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포럼]브룬틀란 전 총리 "여성 사회진출 위해 기업·가정에 세제혜택 줘야"
by김보리 기자
2013.11.28 19:29:19
브룬툴란이 말하는 여성이 잘 사는 나라가 되려면
[이데일리 김보리 기자] “여성의 사회 진출을 위해서는 기업과 가정에 세제 혜택을 줘야 합니다. 가정의 소득이 아닌 개인 소득에 세금을 매겨야 합니다. 여성이 가정이냐 일이냐 이분법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지 않도록, 이를 세제지원으로 지원해주는 것입니다.”
그로 할렘 브룬틀란 전 노르웨이 총리의 여성 고용에 대한 중요성은 다소 급진적으로까지 들렸다. 여성고용창출을 위해선 제도적 장치뿐만 아니라 세제지원책까지 만들어야 한다는 것. 제도로써 하드웨어를 만들고, 세제라는 인센티브를 덧씌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전근대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제도로서 그 인식을 깨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41세에 노르웨이 최초의 여성 총리이자 최연소 총리가 된 그의 행동은 과감했다. 그는 1981년 공공부문에 양성평등법을 도입해 모든 정당 내에서는 한 성이 40% 이상은 차지하도록 했다. 남성 일변도의 정치 무대에서 여성에게 큰 지렛대가 됐다. 단적인 예가 1986년 그가 새 정부를 꾸렸을 때 내각 구성이다. 그는 18명의 각료 중 8명을 여성으로 채웠다. 이는 유럽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화제가 됐다.
최근 노르웨이에서는 보수파에서 두 번째 여성총리로 에르나 솔베르그 총리가 탄생했다. 브룬틀란 전 총리가 유리천장을 뚫으면서 이제는 여성의 사회진출이 조금 수월해졌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제도로서 먼저 인식의 장벽을 깨야 다음 행보가 보다 수월해진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그는 여성 인권이 잘 보장된 노르웨이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1950년대 제가 어린아이였을 때 만해도 여아와 남아의 수업 구성이 달랐습니다. 여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보다 수학 시간을 줄여서 요리 수업에 시간을 할애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과거는 너무 쉽게 잊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금 노르웨이의 여권 역시 투쟁의 결과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지만 공공부문에서 여성의 사회 진출은 어느 정도 확보됐지만 민간 부문은 여전히 미비하다. 노르웨이는 이를 위해 지난 2006년 성균형에 대한 룰을 민간부문에도 도입했다. 2002년 기준으로 노르웨이의 기업에서 여성 임원(이사 이상)의 비율은 6% 불과했기 때문이다. 가장 여권이 발달한 노르웨이에서도 여성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여전히 진행형인 셈이다.
“여성에게 권한을 줬을 때 국가는 힘을 갖는다.” 브룬틀란의 여성에 대한 믿음은 확고했다. 그는 IMF(국제통화기금)의 한 연구를 인용하며 “여성 노동자가 남성노동자만큼 늘어난다면, 일본은 국가 GDP의 9%, 미국은 5%가 향상될 것이란 보고가 있다”고 말했다.
“여성은 지속가능한 발전의 핵심 가치다. 여성 참여가 높을수록 사회는 발전합니다. 노르웨이가 바로 단적인 예입니다. 노르웨이의 산유국보다 높은 GDP는 여성 참여가 한 요인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는 노르웨이에서 여성의 힘은 지속 가능한 발전의 ‘에너지’라고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렇다면 여성이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드는 것이 그 사회의 저력인 셈이다. 노르웨이는 아버지의 육아휴직 제도를 정착시켰다. 아버지도 14주 동안 육아휴직을 쓸 수 있으며 실제 이 제도 시행 후 90%의 남성이 육아휴직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아버지의 육아 비율이 지난해 2.8%, 올해는 3.2%에 그치는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브룬틀란은 여성이란 그 자체가 장점이 되는 것은 아님을 강조했다. 여성이 권리와 의무를 다할 때 이 모든 것은 성립된다는 것. 그는 여성이기 때문에 ‘연약한’ 목소리는 변명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여성이라고 구석에서 조용히 있어선 안 됩니다. 목소리를 명확히 활용해야 합니다.‘방관자’로서의 여성은 어떤 권리도 쟁취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