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문형배, 만장일치 尹파면 이끌고 2주 뒤 퇴임
by성주원 기자
2025.04.04 16:34:14
[윤석열 파면]
헌재소장 권한대행으로 윤 탄핵심판 진두지휘
편향성 공격에도 헌법·양심 강조하며 심판 진행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지난 2019년 4월 19일 헌법재판관에 취임한 문형배(59·사법연수원 18기) 재판관은 지난해 10월 이종석 헌법재판소장 퇴임 이후 헌재 최선임 재판관으로서 소장 권한대행을 맡았다. 6년간의 임기 종료를 5개월 앞둔 지난해 12월 14일 윤석열 탄핵심판 사건이 헌재에 접수되면서 문 대행은 헌정 사상 세번째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을 진두지휘했다. 그는 여러 논란과 외부 압력 속에서 사건 접수 111일 만에 대통령 파면이라는 결론을 이끌고 2주 뒤 퇴임한다.
|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직무대행이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인용 결정문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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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법조계에 따르면 문형배 재판관은 부산고법 수석부장판사를 지내는 등 부산·창원에서 근무한 ‘향판’(지역법관) 출신이다. 진보 성향 판사모임인 우리법연구회 회장을 지냈으며 소신이 뚜렷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 권한대행은 지난 2019년 4월 취임사에서 “부단한 소통과 성찰의 과정을 통해 제 견해에 어떠한 편견이나 독선이 자리 잡을 수 없도록 늘 경계하고 정진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변론 요지에 벗어난 양측의 주장은 단호하게 제지하는 등 엄정하고 단호한 재판 진행으로 주목받았다.
올해 1월 2일 헌재 시무식 신년사에서는 윤석열 탄핵심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사안의 시급성과 중대성을 고려해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을 우선적으로 심리하겠다”고 선언하며 “신속하면서도 공정한 재판이 되도록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 대행은 탄핵심판 기간 동안 여러 비판과 공격에 맞닥뜨렸다. 그의 주거지로 추정되는 곳에 윤 전 대통령 지지자를 중심으로 한 시위대가 집결했고, 그의 개인 정보가 온라인에 공개되었으며, 다수의 비난을 받았다.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과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문 대행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했고, 사법연수원 동기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과거 SNS 교류를 문제 삼았다.
문 대행이 이재명 대표 모친상에 참석했다는 주장이 제기됐을 때, 헌법재판소는 이를 부인하며 문 대행이 “이재명 대표의 모친상에 문상을 한 적이 없으며 조의금을 낸 사실조차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권성동 국힘 의원이 문 대행의 정치적 편향성을 주장하자 헌재는 “명백히 사실에 반한다”고 반박했다.
비판이 확산되자 헌재는 정치적 간섭에 대한 우려를 공개적으로 표명하기도 했다. 헌재는 “정치권과 언론에서 재판관의 개인 성향을 획일적으로 단정 짓고 탄핵심판의 본질을 왜곡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며 “판단은 재판관 개인의 성향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헌법과 법률을 객관적으로 적용함으로써 이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건의 절차적 관리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었다. 지난 2월 13일 8차 변론 에서 문 대행이 ‘태스크포스(TF) 대본’을 언급했을 때, 윤 대통령 측 대리인단은 헌재가 재판 방향을 미리 결정했는지 질문했다. 문 대행은 해당 문서가 재판부 합의를 바탕으로 재판소 연구관들이 준비한 절차적 초안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천재현 헌재 공보관은 “변론 대본이란 게 재판부에서 합의한 내용을 이 연구부(TF)에 지시를 하면 저희가 어떤 초안을 하나 만들어 드리는 것이다. 그 내용은 재판부 합의를 통해 언제든지 변경이 가능하다”고 부연했다.
문 대행의 퇴임이 임박하면서는 선고 시기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문 대행과 이미선 재판관은 오는 18일에 퇴임을 앞두고 있고,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마은혁 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아 현재 8명인 재판관이 6명으로 감소할 가능성이 있어 헌재는 그 전에 판결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날 헌재가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재판관 만장일치로 인용하며 문 대행은 자신의 임기 마지막 대형 사건을 마무리했다. 그는 김용현 전 국방장관의 고발, 여당의 편향성 공세, 개인에 대한 악의적 공격 등 여러 논란에도 흔들림 없이 헌법적 원칙에 따라 재판을 이끌었다. “가벼운 것은 가볍게, 무거운 것은 무겁게” 처리해야 한다던 문 대행의 철학은 한국 헌정사에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기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