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출가스 조작’ 벤츠 검찰 압수수색에 외국인 사장은 벌써 脫한국

by이소현 기자
2020.05.28 17:19:57

디미트리스 실라키스 대표이사 사장, 지난 주 출국
벤츠 코리아 “해외 출장 중…복귀 여부 알 수 없어”
8월1일 임기 만료…메르세데스-벤츠 USA 총괄 담당行
외국인, 사실상 송환 불가능…수사·재판 차질 가능성↑

디미트리스 실라키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대표이사 사장(사진=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국내 수입차 1위’ 메르세데스-벤츠가 국내에 판매한 경유차 3만여대의 배출가스를 조작한 혐의로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은 가운데 관련 책임자이자 수장인 디미트리스 실라키스 대표이사 사장이 이미 한국을 떠나 관련 수사 차질은 물론 앞으로 책임감 있는 모습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관계자는 28일 “전날과 이날 이틀에 걸쳐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은 게 맞다”며 “디미트리스 실라키스 사장은 해외 출장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출장 일정을 마친 후 한국에 복귀할 가능성과 관련 “사장님의 출장 일정을 자세히 알 수 없다”며 “돌아올지 안 올지 여부도 확인할 수 없다”라며 모르쇠로 대응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실라키스 사장은 이미 일주일 전에 미국으로 출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한윤경 부장검사)는 27일부터 28일 이틀에 걸쳐 서울 중구에 있는 벤츠코리아 본사를 압수수색해 배출가스 인증 관련 자료 등을 확보했다. 환경부가 벤츠가 2012~2018년 국내에 판매한 디젤차 12종 3만7154대에 배출가스 조작 프로그램을 설정한 사실을 확인해 지난 12일 검찰에 고발해 본사 압수수색이 전격적으로 이뤄진 것이다.

벤츠 디젤차는 질소산화물 환원 촉매(SCR)의 요소수 사용량을 감소시키거나 배출가스 재순환장치(EGR) 가동률을 낮추는 방식으로 배출가스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SCR 요소수 사용량이 줄어들거나 EGR 작동이 중단되면 미세먼지 원인 물질인 질소산화물이 과다하게 배출된다. 배출가스 인증을 불법으로 통과한 벤츠 차량에서 배출하는 질소산화물은 실내 인증 기준(0.08g/㎞)의 최대 13배 1.099(g/㎞) 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판매를 위해 환경부에 배출가스와 관련한 인증시험을 받으며 자동차의 판매량을 늘리기 위한 목적으로 각 자동차에 대해 불법적인 방법으로 인증시험 통과한 것이다.

디미트리스 실라키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대표이사 사장이 1월 14일 EQ Future 전시관에서 개최된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2020 기자간담회에서 지난해 주요 성과 및 올해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사진=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벤츠코리아의 배출가스 조작 혐의는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이뤄진 것으로 이중 2015년 8월부터 2018년까지는 실라키스 사장의 임기 중이라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벤츠코리아가 형사 고발되면서 실라키스 사장과 관련 임직원들은 수사 대상이 됐지만, 수사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 오는 8월 1일부로 실라키스 사장이 대표이사에서 물러나 9월 1일부터 벤츠 USA 총괄을 맡게 된 터라 더 이상 국내에서 대표이사로서 책임감 있는 모습을 기대하긴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배출가스 조작 혐의에 책임이 있는 실라키스 사장이 현재 해외 출장 중으로 자발적으로 한국에 돌아오지 않거나 임기 만료를 핑계로 국내에서 수사를 받지 않고 떠난다면 한국으로 소환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 불법행위가 밝혀져도 재판에 출석하지 않으면 형사 처벌을 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수입차업계의 배출가스 조작에 대한 무책임한 태도는 과거에도 있었다. 벤츠코리아와 같은 배출가스 조작 혐의를 받은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의 요하네스 타머 전 사장도 2017년 관련 재판을 받던 도중 독일로 돌연 출국해 재판에 응하지 않고 형사처벌도 받지 않았다.결국 벤츠가 한국 시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실라키스 사장을 교체하면서 배출가스 조작 혐의로 고발한 것과 관련해 면죄부 인사를 하게 된 셈이 됐다. 앞서 벤츠코리아는 지난 1일 실라키스 대표이사 사장이 5년간 한국에서의 임기를 오는 8월 마치고 뵨 하우버 벤츠 스웨덴 및 덴마크 사장이 8월 1일부로 신임 대표이사 사장으로 임명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실라키스 사장은 한국 시장이 벤츠의 글로벌 5위 시장으로 자리매김하는 성장세에 지난 1월까지만 해도 연임 가능성을 내비쳤다. 실라키스 사장은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연임과 관련해 “한국에 오기 전 남미 지역을 담당할 때 6년 반정도 있었는데 참고할만한 답이 될 것”이라며 “한국 시장은 절대로 쉬운 시장은 아니지만, 도전을 즐기는 성격 덕분에 업무를 지속적으로 해나가고 있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2015년 9월 벤츠코리아 대표이사로 취임한 실라키스 사장은 2016년 BMW를 제치고 벤츠를 수입차 시장 1위에 올려놨으며 그 후로 4년 연속 수입차 판매 1위 자리를 지켰다. 이 밖에도 수입차 최초로 연간 7만대 돌파, 3년 만에 E클래스 판매량 10만대 돌파 등 업적을 세웠다. 수입차 업계 최초로 기부 참여형 문화 행사인 기브앤레이스 등 사회공헌활동도 활발하게 추진해 서울시로부터 명예시민으로 선정됐으며 작년에는 제야의 종 타종행사에 한복을 차려입고 참여하기도 했다.

디미트리스 실라키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대표이사 사장(사진=메르세데스-벤츠)
벤츠코리아는 배출가스 조작 혐의에 대해 적극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벤츠코리아는 “이번에 문제가 제기된 기능을 사용한 데에는 정당한 기술적·법적 근거가 있다”며 “환경부의 발표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입장으로 추후 불복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2018년 5월에 모두 생산 중단된 유로 6 배출가스 기준 차량만 해당하는 사안이기 때문에 현재 판매 중인 신차에는 영향이 없다”며 “2018년 11월에 이미 일부 차량에 대해 자발적 결함시정(리콜) 계획서를 제출한 바 있으며 당국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고 또 이번 사안은 차량 안전성과는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앞서 벤츠코리아는 소비자단체인 소비자주권시민회의로부터 지난 21일 대기환경보전법,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사기죄 위반 혐의로 고발 당했다. 여기에 벤츠 본사를 비롯해 법인 대표자도 고발 대상에 포함돼 올라 칼레니우스 다임러 AG 대표이사, 디미트리스 실라키스 벤츠코리아 대표이사도 고발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