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안전없이는 공사말라”…'비장함' 느껴지는 건설현장

by강신우 기자
2022.01.26 18:07:46

중대재해법 앞두고 ‘안전 확보’ 총력
“1호 될라”…시행일인 27일부터 설휴무 시작
안전조직 확대하고 현장엔 로봇 투입
"민관 발주사, 안전 공기·비용 확보해줘야"

[이데일리 강신우 기자] 경기도 과천지식정보타운의 대규모 택지개발 현장은 공사를 한창 진행하는 평일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육중한 타워크레인이 대부분 멈춰 섰고 굴착기(포크레인)와 레미콘, 덤프트럭 등 중장비들도 눈에 띄게 줄었다. 한 건설기계 기사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전에 이미 주변에 널부러져 있던 건설자재가 싹 정리됐다. 아무래도 안전에 더욱 신경쓰는 모습”이라고 했다.

서울 강서구 방화동의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행복주택 건설현장에서는 매일 아침 ‘툴박스미팅’(안전사항을 공유하는 아침 회의)을 연다. 콘크리트 타설이나 골조공사 등 위험공종에 대비해 현장안전 의식을 높이기 위한 취지다. 이 현장에는 ‘근로자 작업중지권’ 안전 신문고도 따로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등에관한법률(중대재해법) 시행을 하루 앞둔 26일 오전 서울·수도권의 아파트 건설현장은 긴장감이 흐른 가운데서도 분주한 작업장의 모습은 감췄다. 대부분의 건설 현장이 설 휴무를 이틀 앞당긴 27일부터 시작하면서다. 과천 지식정보타운 내 건설현장 관계자는 “27일부터 설 연휴에 들어가기 때문에 오늘은 주변정리를 하는 작업장이 많다”고 말했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대부분의 주요 건설사들이 중대재해법 시행일인 27일부터 설 휴무에 들어가거나 위험공종 작업은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삼성물산, 현대·대우·중흥·한화·DL·포스코건설 등 주요 건설사들은 27일부터 쉬면서 현장 안전점검에 돌입했다. 또 현장직원과 협력사 직원을 대상으로 안전워크숍도 진행한다. 현장 휴무는 짧게는 설 연휴까지, 길게는 4일까지 진행된다. 사실상 7일에나 공사가 본격 재개되는 셈이다.

건설업계가 앞다퉈 ‘셧다운’에 들어간 것은 중대재해법의 ‘1호’ 케이스가 돼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반영됐다. 업계 관계자는 “광주 아파트붕괴 사고로 건설사 안전문제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에다 중대재해법의 실제 처벌 수위 등 가이드라인이 뚜렷하지 않아 불확실성이 커 우선은 안전관리를 철저히 하면서 다들 몸을 사리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보건체계를 갖추지 않아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는 경우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개인을 형사처벌한다. 앞서 업계는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에 대한 책임의 범위와 기준이 모호한 탓에 사고가 터지면 ‘정서법’에 따라 처벌될 수 있다는 우려를 드러내기도 했다.



안전문제가 대두하면서 대형건설사 중심으로 현장에서는 안전경영을 지원하기 위한 인센티브 지원과 ‘무인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물산은 지난 25일 안전관리 우수 협력사에 대한 포상을 늘리고 향후 자사 프로젝트 입찰 참여와 평가 시 더 많은 혜택을 주기로 했다. 현대건설도 근로자에게 무재해 인센티브를 주는 ‘H안전지갑제도’를 도입했다. 삼성물산은 또 내화재(높은 온도에서도 타지 않고 견디는 물질) 뿜칠 작업을 위한 로봇을 현장에 배치했고 현대건설과 GS건설은 다관절 사업용 로봇을 투입하고 있다.

사내에서는 안전조직을 확대·개편하는 추세다. 삼성물산은 최근 종전 2개 팀이던 ‘안전환경실’을 7개 팀의 안전보건실로 확대·개편 했다. 독립적인 인사·예산·평가 권한을 가진 최고안전책임자(CSO)를 부사장급으로 신규 선임하고 안전 전담 연구 조직인 ‘건설안전연구소’를 신설했다. GS건설은 대표이사 직속 CSO에 안전보건 관련 최종 권한과 책임을 부여했다. 롯데건설은 기존 안전·보건 부문을 대표 직속의 ‘안전보건경영실’로 격상했다.

다만 중소업계에서는 안전관리 비용이 만만치 않자 사실상 손 놓고 있는 처지다. 대한주택건설협회 관계자는 “대형사들은 안전 관련 조직 확대나 인력 충원, 협력사 관리 등 안전관리 비용을 충당할 여력이 있지만 중소업체는 사장이 직접 현장에 나가 관리하는 수준이어서 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하소연했다.

특히 안전관리가 강화된 만큼 공사 발주처에서 안전 관련 비용과 공사기간을 인정해 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업계 현실적인 면에서 안전관리는 비용문제를 떠나 생각하기 어렵다”며 “결국에는 민·관 발주처가 안전을 확보할 적정한 공사기간와 공사비를 얼마나 허용해줄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