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연구원 "韓 법인세 적정수준…소득세·소비세 올려야"

by박종오 기자
2016.08.25 18:37:12

[세종=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올해 법인세 세수 규모가 사상 최초로 50조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기업의 세금 부담이 커지고 있는 만큼 법인세보다 세 부담이 낮은 소득세와 소비세를 먼저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25일 국민경제자문회의와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공동 개최한 정책 토론회에서 이 같은 내용의 ‘법인세 부담 수준에 대한 평가와 시사점’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연구원은 올해 법인세수가 지난해보다 약 5조원 정도 더 걷혀 처음으로 50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했다. 과거 고점은 2012년 45조 9000억원이었다. 정부는 올해 전체 국세 초과 세수를 약 10조원으로 예상하는데, 이 중 절반이 기업에서 징수되리라는 것이다. 전체 국세 수입에서 법인세수가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해 20.7%에서 올해 21.5% 수준으로 회복할 것으로 전망됐다. 법인세수 급증 원인으로는 기업의 ‘불황형 이익’ 확대, 실효세율(각종 공제 후 실제로 적용하는 세율·기업의 실질적인 세 부담 정도) 인상 효과 등이 꼽혔다. 기업이 허리띠를 졸라맨 까닭에 세금 부과 대상인 이익이 늘었고, 현 정부의 비과세·감면 제도 정비 효과가 나타나면서 실질 세율도 올라갔다는 의미다.

실제로 연구원이 국세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국내 기업의 법인세 실효세율은 16.6%로 2014년보다 0.5%포인트 높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2000년 이후 최고 상승률이다. 특히 과세표준(세금을 매기는 기준 금액) 1000억원 초과 기업이 0.8%포인트(17.1→17.9%), 500억~1000억원 기업이 0.6%포인트(18.8→19.4%) 느는 등 기업 규모가 클수록 상승 폭도 높았다. 정부가 최저한세율 인상, 투자세액공제 등 비과세 감면 제도 축소·폐지 같은 적극적인 실효세율 제고 정책을 펼친 결과다.

연구원은 최근 정치권이 들고나온 ‘법인세 정상화’ 주장에 반대 뜻을 분명히 했다. 김학수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대기업을 중심으로 법인세 부담이 늘고 있는 상황”이라며 “법인세율 인상은 국제적 추이와 부합하지 않고 잠재 성장률 제고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못 박았다. 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상위 0.5%에 속하는 기업의 법인세 부담 비중은 2014년 78.4%로 호주(76.8%)보다 높고 미국(95.6%)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현재 국내 법인세율은 △과세표준 2억원 이하 10% △2억원 초과~200억원 이하 20% △200억원 초과 22% 등 3단계 초과 누진세 구조로 이뤄져 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에서는 최고세율을 기존 22%에서 25%로 인상하거나 과세표준 500억원 초과분에 25% 세율을 적용하는 새 구간을 만들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전 정부가 단행한 ‘부자 감세’를 원상태로 되돌리자는 것이다.





그러나 연구원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 수출 비중 등을 고려한 한국의 법인세율이 적정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예컨대 우리나라 법인세 최고세율(22%)은 1인당 GDP가 2만~4만 달러인 35개 국가 법인세율의 중위(세율이 높은 순서대로 줄 세웠을 때 가운데에 있는 값)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GDP 대비 수출 비중이 45~60%로 한국과 유사한 24개 국가의 법인세율 중윗값도 20.0%로 국내 최고세율과 큰 차이가 없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전체 회원국 34개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평균 23%(지방세 포함 24.8%)로 22%(24.2%)인 한국과 큰 차이가 없다.

법인세율 인상이 세계적인 추세와 어긋나는 것이라고도 연구원은 지적했다. OECD 국가 중 올해 법인세율(지방세 포함)을 2008년보다 내린 국가가 18개국으로 인상한 국가(6개국)보다 3배 많다는 것이다. 김 연구위원은 “어떤 이유에서든 반드시 증세해야 한다면 대상은 조세 왜곡이 덜하고 다른 국가보다 세 부담이 낮은 세목이어야 한다”며 “세목별 세 부담 수준 등을 국제적으로 비교해보면 증세 우선순위는 소득세, 소비세, 법인세 순으로 판단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법인세율 인상을 둘러싼 논쟁은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당장 이날에도 박주현 국민의당 의원이 부자 감세 철회를 목적으로 한 ‘법인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 개정안은 법인세 과표 구간을 2억원 이하와 초과 두 구간으로 줄이고, 2억원 초과구간에 적용하는 세율을 25%로 인상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박 의원은 “국민총소득(GNI)에서 기업 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2007년 21.8%에서 지난해 24.6%로 지나치게 증가하고 있다”며 “그런데도 기업 소득 대비 법인세 비중은 작년 기준 12.9%로 OECD 평균(15.6%)보다 낮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조세·재정의 양극화 개선 효과가 우리나라는 9%로 35~48% 수준인 유럽국가는 물론, 일본과 미국의 31%, 25%에 비해서도 형편없는 수준이다. 법인세율을 정상화하는 것이 조세의 양극화 개선 효과를 늘릴 중요한 첫걸음”이라고 덧붙였다.

김학수 연구위원은 “정치적 이해관계나 다른 고려로 법인세를 증세하면 우리 경제가 치러야 할 대가가 생각보다 클 수 있다”며 “법인세율 정책은 세율 인상의 경제적 비용, 국가 경쟁력에 미칠 영향, 재원 조달 안정성, 경제 주체별 부담 정도 등을 객관적으로 고려한 중장기적 시각에서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