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당 선거 참패에 日 정국 '시계제로'…이시바는 버티기 돌입

by양지윤 기자
2024.10.28 21:00:10

자민당, 단독 과반 실패…연립여당도 15년 만에 붕괴
이시바 "엄중한 심판, 준엄한 질책으로 받아들인다"
조기 총선 사퇴론에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내달 특별국회서 총리 재지명 여부 판가름
정국 불안정에 엔화가치 급락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 겸 집권 자민당 총재가 27일 중의원 선거가 끝난 후 자민당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로이터)
[이데일리 양지윤 기자] 일본 집권 자민당이 중의원 선거에서 15년 만에 단독 과반 확보에 실패하면서 이시바 시게루 내각의 운명이 시계 제로 상태에 놓이게 됐다. 이시바 총리는 “엄중한 심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며 연정 확대를 통해 정권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당내 리더십이 크게 흔들리며 조기 교체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일본 정국 불안정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에 엔화도 불안정한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28일 총선 집계 결과 중의원 465석 가운데 여당인 자민당 191석, 공명당은 24석으로 총 의석수는 215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자민당 단독 과반은 물론 연립여당으로도 15년 만에 과반(233석) 확보에도 실패했다. 특히 자민당은 현직 각료인 마키하라 히데키 법무상과 오자토 야스히로 농림수산상 등 전·현직 각료들이 대거 낙선한 것을 포함해 공명당 이시이 게이이치 대표도 낙선하는 등 그야말로 대참패였다.

그는 이날 열린 기자회견에서 “중의원 선거에서 국민으로부터 매우 엄중한 심판을 받았다”면서 “엄중한 결과는 당의 개혁 자세에 대한 국민의 준엄한 질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시바 총리는 취임 전 조기 총선을 선언하며 승부를 던졌지만, 여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하면서 책임론이 거세지고 있다. 선거 이후 거취에 대한 질문에 그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며 “연립 등 여러 방법이 있다”고 사퇴설을 일축했다. 그러면서 “친인척 논리나 당내 논리는 일절 배제하고, 저 자신도 초심으로 돌아가 엄격한 개혁을 추진하겠다”며 “특히 정치와 돈에 대해서는 더욱 과감한 개혁을 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이시바 총리의 뜻이 관철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가 연립 여당에 참여하는 정당을 늘려 정권을 유지하더라도 정책 추진에 힘이 빠지는 것은 물론 내년 7월 일본 참의원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당내 지지 기반이 약한 이시바 흔들기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당장 내달 7일로 거론되는 총리지명을 위한 특별국회도 발등의 불이다. 일본 국회는 총선 이후 특별국회를 열어 다시 총리 지명을 하게 된다. 연립 여당 참패로 이시바 총리의 재지명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8일 일본 도쿄의 한 증권사 밖에서 행인이 미국 달러 대비 현재 일본 엔화 환율을 표시하는 전광판 앞을 지나가고 있다.(사진=로이터)
자민당은 제1당 지위는 유지한 만큼 무소속 의원 영입과 일부 야당과 연계해 연립 정부 확대에 나설 전망이다. 하지만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은 여당과 연대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국민민주당과 일본유신회 대표 역시 “고려하고 있지 않다”거나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등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어 외연 확대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국이 불확실성에 휩싸이면서 엔화 가치는 석 달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에 따르면 이날 달러·엔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0.91% 오른 153.33~153.34엔(오후 5시 6분 기준)을 기록하며 엔화 가치는 지난 7월31일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닛케이는 “선거 직후 국내 정치 불확실성으로 인해 일본은행이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서기 어려워졌다는 관측이 확산하면서 엔화가 약세를 보였다”고 짚었다.

헤지펀드들이 선거 전 엔화를 매도한 것도 환율 변동성을 부추긴 요인으로 거론된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따르면 지난 22일까지 투기성 투자자들은 이달 들어 처음으로 엔화 순매도 포지션으로 전환했다. 자산운용사들도 8월 중순 이후 처음으로 1만7226계약의 순매도 포지션으로 바꿨다.

엔화 변동성은 당분간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정치 불안정에 일본은행이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서기 어려워진 데다,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의 불확실성까지 더해져 엔화가 변동성에 더욱 취약해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엔화가 이토록 정치적 불확실성에 휘둘린 적은 거의 없없다”고 평가하며 “당국이 엔화 강세에 개입하도록 유도, 엔화의 매력을 더욱 떨어뜨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날 도쿄 증시는 1% 급락세로 출발 했으나 거래 시작 30분 만에 2% 가까이 반등에 성공했다. 닛케이 평균주가는 전 거래일보다 691.61엔(1.82%) 오른 3만8605.53에 마감했다. 엔저에 따른 수출 기업에 대한 실적 개선 기대감에 저금리 기조 유지 전망 등이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