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개정협상 나름 '선방'…무역보복 불확실성은 남아

by김상윤 기자
2018.03.26 17:16:44

한미FTA·철강관세면제 손익계산서
자동차 일부 내줬지만 피해 크지 않아
''레드라인'' 설정 농산물 추가 개방 막아
철강 관세 면제됐지만 쿼터제한 아쉬워
부당한 수입규제 ''안전장치'' 지켜봐야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 (FTA) 개정 및 미국 철강 관세 협상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상윤 김일중 김정현 기자] “이것은 중요한 팩트입니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26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개정협상 및 철광관세부과 협상에 대한 결과 브리핑에서 세번이나 언급한 발언이다. 그는 “지난해 기준으로 포드사는 8107대, GM사는 6762대, 크라이슬러사는 4843대 등 한국시장 수출 물량은 모두 1만대 미만”이라고 누차 강조했다.

미국은 이번 한미FTA 개정협상에서 한국의 자동차 안전·환경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더라도 미국 기준만 맞추면 수입을 허용하는 차량 쿼터(수입 할당량)를 기존 2만5000대에서 5만대로 늘리는 성과를 챙겼다. 하지만 우리나라 시장에서 각사별 판매량은 1만대 미만인 터라 우리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인 게 사실이다. 그는 “협상 상대방이 있기 때문에 상대방을 불필요하게 자극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면서 사실상 미국이 챙긴 이익은 크지 않다는 점을 에둘러 표현했다.

한미 양국이 사실상 타결한 한미FTA 개정 및 철강관세 협상 성적표는 한국 입장에서는 ‘나름 선방’으로 요약된다. 미국이 ‘한미FTA 폐기’까지 언급하면서 강하게 개정을 밀어붙이고 해묵은 ‘무역확장법 232조’를 끄집어내 안보를 이유로 25% 철강관세 부과까지 들고나온 상황을 감안하면 크게 불리하지 않은 성적을 냈다.

큰틀에서 미국은 자동차와 철강부분에서 명분을 챙겼다. 한국에서 안전·환경 미적용 수입쿼터를 2만5000대에서 5만대를 늘리고, 한국산 픽업트럭에 대한 관세를 20년 연장했다. 둘다 미국 자동차협회에서 줄기차게 요구했던 사안이었던 만큼 트럼프 대통령입장에서는 ‘러스트 벨트(공업 쇠락지구)’ 지지층을 달랠 수 있는 카드는 확보한 셈이다.

이외 미국은 다른 관심사인 글로벌 혁신 신약 약가제도와 원산지 검증에 대해서는 한미FTA에 합치되는 방식으로 제도를 개선·보완하기로 합의했다. 다만 구체적인 약가제도 변경에 합의한 것은 아니며 한미FTA에 합치되는 방식으로 개선한다는 원칙적 동의 수준이다.



철강 분야 역시 한국을 관세 부과국에서 제외했지만 별도 쿼터를 설정하면서 수입량을 제한했다. 한국산 철강의 대미 수출의 70%에 해당하는 쿼터를 받았다. 미국이 철강산업 가동률을 72~73%에서 80%로 올리겠다는 목표로 연간 1000만톤(t) 이상 수입을 줄이겠다는 계획에 비춰봤을 때 어느정도 철강업계를 달랠 수 있는 부분이다.

한국이 챙긴 부분은 어떨까. 트럼프 대통령의 명분을 챙겨주고, 실리를 적잖이 챙겼다. 우선 미국이 줄기차게 일방적으로 요구했던 농축산물 추가 개방을 막았다. 자동차도 비관세 장벽을 일부 완화한 측면은 있지만 영향은 제한적인데다 미국산 자동차부품 의무사용 불가라는 성과는 챙겼다. 현대차·기아차 미국 공장이 대부분 부품을 국내에서 수입했던 터라 최악의 결과는 막은 셈이다.

현실적으로 가장 우려가 컸던 철강관세는 협상 중인 국가중에서 우리나라가 가장 먼저 면제 혜택을 받았다. 쿼터가 설정되긴 했지만 관세 일률 부과라는 최악의 결과는 피한 셈이다. 김 본부장은 “약 20개가 넘는 철강 수출국 입장에서 볼 때 빠져나오지 못하면 관세가 25% 또는 그 이상으로 올라갈 수 있다. 계속 남아있으면 쪽박 차는 것”이라며 “한국이 가장 먼저 국가 협상을 마무리하면서 철강 기업의 대미 수출 불확실성을 조기에 해소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우리측이 요구했던 미국의 부당한 수입규제 ‘안전장치’도 나름 큰틀에서는 합의를 했지만, 추가 무역보복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우리 협상단은 ‘불리한 가용정보’(AFA)와 ‘특별한 시장상황’(PMS) 등 미국이 우리 업계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기 위해 사용하는 반덤핑 조사기법 등에 대한 절차적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했다. 양국이 반덤핑·상계 관세 조사를 투명하고 예측 가능하게 진행하고 구체화하자는 내용을 구속력 있는 조항으로 합의했다.

다만 구체적인 협정 문구는 아직 실무자들이 계속 협의하고 있어 최종 타결 결과를 따져봐야 한다. 한미FTA 10.5조는 협정국으로부터의 수입이 자국 산업에 대한 심각한 피해의 중대한 원인이 아닐 경우 해당 협정국의 품목은 글로벌 세이프가드에서 ‘제외할 수 있다(may exclude)’라고 규정돼 있다. 우리측은 ‘제외할 수 있다’문구를 ‘제외해야 한다(shall exclude)’로 개선하는 방안을 요구했는데, 이 조항이 반영될지가 관건이다.

문종철 산업연구원 국제산업협력실 연구위원은 “미국측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협상에서 이 정도 결과는 나름 이익 균형을 챙긴 것으로 풀이된다”면서 “무역구제 남용 방지 수단을 확실하게 챙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국이 쉽게 내줄 수 없었던 카드라 큰 틀에서 합의한 것은 나름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