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대통령의 격정토로.."립서비스·위선" 국회 맹비난

by이준기 기자
2015.11.24 17:00:14

11·14 민중총궐기 '불법'으로 규정..민노총 위원장 사실상 즉각 체포 지시

[이데일리 이준기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예정에 없던 긴급 국무회의를 소집해 폭력시위·과잉진압 논란을 불러온 이른바 ‘11·14 민중총궐기’를 ‘불법 폭력사태’로 규정, 엄단을 지시한 배경에는 현 상황을 방치할 경우 노동개혁·역사교과서 국정화 등 자신의 임기 후반기 역점과제가 올스톱 될 수 있다는 우려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서거로 나라가 국상(國喪) 중임에도 박 대통령이 13분에 걸친 모두발언을 통해 ‘통진당 부활·이석기 석방’ 등 시위과정에서 나왔던 구호까지 직접 언급했고 평소 자제했던 ‘손 제스쳐’까지 써가며 목청을 높인 건 자신이 세운 국정 스케줄에서 단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1차 민중총궐기를 주도했던 민주노총이 또다시 다음달 5일 2차 총궐기를 준비하고 있는 만큼 강경 대응 방침을 천명, ‘엄정한 법집행’이라는 경고의 의미도 담겼다. 이 때문에 민주노총이 총궐기를 강행할 경우 향후 정국은 급속도로 얼어붙을 공산이 커졌다. 앞서 경찰이 21일 2500명 이상의 경찰병력을 투입해 민주노총 등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면서 애초 전국 각지에서 산발적으로 진행하려던 민주노총은 이에 대한 항의의 뜻을 담아 서울 집결 투쟁으로 변경했다. 1999년 민주노총 합법화 이후 압수수색은 처음이었다.

박 대통령은 더 나아가 “전 세계가 테러로 많은 사상자를 내고 있는 때에 테러 단체들이 불법 시위에 섞여 들어와서 국민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 것”이라며 프랑스 파리 연쇄 테러 등 테러리즘과 우리의 과격 시위를 연결해 우려를 보이기까지 했다.

박 대통령은 조계사에 은신 중인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해서도 사실상 즉각적인 검거 지시를 내렸다. 박 대통령은 “불법 폭력집회 종료 후에도 수배 중인 민노총 위원장은 경찰의 추적을 피해 종교단체에 은신한 채 2차 불법집회를 준비하면서 공권력을 우롱하고 있다”며 “수배 중인 상황에서 공권력을 무시하고 계속 불법집회를 주도하는 것은 정부로서 결코 묵과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또 “복면 시위는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이슬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의 예를 들어 복면시위 금지 당위성을 역설했다.



이날 국무회의 긴급 소집 배경에 대해 박 대통령은 “파리와 말리 등에서 발생한 연이은 테러로 전 세계가 경악하고 있고, 이에 어느 나라도 예외일 수 없다는 급박함 때문”이라고 설명하면서 14년간 지연돼온 테러관련 법안의 조속한 입법도 촉구했다.

박 대통령 국회를 “맨날 앉아서 립서비스만 하는” 집단으로 규정하며 ‘위선’ ‘직무유기’ ‘국민에 대한 도전’ 등의 격한 단어를 골라가며 맹비난했다. 국회가 당리당략에만 얽매인 채 개혁·민생법안 처리는 뒷전이라는 이유에서다. 서거 정국이지만, 직접 민생·정책 현안을 챙겨야 한다는 다급한 인식이 작용한 것으로 읽힌다.

특히 터키·필리핀·말레이시아에서 열린 다자 정상외교를 통해 노동개혁 등 4대 구조개혁과 서비스산업 육성 등을 선진·개도국 간 격차를 메울 수 있는 ‘개발모델’로 제시했고, 각국 정상들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한국이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성장전략 이행성과 점검 평가에서 2위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하지만 우리 내부에선 국회의 입법 지연으로 ‘개혁’이 지체되는 현실을 개탄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지난 19일(현지시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도중 짬을 내어 쯔엉 떤 상 베트남 주석과도 스탠딩 환담을 한 사실을 상기한 점을 비춰보면, 국회에서 비준이 지연되고 있는 한·중, 한·베트남, 한·뉴질랜드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부담감도 ‘격정 토로’의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다.

박 대통령은 “경제는 정치권과 국회, 각 지자체와 국민들 모두가 힘을 합할 때만이 가능한 것”이라며 경제활성화법 지연으로 피해를 보는 국민들이 정치권에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다자회의 참석 전 지난 10일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꺼내 든 ‘총선심판론’과 맥을 같이 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