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 실감한 정부, '10만명 조사' 결국 합수본에 넘겼다

by박기주 기자
2021.03.11 17:33:18

정부, LH 직원 투기 의혹 1차 합동조사 결과 발표
고작 7명 늘어난 '의혹 직원'...투기 정황도 못 밝혀
빠른 수사, 직무연관성 입증이 관건

[이데일리 박기주 황현규 기자] 정부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투기 의혹에 대한 1차 합동조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앞서 기존 시민단체의 발표 내용서 의미있는 진전을 보이지 못해 빈축을 사고 있다. 민변 등이 의혹을 제기한 13명을 제외하면 단 7명을 추가 확인하는데 그쳐 수사권 없는 조사단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11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3차 정례 브리핑에서 질문을 받을 기자를 지명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정부는 11일 ‘LH 직원 투기 의혹에 대한 1차 합동조사 결과’ 발표를 통해 20명의 투기 의심자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번 정부 합동조사단이 조사한 대상은 국토교통부와 LH 임직원 등 약 1만 4000명으로, 이번에 투기 정황이 밝혀진 의심자들은 합수본에 수사의뢰했다.

앞서 지난 2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참여연대가 3기 신도시 투기의혹을 제기한 후 약 열흘 만에 내놓은 결과지만 성과는 미미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시 민변 등이 의혹을 제기한 13명을 제외하면 단 7명(모두 LH 직원)을 추가로 확인한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의혹 제기 이후 언론 등을 통해 계속해서 투기 의혹이 드러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수치다.

이는 공무원 및 공기업 직원들의 투기가 가족들의 명의 혹은 차명으로 거래됐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민변은 이날 정부의 발표 후 입장문을 통해 “정부의 조사방식은 아주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정리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배우자와 직계존비속, 지인이나 차명을 통한 투기행위에 대한 조사까지 이어지지 못했다”며 “떠들썩했던 정부의 합동조사의 한계가 분명했다”고 지적했다.

결국 정부는 공무원 및 LH 등 공기업 직원의 가족(배우자·직계존비속) 등에 대한 조사를 합수본에 맡기기로 했다. 수사권이 있는 기관에서 전수조사를 담당하는 것이 효율성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조사 대상의 규모는 수만명, 많게는 10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사진= 연합뉴스)
합수본의 어깨는 더 무거워졌다. 합수본은 현재 LH 직원 투기 사건에 대해 대규모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업무용 PC 및 휴대전화의 포렌식 수사를 하고 있다. 여기에 전국 재개발 투기 의혹 사건까지 수사 범위를 확대한 상황에서 전수조사라는 또 다른 과제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합수본이 금융위원회와 국세청 등이 포함된 770명 가량의 대규모 수사단을 꾸렸다고 하지만 이 중 약 680명은 각 시·도경찰청 인력이다. 즉, 각 지역별로 약 50명이 수사를 병행하면서 10만명에 대한 전수조사까지 진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효율적인 수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무차별적인 전수조사는 경찰의 수사에 오히려 방해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10만명이나 되는 가족들을 한꺼번에 조사하는 것은 오히려 수사가 지연되는 악영향을 끼치고, 수사가 진행되지 않는다는 비판을 초래할 수 있다”며 “오늘 정부가 수사를 의뢰한 20명에서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송치 등)처분을 빨리하는 것이 수사에 탄력도 생기고 국민의 관심을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투기 세력에 대한 확실한 처벌을 위해 합수본이 직무연관성을 입증하는 데에 주력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검사 출신 김종민 변호사는 “단순히 LH직원(혹은 공무원)이라는 점만으로는 처벌하는 데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개발 정보를 알고 있는)직원과 주고받은 메세지 등에 대한 포렌식 수사가 반드시 필요하고, 직무연관이 뚜렷한 직원과 공동명의 땅을 갖고 있는지 등을 파악하는 데에 수사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증거인멸 가능성을 없애기 위한 속도감 있는 수사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변은 “합수단은 독립적이고도 신속한 수사를 통해 ‘늦장수사’, ‘봐주기 수사’라는 일각의 지적과 국민적인 의구심을 불식시켜야 할 것”이라며 “합동조사단의 자체조사와는 별개로 증거인멸 행위가 이뤄지기 전에 수사당국의 신속한 수사가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검찰청과 국수본은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부동산 투기사범 수사기관협의회’를 열고, 고위직 및 실무자간 핫라인을 구축해 모든 수사과정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내용해 합의했다. 대부분의 수사는 국수본을 중심으로 진행되지만 검찰 역시 송치사건을 수사하면서 검사가 수사할 수 있는 범죄를 발견하면 직접 수사에 나설 예정이다. 검·경수사권 조정에 따라 대부분의 1차 수사권한은 경찰이 갖고 있지만 일부 고위 공직자에 한해선 검찰의 직접 수사가 가능하다. LH가 포함된 공기업의 경우 기관장 및 부기관장, 상임이사 및 상임감사 등이 이에 해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