정규직 전환 정책으로 늘어난 공무직은 19만 8000여 명에 달한다. 기존 공무직까지 합하면 전체 공무직은 50만~60만명으로 추산된다는 게 고용부의 설명이다. 공무직은 현재 60여 개의 직종으로 분류된 상태고, 이 중 이번 실태조사는 공무직 중 전문 직종이자 가장 숫자가 많은 사무보조와 연구보조, 조리사, 사서 등 4개 직종만 대상으로 실시된다.

고용부 관계자는 “단순 노무 직종은 임금이 최저임금 수준으로 낮아 이들에 대한 실태조사를 먼저 시작하면 공무직에 대한 편견을 불러올 수 있다는 의견이 있었고 노동계도 공감했다”며 “상반기 중으로 실태조사를 마무리하고 임금체계 개편 등 논의를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의 대원칙은 국민 부담 최소화였다. 공무직이 급격하게 늘어나면 인건비 부담도 커지고, 인건비를 감당하기 위한 세금 부담도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정규직 전환자의 임금체계를 설정할 때 직종별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직무급) 취지가 반영될 수 있게 설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문재인 정부 임기 한 달을 앞두고서야 첫 삽을 뜨게 됐다.

2018년 제시된 공공부문 표준임금체계 모델(안)(자료=고용노동부 제공)


정부도 임금체계 개편에 아예 손을 놓았던 것은 아니다. 정부는 2018년 공무직 중 청소·경비·시설관리·조리·사무보조 5개 직종을 표준직무로 선정해 표준임금체계를 마련해 적용하려다 노동계 반발로 중단했다. 당시 표준임금체계는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설계해 승급을 거듭해도 최저임금의 1.4배에 불과해 저임금을 고착화하는 직무급제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번 연구에 참여하고 있는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임금직무혁신센터소장은 “당시 표준임금체계는 워낙 단기간에 마련된데다, 연구자의 직감으로 직무평가를 내놔 절차적 공정성이 부족했다”며 “이번엔 장기간 시간을 두면서 현재 상황과 문제점을 파악하고, 노조가 추천한 전문가도 참여하도록 해 연구의 수용성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오 소장은 이어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정책은 인천국제공항공사를 방문으로 급물살을 타며 준비가 미흡한 상태에서 밀어붙인 게 아닌가 싶다”며 “사전에 준비를 철저히 했으면 숙제를 마칠 수 있었겠지만, 이번 정부는 신분 전환에 모든 에너지를 쓰고 말았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시작한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은 결국 윤석열 정부가 마무리해야 할 과제가 됐다. 특히 윤석열 정부가 공공기관 개혁의 하나로 꼽히는 공공부문 직무급 도입에 나설지에 이목이 집중된다. 윤석열 당선인은 세대 상생형 임금체계라는 이름의 직무급제 도입 공약을 마련하기도 했다. 안철수 인수위원장도 후보 시절 호봉제에서 벗어나 직무에 따라 임금체계가 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다만 이미 한차례 직무급제 도입에 반대한 노동계의 반발도 예상되는 난관이다. 그렇다고 공무직에 기존 공공부문 임금체계인 연공급을 적용하면, 문재인 정부 초기 인국공 사태와 같이 임기 초부터 정규직과 공무직 사이의 노노 갈등으로 국정이 블랙홀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정규직 전환이 된 공무직이 직무와 상관없이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정규직과 같은 수준의 임금과 처우를 받도록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라며 “공무직을 미래지향적이고 지속 가능한 직무 모델로 만들어 나가는 게 바람직한 개혁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박 원장은 이어 “객관적인 데이터에 기초해 실행가능한 해법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교섭 구조를 형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공공기관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고, 이 중 인력구조를 지속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직무 가치와 합리적 임금체계를 조화시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