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번엔 ‘낙엽 송풍기’ 금지 놓고 분열
by방성훈 기자
2025.12.02 15:27:36
가솔린식 송풍기 규제 조례 확산이 논쟁 불붙여
환경·소음 문제 vs 영세 조경업체 생계 위협
트럼프 화석연료 회귀속 정치 논쟁 비화 조짐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미국에서 ‘낙엽 송풍기’ 논쟁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환경보호 및 소음저감을 주장하는 주민들과 영세 조경업체 생계를 우려하는 반대 측 의견이 팽팽이 맞서면서 정치적 논쟁으로 비화하는 양상이다.
1일(현지시간)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지난 11월 19일 약 6만명이 거주하는 미국 필라델피아 교외 로어 메리온 타운십에서 가솔린을 연료로 하는 낙엽 송풍기 사용을 제한하는 조례가 통과됐다. 공청회에는 주민 50여명이 참석해 3시간 동안 열띤 찬반 토론을 벌였다.
조례를 지지한 주민 낸시 윈클러는 “낙엽 송풍기는 소음이 심하고 유독한 공기를 내뿜는 도구”라고 주장했다. 반면 조경업체를 운영하는 게르하르트 아른트는 “조례가 통과되면 소규모 사업체들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를 계기로 미국에서 낙엽 송풍기 사용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격화하고 있다. 미국에선 최근 몇 년 동안 수십개 지방자치단체가 가솔린 엔진식 정원용 송풍기 사용을 제한하거나 전면 금지하는 조례를 제정했다. 또한 27년 전인 1998년 로스앤젤레스(LA)에서 조경업 종사자들이 일주일간 단식농성을 벌였을 정도로 관련 논쟁은 역사가 깊다.
소비자 감시단체 코피르그에 따르면 현재 미 전역에서 200곳 이상 도시가 이를 금지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오리건주 포틀랜드시가 낙엽 송풍기 사용을 제한하는 조례를 추진했을 때에는 800명 이상이 온라인으로 의견을 개진해 최다 민원 접수 사례 중 하나로 기록됐다. 일리노이주 에번스턴에서는 2023년 4월 낙엽 송풍기 사용 제한 조례 시행 직후 수십명의 조경업자들이 시청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다.
앞선 찬반 토론에서처럼 낙엽 송풍기 규제 찬성론자들은 가솔린 엔진식 기기가 내는 소음과 배기가스를 문제삼고 있다. 캘리포니아 대기자원위원회(CARB)에 따르면 송풍기 1대를 1시간 사용하면 자동차로 약 1100마일(약 1770km)을 주행하는 것과 같은 양의 미세먼지를 배출한다고 밝혔다. 코피르그의 커스틴 샤츠는 “현대 차량에는 오염 저감 장치가 있지만 송풍기에는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조경업체, 골프장 등 낙엽 송풍기를 자주 사용하는 업체들은 가솔린 엔진식 모델의 효율성이 뛰어나다면서 생계를 위해선 사용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전기식 장비는 아직 성능 면에서 충분하지 않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낙엽 송풍기 금지 논쟁에는 명확한 정치적 색채도 드러난다. 관련 조례를 도입하는 지역은 대체로 민주당 성향이 강하다. 로어 메리온의 경우 지난해 미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자의 4분의 3 이상이 카멀라 해리스 후보를 지지했다.
반면 공화당은 개인의 재산권과 선택의 자유를 강조하며 규제에 반대하는 경향을 보인다. 실제로 텍사스와 조지아의 공화당 주정부는 지방자치단체가 가솔린식 송풍기를 전기식과 다르게 취급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을 제정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연방정부가 친환경 정책에서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정책으로 복귀한 것과도 궤를 같이 한다.
낙엽 송풍기 논쟁은 공식 석상뿐 아니라 일상 대화에서도 정치풍자 소재로 자주 쓰인다. 지난해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트럼프 대통령을 “창문 밖에서 하루 종일 낙엽 송풍기를 돌리는 이웃”에 비유했고, 트럼프 지지자들은 “그건 그의 권리일 뿐”이라며 맞받아쳤다.
이코노미스트는 “환경 규제 확대, 생활 소음 문제, 지역경제 이해가 뒤얽히면서 미국 내 낙엽 송풍기 전쟁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