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젠틀 中 융숭 日 밀착’ 3國3色 트럼프맞이…결과는

by김형욱 기자
2017.11.09 19:19:19

文, 주한미군 기지서 장병과 함께 식사
시진핑, 자금성에서 ''황제 의전'' 선보여
아베, 공통 취미 골프 라운딩으로 친교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시아 5개국 순방의 메인이었던 한·중·일 방문 공식 일정을 모두 마쳤다. 그는 5~7일 일본 방문을 시작으로 한국(7~8일), 중국(8~10일)을 거쳐 베트남과 필리핀은 각각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3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한·중·일 정상은 무역 적자 문제를 해소하겠다고 공언한 ‘협상가’ 트럼프 대통령을 맞아 저마다 방식으로 극진한 대접을 하면서 자국 이익 챙기기에 나섰다. 하지만 유례없는 손님맞이 성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멋진 젠틀맨(a fine gentleman)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러 간다.’ 트럼프 대통령이 7일 오전 일본에서 한국으로 향하기 전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문재인 정부의 첫 국빈의 응대 방식은 이 말처럼 대체로 신사적이었다는 평가다. 주변국 때와 비교하면 과하지도 않고 못하지도 않으면서 실리를 추구하는 모양새를 연출했다. 문 대통령은 평택 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스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맞아 미군 장병과 함께 식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한·중·일 방문 기간 요인과의 오찬·만찬 외 단체 식사는 이때가 유일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름다운 식사를 할 기회도 있었지만 장병과 함께 식사하기로 했다”며 “정말 아름다운 식사였다”고 전했다.

문재인(오른쪽)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평택 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스’ 식당에서 미군 장병과 함께 식사하고 있다. AFP


트럼프 대통령이 캠프 험프리스에 기대 이상으로 깊은 인상을 받은 건 한국 측 성과로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용 헬리콥터 ‘마린 원’으로 험프리스를 둘러보느라 서울로 돌아오는 전체 일정이 30분 늦춰지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여기에 이곳 건설비용 107억달러(약 12조원) 중 92%를 한국이 부담하고 있다고 브리핑하며 ‘한국이 안보 무임승차한다’는 비판을 자연스레 불식시키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24시간여에 걸친 한국 방문 기간 젠틀한 모습으로 한국에 우호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우려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이나 대 한국 무역적자에 대한 돌발발언은 없었다. 8일 국회 연설 때도 무역 대신 북한의 실상을 비판하고 한국의 발전상을 칭찬하는데 대부분 시간을 할애했다. 이를 통해 ‘코리안 패싱’은 없다는 걸 재확인했다. 또 긴밀한 한미동맹과 대북공조 태세를 다지는 한편 ‘화염과 분노’ 같은 전쟁 우려에서도 벗어나는 모습을 연출했다.

한국이 이미 수십억달러 규모의 무기를 사들이겠다는 의사를 밝힌 게 주효했다는 평가다. 트럼프 대통령은 “감사하다”는 표현을 썼다. 한국은 이 과정에서 우리 군의 탄도미사일 탄두 중량 제한 완전 해제, 핵추진잠수함과 최첨단 정찰자산 획득ㆍ개발 기회 확보, 미 전략자산의 순환배치 확대 등 선물도 챙겼다.

물론 한미FTA는 이미 재협상에 돌입한 상태인 만큼 이번 만남의 실질적인 실익을 따지는 건 좀 더 지켜봐야 확인할 수 있다. 소수이지만 대북 정책에 대한 공조를 확인한 부분에 대한 혹평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7일(현지시간) ‘한국이 중국에 고개 숙였다(South Korea’s Bow to Beijing)’는 사설을 게재했다. 문재인 정부가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북한 문제에 미온적이라고 비판했다. 문 대통령을 ‘못 믿을 친구(unreliable friend)’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중국이 트럼프 대통령을 맞는 방식은 ‘황제 의전’이었다. 무대 역시 명·청대 황궁이자 현재도 연 1500만명이 찾는 중국 베이징의 명소 자금성(紫禁城). 이곳은 8일 하루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부부 네 명만을 위한 공간으로 변모했다. 이들은 주요 건물의 진귀한 보물을 감상했다. 경극(京劇)도 관람했다. 청 건륭제 전용공간인 건복궁(建福宮)에서 만찬하고 서실 삼희당(三希堂)에서 만찬했다. 음식 역시 청나라 황실 궁중 요리 ‘만한전석(滿漢全席)’이었다.

분위기도 좋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이패드로 외손녀 아라벨라가 가정부에게 배운 중국어로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보여줬다. 시 주석은 “실력이 많이 늘었다. A+를 줄 수 있겠다”며 화답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25분으로 예정됐던 연회는 두 시간으로 늘었다.



