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형 타워크레인 ‘人災의 뇌관’이냐 ‘4차산업혁명’이냐

by정병묵 기자
2019.06.04 18:18:46

서로 싸우던 민노총·한노총, 왜 손잡았나
노조 "소형 크레인, 안전에 취약"
소형 크레인 일방적 사용제한 어려워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타워크레인 양대 노조가 무기한 총파업에 들어간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염리동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타워크레인들이 멈춰서 있다. 양대 노총 타워크레인 노조가 동시파업에 돌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데일리 정병묵 기자] “파업이 며칠로 끝나면 공정관리에 큰 영향을 주지 않지만, 지금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 걱정입니다. 공사기간이 늦어지면 무엇보다 입주민과의 약속인 입주일을 맞추지 못해 보상금도 물어야 하고, 회사 신용에도 큰 타격을 받습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에 소속된 타워크레인 노조가 지난 3일 오후 5시 전국 1500대 타워크레인 위 고공농성을 시작으로 본격 파업에 돌입하면서 건설사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일자리를 요구하는 노조들의 잇따른 집회로 공사가 늦어지고 있는 마당에 이번엔 대형 타워크레인이 멈춰서 다른 후속 작업들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양대 노조는 안전사고를 이유로 무인 소형 타워크레인 사용을 제한해 달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당장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어서 파업 장기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날 공사가 멈춰선 아파트 사업장은 전국 151개 사업장으로 추산된다. 민주노총 추산 공사를 중단한 주요 아파트 현장은 △서울 39개 △인천 14개 △경기 31개 △전북 18개 △광주·전남 25개 △대구·경북 14개 △부산·울산·경남 10개 등이다.

타워크레인은 고층 건축물 골조공사를 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장비다. 타워크레인이 없이는 건물 뼈대를 세울 수 없어 다른 작업을 하기가 사실상 어렵다. 한화건설 관계자는 “파업 현장 가운데 공사 진행이 불가피한 곳은 이동식 크레인을 가져와서 진행하거나 크레인이 필요없는 작업 위주의 관리작업 등만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타워크레인은 기계가 들어 올릴 수 있는 자재 무게와 조종 방식에 따라 대형과 소형으로 나뉜다. 대형은 무게 3t 이상을, 소형은 3t 미만을 들어 올리는 데 사용된다. 대형은 작업자가 크레인 꼭대기에 직접 올라가 조종하며 소형은 지상에서 원격으로 조종해 작업한다. 이달 기준 전국에 등록된 타워크레인은 총 6230대인데 이 중 대형이 4385대(70.4%), 소형이 1845대(29.6%)다.

양대 노총의 타워크레인 노조가 파업을 단행한 이유는 지난 2014년부터 소형 타워크레인이 건설기계로 정식 등록됐기 때문이다. 소형 타워크레인은 국가공인 자격증을 소지한 전문가가 아니라도 20시간 안전, 기초 교육을 받으면 누구나 운전할 수 있다.

노조는 정부가 불법 개조한 소형 타워크레인을 방치해 사고 위험을 더 키우고 있다면서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소형 타워크레인의 명확한 건설기계 등록제원 조건이 없어 불법 개조된 노후 장비와 중국산 불량기계가 대거 등록돼 사고가 많다는 것이다. 노조의 핵심 요구는 소형 타워크레인의 ‘지브(Jib·크레인의 ‘T’자 모양에서 가로로 뻗어 있는 부분)’ 길이를 30m 이내로 제한해 저층 건물에만 사용하도록 규격을 정해 달라는 것이다.



최동주 타워크레인 분과위원장은 “소형 타워크레인 관련 제대로 된 등록 기준이 없고 검사도 엉터리로 진행하거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이라며 “정부는 소형 타워크레인을 4차 산업혁명 기술이라면서 특혜를 줬고 그 결과 2015년에 불과 250대였던 소형 타워크레인이 지금 현재 2000여개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 사이 노동자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다. 노조에 따르면 지난 4년 동안 30여건의 사고가 발생했다.

소형 타워크레인 도입 이후 일자리가 줄어들어 파업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노조 관계자는 “일자리가 줄어든 건 사실이지만 그걸 떠나 안전한 일자리를 원하는 것”이라며 “죽으려고 일 하는 게 아니라 살려고 일 하는 것 아닌가. 국토부가 소형 타워 관련 대책을 제대로 내놓으면 점거 농성을 해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토부는 노조의 소형 타워크레인 사용 제한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소형을 사용할지 대형을 사용할지 여부는 사업자 소관이고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며 “교육만 이수하면 운전할 수 있는 소형 타워크레인이 더 위험하고 사고도 잦다는 노조 주장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전했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도 “조종사가 직접 크레인 꼭대기에서 조종하는 대형보다 지상에서 원격으로 조종하는 소형이 인명 사고 발생 위험이 더 낮을 수 있다”면서 “사고 발생 위험과 관련된 데이터나 조사 결과는 아직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특히 타워크레인 전반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정책을 마련하고 단속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3t 이상 타워크레인은 2017년 11월부터, 3t 미만 소형 타워크레인은 지난해 11월부터 각각 허위연식 등록 여부, 불법 개조 등 전수조사를 실시했고 적발된 허위 장비는 등록 말소와 형사 고발 등으로 현장에서 퇴출 조치했다”며 “설계도와 다르게 제작·사용되는 장비를 전량 리콜 조치하는 등 연말까지 전수조사를 지속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이날 타워크레인 제작 기준을 명확히 하는 ‘건설기계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이용호 무소속 의원(전북 남원·임실·순창)은 “현재 타워크레인은 불법개조나 제원표 위조 외에도 중국산 ‘짝퉁’ 생산과 수입, 저질·저가 장비 도입 등 직면한 문제가 많다”며 “얼마나 제대로 만드느냐는 제작 기준을 명확히 하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파업이 얼마나 장기화 할 지 여부도 관심사다. 노조는 우선 소형 타워크레인 규격을 정부가 정해 주는 대로 고공투쟁은 중단한다는 입장이다. 노조 관계자는 “파업 중단 여부는 임단협이 걸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사측(한국타워크레인임대업협동조합)과 합의가 이뤄지면 (파업을) 중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는 사측에 7%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