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자금 날려"…5060 '코린이' 겨냥 가상화폐 다단계사기 주의보
by공지유 기자
2021.03.25 16:51:05
투자 지식 없는 중장년층 노린 가상화폐 사기 기승
"투자자 모으면 돈 더 준다"…피해자 대포통장 이용
피해자 보호규제 미비…당국 "주의 기울여 거래해야"
[이데일리 김대연 공지유 기자] 지난해 정년퇴직한 A(62)씨는 2019년 자신을 한 가상화폐 거래소 최고경영자(CEO)라고 소개한 B씨를 만났다. B씨는 A씨에게 “정년퇴직을 했으니 안정적인 수입을 가져야 하지 않겠냐”며 가상화폐 투자를 추천했다. A씨는 “투자대행을 통해 원금의 세 배를 불려 주겠다”는 B씨의 말만 믿고 2년여간 노후자금 1억원 상당을 투자금으로 입금했지만, 이후 돈을 전혀 돌려받지 못했다.
최근 ‘비트코인 광풍’으로 가상화폐 시장이 커지며 경험이 부족한 투자자인 이른바 ‘코린이(코인+어린이)’들을 노린 가상화폐 다단계 사기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금융당국도 가상화폐 투자 환경 개선을 위해 나섰지만, 여전히 소비자를 보호하기에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5일 이데일리 취재를 종합하면 가상화폐 다단계 조직은 신규 투자자들에게 다른 투자자를 유치해 오면 배당금을 더 주겠다고 속이는 방식으로 유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또 투자금을 자신의 계좌가 아닌 또다른 투자자의 계좌로 입금받는 ‘대포통장’ 방식을 이용해 돈을 건네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 중에는 통장을 통해 돈을 받은 공범으로 조사를 받을까 두려워 피해사실을 신고하기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상화폐 다단계 사기에 속아 2억원을 잃었다는 60대 여성 C씨는 “사채까지 썼는데 수익금은커녕 원금도 받지 못했다”며 “심지어 다른 사람이 투자한 금액을 내 명의의 통장으로 입금받아 오히려 횡령으로 고소당한 상황”이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고수익을 보장해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유사수신 행위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1~10월 가상화폐를 포함한 유사수신 혐의 업체 신고 상담건수는 555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41.6% 증가했다.
이들의 주된 타깃은 50~60대 중장년층으로, 피해자 대부분은 지인의 추천으로 투자를 하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A씨는 “지인이 ‘초등학교 때부터 알던 친구라 믿을 만 하다’라고 해서 믿고 투자했는데 원금 1억에서 90% 가량을 잃게 됐다”고 말했다.
김경환 법무법인 민후 변호사는 “가상화폐는 전통적으로 사람을 많이 모집해 판매하는 다단계 구조”라며 “일반 투자자들이 정보 없이 ‘비트코인처럼 될 수 있다’는 뻥튀기식 광고에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코인 투자자들이 늘면서 투자 경험이 없는 중년여성 등 일반 투자자를 노린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변호사는 “중년 여성 중에는 인터넷 주식 투자도 어려워하는 분들이 많은데 가상화폐로 넘어오면 더 어렵다고 생각하게 된다”며 “직접 투자에 어려움을 겪으니 누군가가 ‘돈만 주면 어려운 절차 없이 알아서 해주겠다’고 하면 쉽게 투자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곽 변호사는 “다단계 조직은 ‘코인의 절반을 수익으로 주겠다’는 방법을 통해 일반 투자자들을 판매책으로 포섭한다”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범죄에 가담하게 될 수록 적극적으로 고소에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가상화폐 관련 사기가 기승을 부리자 금융당국도 투자 환경 개선을 위해 대책을 내놨다. 25일부터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개정안이 시행되며 암호화폐와 가상화폐를 관리하고 규제하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
개정 특금법은 가상화폐 거래소의 돈 세탁을 방지하고 가상화폐가 테러자금 모집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로 시행됐다. 이에 따라 가상자산 사업자로 등록하려는 거래소들은 금융정보분석원(FIU) 신고와 실명확인 입출금 계좌 발급이 의무화된다.
그러나 이러한 대책도 사기성 코인이나 거래소, 다단계 사기로 인해 투자자들이 입는 피해를 보호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현행 특금법은 돈 세탁 방지와 테러 자금을 막자는 취지로 시행된 것”이라며 “다단계 사기 방지와는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특금법은 (거래소에) 자금세탁 방지 의무를 부과한 것으로, 아직까지는 소비자 보호나 다단계 사기 자체를 규율하고 있지는 않다”며 “현재로서는 소비자가 FIU에 신고된 사업자 리스트를 참고해 주의를 기울여 거래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