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박수익 기자
2015.06.10 19:22:56
자사주매각해 의결권 부활…SK-소버린 사태와 유사
합병주총 주주확정시한 기다려 전격 발표한 듯
[이데일리 박수익 정병묵 기자] 삼성그룹이 미국계 엘리엇펀드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반대에 맞서 KCC를 ‘백기사’로 끌어들이는 반격 카드를 내밀었다.
삼성물산은 10일 오후 자사주 899만557주(5.75%) 전량을 KCC에 매각키로 했다고 밝혔다. 주당 매각단가는 이날 종가인 7만5000원으로 총 매각금액은 6740억원. 이번 자사주 매각거래는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주총을 위한 주주확정시한인 11일 장외거래로 이뤄진다.
삼성물산은 자사주 매각 목적을 “회사 성장성 확보를 위한 합병가결 추진 및 재무구조 개선”이라고 밝혀, 엘리엇펀드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임을 분명히 했다. 자사주는 상법상 의결권이 부여되지 않지만, 백기사에 매각하면 의결권이 부활돼 우호지분이 된다.
대표적 사례가 2003년 SK-소버린 분쟁이다. 당시 SK(003600)는 소버린에 맞서 우호지분 확보를 위해 하나은행 등 금융권에 자사주 4.5%를 매각했다. 이 과정에서 소버린이 SK의 자사주 매각시도에 의결권 침해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이 기각한 바 있다. 당시 사례는 이번 경우와 유사한 점이 많아 삼성측은 이미 다각적 법률적 검토를 거쳐 자사주 매각카드를 준비한 후, 주주확정시한 마감일이라는 최적의 시점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올 초 엔씨소프트(036570)가 넥슨에 맞선 전략도 자사주 매각이었다.
이로써 삼성 측은 기존 보유지분 13.9%과 함께 KCC로 넘겨 부활시킨 의결권을 합쳐 20%에 육박하는 19.8%를 확보하게 됐다. 엘리엇펀드의 지분율은 7.12%다. 지난 4일 경영참여를 선언한 엘리엇은 ‘냉각기간’(Cooling-off period)) 5거래일을 적용받아 11일까지 지분 추가 취득이 제한된다. 자본시장법상 냉각기간에 취득한 주식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고 처분명령 대상이기 되기 때문에 엘리엇이 내달 17일 주총에서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은 7.12%로 확정됐다.
삼성물산의 자사주 매각 전 엘리엇과의 지분율 격차는 6.8%포인트였으나, 자사주가 KCC로 넘어가는 동시에 의결권이 부활하면서 격차를 12.6%포인트로 확대했다.
만약 현재의 지분율이 유지된 가운데 다음달 17일 임시주총을 거쳐 예정된 비율로 합병이 완료된다면, 삼성 측은 합병회사 지분을 50% 가까이 확보하게 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16.5%)과 특수관계인 포함 삼성 측 지분이 40.2%가 되고, ‘백기사’ KCC도 삼성물산 자사주 매입분과 기존 제일모직 보유분을 합쳐 합병회사 지분 8.96%를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삼성 측이 50% 육박하는 우호지분을 확보하는데 비해 엘리엇은 현재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 7.12%를 그대로 유지할 경우 합병 후에는 2.49%로 대폭 축소된다. 이 경우 사실상 지분경쟁의 의미는 사라진다. 다만 삼성의 반격카드에 맞서 엘리엇도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우호세력을 공개할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 엘리엇의 경영참여 선언후 삼성물산의 외국인 지분율은 표면적으로 1.9%가량 높아진 상황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삼성물산의 자사주 매각은 내달 합병을 위한 임시주총에서 의결권 확보에 급박한 상황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국내기관의 경우 삼성물산보다 제일모직의 주식을 많이 들고 있는데, 제일모직의 주식가치 향상을 위해서라도 삼성측에 동참해달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만큼 엘리엇은 내밀 수 있는 카드가 많은 유리한 위치에 서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면서 “엘리엇은 전날 제기한 주총결의금지 가처분 신청에서 패소하더라도 투자자국가소송(ISD)로 이슈를 끌고 가게 되면 ‘한국법이 문제’라는 논리를 만들어 삼성을 계속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삼성물산의 자사주 매각에 화답한 KCC(002380)의 행보도 관심이다. 건축자재업체인 KCC로서는 국내 굴지 건설업체인 삼성물산과의 협력관계도 감안했다는 설명이지만, KCC는 이전부터 상장회사 지분투자로 유명한 곳이다. KCC는 현재 삼성물산과 합병대상인 제일모직 지분도 10.18%(1375만주) 보우중이다. 현재 합병비율(1:0.35)대로 진행되면 향후 합병법인 지분 8.96%를 보유하게 된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합병후 16.5%)에 이어 단일주주로는 2대주주에 해당하는 지분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