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짱·헵번 코스프레’ 또다시 정쟁 되풀이되는 영부인 순방

by김영환 기자
2022.11.14 16:41:24

민주당, 김건희 여사 순방 모습 놓고 연일 십자포화
문재인 정부 당시 김정숙 여사 순방도 소환돼 정쟁
여야가 바뀌기만 할 뿐, 영부인 공격 대상 삼는 행태는 여전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에 함께 나선 김건희 여사의 행보가 어김없이 여야간 정쟁의 수단으로 전락했다. 정부가 달라짐에 따라 공격과 수비만 바뀌었을 뿐, 여야 진영의 영부인 책잡기는 늘 비슷한 모습으로 반복되고 있다.

김건희 여사(오른쪽)가 12일 오후(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 쯔노이짱바 국제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갈라 만찬에 참석,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팔짱을 낀 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대통령실)
김 여사가 세간의 시선을 모은 장면은 크게 두 가지다. 지난 12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 쯔노이짱바 국제 컨벤션센터에서 갈라 만찬에 참석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념 촬영을 하면서 팔짱 끼는 모습이 화제가 됐다.

이튿날에는 프놈펜에서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14살 소년의 집을 찾았는데 할리우드 배우 오드리 헵번을 연상시키는 사진이 공개되면서 다시금 온라인상을 들썩이게 했다.

사실 정상 부부간 기념 촬영이나 영부인간 촬영이 아닌, 다른 나라의 정상-영부인 둘만의 사진 공개는 생소한 장면이다. 더욱이 두 사람이 팔짱을 끼고 있는 모습은 더더욱 이례적인 것이어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4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이 사진에 대해 “(김 여사가) 대한민국의 영부인, 퍼스트 레이디인데 미국 대통령의 팔짱을 낀 모습은 조금 보기 불편하더라”라고 말했다.

김건희 여사가 12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소년을 안고 있는 모습(왼쪽),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이 소말리아 봉사활동에서 굶주린 어린이를 안고 있는 모습(사진=대통령실·이데일리 DB)
김용민 민주당 의원은 ‘헵번 코스프레’ 논란에 대해 “따라 하고 싶으면 옷차림이나 포즈가 아니라 그들의 마음과 희생을 따라 하라”며 “고통받는 사람들을 장식품처럼 활용하는 사악함부터 버리기 바란다”고 썼다. 김 여사의 현지 환우 방문은 배우자 공식 행사에 참석하지 않고 이뤄진 것이어서 또 다른 논란도 낳았다.



정상 외교 가운데에 영부인을 비판 대상으로 삼는 데서 기시감이 든다. 선출 권력도 아닌 대통령 부인의 활동 하나하나가 대한민국 여론을 좌지우지할 만큼, 우리 사회에 있어 영부인의 행보는 민감한 포인트다.

지난 2018년 말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인도를 홀로 방문했던 일은, 정권이 바뀌면서 다시 수면 위로 부각됐다.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여지없이 당시를 소환해 “김정숙이 하면 선행이고 김건희가 하면 참사라는 ‘정선건참’도 아니고 이런 억지 생떼가 어디 있느냐”고 맞받았다.

김정숙 여사가 지난 2018년 11월 7일 오전(현지시간) 인도 우타르프라데시 주 아그라의 타지마할을 방문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지난 9월에는 윤 대통령의 영국·미국·캐나다 순방을 앞두고 고민정 민주당 의원이 “많은 예산이 소모되는데 김건희 여사가 왜 꼭 같이 가야 되나”라고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고 의원은 문재인 정부에서 부대변인을 지내며 김정숙 여사의 해외 순방을 지근 거리에서 보좌했던 인사다.

여야 공히 대통령 부인을 그저 정쟁의 대상으로밖에 보지 않는 셈이다. 소수정당 시대전환 대표인 조정훈 의원이 지난 9월 “한 여인의 남편으로 남의 부인을 정치 공격의 좌표로 찍는 행위가 부끄럽고 좀스럽다”고 꼬집었지만, 여야 모두 자중하는 기색은 없다.

영부인 이슈가 부각되는 것은 많은 세금이 드는 해외 순방 성과를 가리는 사회적 낭비이기도 하다. 김건희 여사는 지난 나토 순방 당시 인사비서관 아내 동행, 고가의 장신구 이슈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

정치권 한 인사는 “가십이 대통령 순방 외교 성과 자체를 뒤덮는 것은 심각한 사안”이라며 “대통령실은 영부인의 노출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야권에서도 영부인에 대한 공세는 자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