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우유만으론 부족했다…급식대란 피해자는 학생·학부모

by신중섭 기자
2019.07.03 18:35:41

초중고 1만438곳 중 26.8% 대체급식·단축수업
빵·주스 대체급식에 학교 찾은 학부모들 불만
단축수업 학교 학생들은 빈 식당 찾아 헤매기도
연례행사 된 급식대란…"근본적 처우개선 필요"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총파업에 나선 3일 오후 서울의 한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학생들이 대체 급식으로 나온 빵과 주스를 먹고 있다.


[이데일리 신중섭 기자] 3일 오전 8시20분 서울 중구에 있는 A초등학교 앞. 아침부터 빵과 음료수를 실은 차량이 분주히 교문을 들락거렸다. 평소 같으면 아이들의 점심준비로 바빴을 학교 조리실은 이와 반대로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불이 꺼진 채 취사도구만 주인 잃은 채 놓여 있었다. 영양교사 1명을 제외한 4명의 급식조리사·조리원이 모두 파업에 참가해서다. 이날 학생들에게는 점심으로 소보루 빵과 포도주스(100ml), 젤리 등이 제공됐다.

1학년 딸을 등교시키던 학부모 김모(38)씨는 “대부분 학교에서 대체급식으로 빵과 우유를 준비한 것으로 안다”며 “저학년 학생들의 경우 알러지 때문에 빵이나 우유를 못 먹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땐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2학년 학부모는 “밥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평소보다 아침 밥을 더 먹였다”며 “그래도 급식이 부실하니 하교하면 따로 끼니를 챙겨줘야 할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급식에 따른 안내가 늦어져 혼란을 겪었다는 불만도 나왔다. 학교 측은 파업 전날인 2일이 돼서야 대체급식으로 빵과 음료수를 준비하기로 결정했다. 학부모들에게는 이날 오후 가정통신문과 어플리케이션 ‘e알리미’를 통해 이 사실을 알렸다. 3학년 딸을 둔 학부모 장모(42)씨는 “어제 대체급식을 한다는 통지가 갑자기 날아와 당황스러웠다”며 “요즘은 휴대폰으로 가정통신문을 확인하는데 직장일이 바쁜 맞벌이 부부 중 이를 확인하지 못한 학부모도 많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경기도 한 학교에서는 대체급식으로 단팥빵과 주스를 제공한다고 하자 학부모들이 “급식이 부실하니 도시락을 싸게 해달라”고 항의했다. 결국 학교 측은 도시락도 지참 가능하도록 조치했다. 이 학교 학부모는 “돌봄교실이나 방과 후 수업에 참여하면 오후 5시까지 학교에 있어야 하는데 단팥빵 하나로 어떻게 버티냐”고 하소연했다.

서울 서초구 B초등학교는 대체급식 대신 아예 단축수업을 진행했다. 이날 서울에는 총 3개교가 단축수업을 결정했다. 이 학교의 경우 전 학년을 오후 12시40분에 하교시키기로 결정했다. 하교가 시작되자 정문 앞은 학생·학부모 수백명이 뒤엉키면서 혼란을 겪었다. 1학년 학부모인 정모(42)씨는 “떼만 쓰면 다 되는 줄 아느냐”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요구를 하면서 학생 급식을 중단시키는 건 해도해도 너무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돌봄교실이나 방과 후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도시락을 싸오거나 부모와 함께 근처 식당으로 이동해 김밥 등으로 끼니를 때웠다. 맞벌이 부모를 둔 학생들은 친구들끼리 빈 식당을 찾아 헤매는 경우도 눈에 띄었다. 학교 인근에서 6년 동안 분식집을 운영했다는 김미주(61)씨는 “장사를 시작하고 점심시간에 학생들이 이렇게 많이 온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물론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을 이해하려는 학부모도 꽤 많았다. 휴가를 내고 1학년 자녀를 데리러 왔다는 한 학부모는 “불편하지만 파업은 근로자의 권리이고 이유가 있어서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며 “다소 불편하긴 하지만 수용할 수 있는 정도”라고 밝혔다. 1학년 손자를 데리러 온 한 조부모도 “각자 입장이 있으니 파업할 수도 있는 것”이라며 “하루 정도는 하교 후 집에 데리고 가서 밥을 먹이면 된다”고 했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과 전국교육공무직본부·전국여성노동조합 등으로 구성된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연대회의)는 △현 정부 임기 내 정규직 임금의 80% 실현 △교육공무직의 법적근거 마련 등을 촉구하며 이날 파업에 돌입했다. 이들은 전날 기본급 6.24% 인상 등을 요구하며 교육당국과 막판 협상을 벌였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교육당국은 이들에게 기본급 1.8% 인상안을 제시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이날 파업에는 초·중·고교에 근무하는 학교비정규직(교육공무직) 15만2181명 가운데 14.4%인 2만2004명이 파업에 참여했다. 이로 인해 전국 1만438개 학교 중 26.8%인 2802곳에서 단축수업(230개교)을 하거나 대체급식(2572)을 제공했다. 이번 파업은 1만5000여명이 참여, 1929개 학교의 급식이 중단됐던 2017년 때보다 규모가 컸다. 연대회의는 오는 5일 이후의 파업 연장 여부를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교육당국과 연대회의는 오는 9일부터 세종시 시도교육감협의회 사무실에서 교섭을 이어가기로 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무기계약직 형태로 고용 불안은 해소됐지만 정규직과 비교해 처우 면에서 차이가 존재하며 이 격차가 좁혀지지 않는 한 이들의 요구는 계속될 것”이라며 “정부는 급한 불을 끄는 식으로 해결하기보다 비정규직 처우를 조사하고 어느 정도 격차를 줄여나갈지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