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노조 와해' 반헌법적 행위 맞지만…이상훈 '위법수집증거'로 무죄(종합)

by남궁민관 기자
2020.08.10 18:29:05

1심서 징역 1년6월 선고받은 이상훈 2심서 무죄
法 "영장주의원칙 실현…죄 없어 무죄는 아냐"
노동부당행위 인정…다른 임직원들 그대로 유죄
다만 파견법 일부 무죄…금속노조 "법원 삼성편" 반발

[이데일리 남궁민관 기자]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 와해에 개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던 이상훈 전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1심에서 인정한 일부 증거들이 위법하게 수집돼 항소심에서 그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에 따른 판단이다.

1심과 마찬가지로 항소심 역시 큰 틀에서 삼성그룹 차원의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하면서 이 전 의장을 제외한 다른 삼성그룹 계열사 전·현직 임직원들에게 유죄를 선고했는데, 앞선 위법수집증거와 더불어 일부 파견법 위반 등 혐의를 1심과 달리 무죄로 판단하며 대체로 형량이 줄어든 모양새다.

이상훈 전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이 지난해 12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法 이상훈에 “죄가 없어 무죄를 선고하는 것 아냐”

서울고법 형사3부(재판장 배준현)는 10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이 전 의장의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1년 6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전 의장에 대한 증거인 CFO 보고문건에 대해 위법수집증거로 판단돼 다른 피고인들의 진술만을 갖고 공모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면서 “다만 CFO 보고문건의 증거능력이 인정된다면 1심에서 인정한 상당 부분이 당심에서도 유죄로 인정됐을 것”이라며 “이 전 의장의 항소를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하지만 결코 이 전 의장이 죄가 없어 무죄를 선고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이 전 의장을 질타했다.

앞서 검찰은 2018년 2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이른바 ‘다스’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삼성전자 본사를 압수수색하던 와중 인사팀 직원의 증거인멸 정황을 포착, 당초 압수수색 영장에 기재되지 않은 장소인 직원 차량에서 하드디스크 등을 발견하고 해당 직원에 영장을 제시하지 않고 이를 압수했다.

1심에서는 이를 증거로 인정했지만, 항소심에서는 “압수수색 영장에 기재된 수색·검증장소의 문언을 엄격하게 해석해야 하며, 영장 제시는 영장주의 원칙을 절차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절차인 점을 고려해 영장을 제시하지 않고 수집한 증거의 증거능력을 제한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룹차원의 부당노동행위 인정…삼성 임직원 줄줄히 유죄



이 전 의장을 제외한 다른 삼성그룹 임직원들에 대해서는 1심과 마찬가지로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그룹 차원의 부당노동행위가 충분히 인정될 뿐더러, 삼성전자서비스가 사실상 협력업체들에 ‘사용자’ 지위가 인정된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삼성그룹의 경우 무노조 경영을 방침으로 삼고 미래전략실을 중심으로 노조설립을 차단하거나 이를 와해하는 노사 전략을 수립하고 계열사 및 자회사에 전파했고, 노조 설립단계별로 시나리오를 만들어 노조에 대응해왔다”며 “이 과정에서 노조 탈퇴를 종용하는 등의 광범위한 부당노동행위가 이뤄졌으며 이로 인한 근로자들의 정신적 고통과 피해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이고 향후 기업에서 이러한 반헌법적 행위가 재발하지 않기 위해 상응하는 처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앞선 위법수집증거 판단과 함께 파견법 등 1심에서 유죄로 본 혐의에 대한 무죄 판단이 더해지면서 대체로 형량은 줄어들었다. 이중 파견법과 관련 재판부는 “삼성전자서비스가 협력업체를 하부조직처럼 운영했다거나 협력업체 수리기사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상당한 지휘·명령을 했음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봐 근로자파견 관계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이에 1심에서 징역 1년 6월은 선고받은 강경훈 삼성전자 부사장은 징역 1년 4월로 2개월이 줄었다. 실무자로 평가되는 박상범 전 삼성전자서비스 대표(징역 1년 4월)와 최평석 전 삼성전자서비스 전무(징역 1년) 역시 각각 2개월 감형됐다. 다만 목장균 전 삼성전자 인사지원그룹장은 1심과 같은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이 외에도 노조 와해와 직접적 관련이 있는 삼성전자 전·현직 인사팀 임원들에게는 1심과 같은 징역형 집행유예가 선고됐지만 모두 징역 또는 집행유예 기간이 다소간 줄었다. 원기찬 삼성라이온즈 대표는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 정금용 삼성물산 대표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박용기 삼성전자 부사장은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노조 “법원은 삼성편” 반발

이 전 의장의 무죄에 더해 전반적으로 1심 대비 가벼워진 형이 선고되자 전국금속노동조합은 즉각 반발했다.

전국금속노조는 성명서를 통해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사건이 역사적인 이유는 우연에 의해 발견한 증거자료 덕분에 재벌의 노동법 위반 행위를 입증하고 처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재벌 대기업의 노조 파괴 범죄는 정상적인 수사로 입증할 수 없다”며 “항소심은 검찰이 확보한 상당수의 증거자료가 효력이 없다고 판정했는데, 누가 법리를 곡해했는지 몰라도 삼성의 손을 들어준 것이 누군지는 분명하다. 법원은 삼성의 편”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1심의 파견법 위반 유죄를 뒤집은 것도 문제”라며 “판결대로라면 서비스 업종에서 간접고용을 근절하기는커녕 오히려 자본이 당당하게 모든 서비스 노동자를 하청으로 돌릴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