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정부·한은, 국채 ‘레포 토큰화’ 추진…CBDC 연계 실증

by서민지 기자
2026.07.16 13:14:27

정부·한은, ''프로젝트 한강'' 활용 레포 토큰화 실증
통합원장서 국채 담보 및 대금 이전 동시에 처리
담보·마진콜 자동화 및 일중 유동성 관리 개선 기대
정형증권 토큰화 규제 여는 첫 실험 될지 시장 주목

[이데일리 서민지 기자] 정부와 한국은행이 기관용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를 활용해 국채 환매조건부채권(RP·레포) 거래를 블록체인 상에서 처리하는 실증사업을 추진한다. 채권과 머니마켓펀드(MMF), 주식 등 정형증권의 토큰화가 아직 제도적으로 허용되지 않은 가운데 레포 토큰화가 관련 규제를 여는 첫 실험이 될지 주목된다.

자산 토큰화의 유용성. (표=한국은행)
16일 관계부처와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와 한은은 ‘2026년 경제성장전략’에 포함된 국채 토큰화 실증 시범사업의 거래 방식으로 레포를 활용하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레포는 금융기관이 국채 등 우량 증권을 담보로 제공하고 단기 자금을 조달한 뒤 일정 기간 후 해당 증권을 다시 사들이는 거래다. 금융회사와 한은이 단기 유동성을 공급하거나 흡수할 때 활용하는 대표적인 단기자금시장이다.

한은은 이번 실증사업에서 ‘프로젝트 한강’을 통해 구축한 통합원장에서 국채를 토큰 형태로 발행한 뒤 이를 담보로 레포 거래를 진행하는 구조를 검증하게 된다. 통합원장에서 국채를 토큰화하면 기존에 분리돼 있던 메시징과 청산, 결제 절차를 하나의 시스템에서 처리할 수 있다. 자산 이전과 대금 지급을 하나의 거래로 묶어 동시에 처리하는 ‘원자적 결제’도 가능해진다.

현행 제도에서는 정형증권 토큰화가 허용되지 않는 만큼 정부는 이번 실증 과정에서 규제 특례가 필요할 경우 금융규제 샌드박스를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거래 구조와 참여 기관, 대상 국채 등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실증사업의 세부 대상과 일정은 올해 하반기 관계기관 협의를 거쳐 정해질 예정이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금융위원회의 허가가 필요한 부분은 규제 샌드박스 신청 등을 통해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레포시장이 거래 규모가 크고 금융기관의 자금 조달과 유동성 관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만큼 거래 효율성이 소폭 개선되더라도 상당한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평가한다.

한 외국계 은행 관계자는 “레포 펀딩의 가장 큰 과제는 담보 관리”라며 “토큰화가 이뤄지면 일중 거래가 활성화돼 필요한 시점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계약 구조와 소유권 이전, 담보 재사용 등 복잡하게 얽힌 문제도 블록체인에서 보다 손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앞서 한은 금융안정국 비전통금융분석팀이 발표한 ‘국내외 자산 토큰화 현황 및 향후 정책 과제’ 보고서도 레포 거래를 토큰화하면 담보 관리와 단기 유동성 공급의 효율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스마트계약을 활용하면 헤어컷 적용과 추가 담보 요청, 청산 등 마진콜 관리 절차를 프로그래밍해 자동화할 수 있다. 토큰화된 자산은 별도로 매각하지 않고도 디지털 인프라에서 즉시 담보로 설정할 수 있어 담보 활용 속도도 빨라질 수 있다.

특히 토큰화는 일중 레포 거래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일중 레포는 금융기관이 하루 중 짧은 시간 동안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거래지만, 복잡한 절차와 높은 운영 비용 탓에 그동안 활성화되기 어려웠다. 결제와 담보 관리가 자동화되면 금융기관이 일시적인 유동성 부족에 보다 신속하게 대응하고 자금시장의 유동성 배분 효율도 높일 수 있다.

레포 거래가 실시간에 가깝게 처리되면 한은의 통화정책 운용 정밀성도 높아질 수 있다. 유동성을 공급하거나 흡수하는 과정에서 담보와 대금의 이동을 신속하게 확인하고 거래 조건을 자동으로 집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도 최근 국채 토큰화와 관련해“국채 발행을 토큰화한다면 중앙은행 본연의 책무인 통화정책과 금융안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시장에서는 이번 실증이 MMF 등 다른 정형증권의 토큰화 제도화를 앞당기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내년 2월 4일 토큰증권 관련 법 시행을 앞두고 금융위원회는 이달 말 토큰증권 시행령 등 하위 법규와 후속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예정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업권과 지속적으로 실무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단계”라고 밝혔다.

해외에서는 정부와 금융기관이 자산시장 토큰화 경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영국 정부는 글로벌 금융회사 54곳이 참여하는 토큰화 태스크포스(TF)를 출범하고 레포 거래 실증사업에 나섰다. 연내 실증 성과를 낸 뒤 내년 봄 실제 거래에 착수하는 것이 목표다. 미국 금융기관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블록체인 기반 레포 거래를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JP모건체이스의 블록체인 기반 레포 플랫폼에서 처리된 누적 거래 규모는 3조달러(약 4462조원)에 달한다.

재경부 관계자는 “미국을 중심으로 금융 인프라가 블록체인 기반으로 전환되는 상황에서 우리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차원에서 국채 토큰화를 추진하는 것”이라며 “올해 하반기 어떤 국채와 거래를 대상으로 실증할지 연구·협의한 뒤 내년에 실증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