자금성 전체가 한 명의 국빈을 위해 쓰인 건 건립 이후 700여년 역사상 처음 이다. 역대 미 대통령도 중국에 올 때마다 자금성을 관람했으나 그뿐이었다.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자금성을 관람했을 땐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의 안내도 경내 만찬도 없었다. 중국 개혁개방 이래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으로 진짜 황제 체험을 한 셈이다. ‘국빈 이상의 대우를 하겠다’는 호언장담 그대로였다.

도널드 트럼프(왼쪽2번째) 미국 대통령 부부가 8일 시진핑(3번째) 중국 국가주석 부부와 함께 중국 베이징 자금성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AFP


시 주석의 황제 의전은 북한 제재와 대미 무역흑자 등 갈등 요소가 많은 세계 최강대국의 수장과 개인적 친분을 다지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시 주석이 최근 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2기 5년을 여는 동시에 ‘1인 천하’를 굳혔다는 걸 대외에 널리 알리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홍콩 동방일보는 “시 주석이 ’중화민족 부흥‘의 의미를 설명하려는 의도”라고 평가했다.

다음 날 미중정상회담이 다음 날 완전한 성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북한 대응에 대해선 원론적 의견 일치를 봤지만 무역 문제에선 입장 차이를 확인했다. 다만, 중국에 대해 연일 강경 발언을 쏟아냈던 트럼프 대통령이 방중 기간 이렇다 갈등 요소 없이 북한 문제에 집중한 게 성과라면 성과다. 문제는 역시 최대 갈등 요소로 꼽혀 온 양국 무역 문제.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 호혜 무역 관계 같은 양국 공동 목표를 위해 함께 노력하자”며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와 미국 기업의 지적 재산권 보호 등 문제를 하나씩 지적했다. 시 주석은 어느 정도의 무역마찰은 불가피하다며 이견차를 확인했다.

그러나 그 수위가 예상보다는 낮았다는 평가도 있다. 중국이 미국이 목표한 경제적 실익을 어느 정도 만족시켜줬기 때문이다. 중국 상무부는 이날 82억달러(약 9조1000억원) 규모의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또 이번 주중에만 최대 2500억달러(약 279조원) 규모의 계약을 맺을 전망이다. 시 주석은 “미중 양국 국민에게 큰 이득을 줄 것”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때마침 중국 해관총서(세관)가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도착 당일 발표한 중국의 올 1~10월 대미 무역흑자는 2조3000억위안(약 387조원)으로 전년보다 17.8% 줄었다. 지지율 하락으로 자국 내에서 고전 중인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반가운 소식이다.

트럼프 대통령을 가장 먼저 맞은 아베 신조(安部晋三) 일본 총리는 5일부터 7일까지 48시간 동안 자는 시간을 빼면 사실상 모든 일정을 함께하는 밀착 의전을 선보였다. 아침을 뺀 네 번의 식사를 모두 함께 했다. 저녁을 먹을 땐 같은 차를 타고 함께 이동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공통의 취미인 골프를 즐겼다. 2020 도쿄올림픽이 열리는 가스미가세키CC에서 2시간여 동안 9홀을 동반 라운딩했다. 세계랭킹 4위의 일본 프로골퍼 마쓰야마 히데키 선수도 동반했다. 매 식사도 트럼프 대통령의 취향을 고려해 햄버거와 스테이크 등을 선보였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5일 일본 도쿄 인근 가스미가세키CC 아베 신조(앞줄 오른쪽 3번째) 일본 총리와 함께 라운딩을 즐기고 있다. AFP


트럼프 대통령만 챙긴 게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골프를 치는 시간 아베 총리의 부인 아키에 여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와 도쿄 긴자의 유명 진주매장 ‘미키모토’ 본점을 찾아 쇼핑했다. 또 만찬 땐 트럼프 대통령의 손녀인 아라벨라 쿠슈너(딸 이방카 백악관 선임고문의 장녀)가 좋아한다는 개그맨 패코타가 함께 했다. 그 밖에도 이방카 선임고문의 재단에 5000만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일본식 접대문화 ‘오모테나시’를 유감없이 선보였다는 평가다.

성과도 있었다. 일본의 바람대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대북 강경 기조를 재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북한 피랍 일본인 피해자 가족을 만나게 했고, 일본 자위대 의장대 사열을 받는 모습을 자연스레 연출하며 자위대의 존재를 과시하기도 했다. 중국 등을 의식한 ‘자유롭게 열린 인도·태평양전략’이란 문구도 공동 외교전략에 포함시켰다. 일본 언론이나 대중도 아베 총리에게 ‘고생했다’며 노고를 치하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대미 무역흑자 이슈를 최소화하려는 일본의 노력은 사실상 무위에 그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수 차례에 걸쳐 대일 무역적자를 비판했다. ‘브로맨스’가 과했다는 안팎의 지적도 있다. 미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6일(현지시간) 아베 총리를 트럼프 대통령의 ‘충실한 조수(loyal sidekick)’에 불과했다며 혹평했다. ‘포스트 아베’로 꼽히는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은 “양 정상의 신뢰관계가 깊은 것은 좋은 일”이라면서도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이 더 떨어질 것을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