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어렵게 경제회복기금 합의했지만.."빚 부담만 키운다"
by방성훈 기자
2020.07.22 17:26:00
伊·스페인 최대수혜…GDP 대비 부채비율 하락 전망
"결국은 빚" 비판…"한번 더 EU의 ATM기 된 것 같다"
|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오른쪽)가 20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의의 라운드테이블 회의 도중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왼쪽)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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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7500억유로(한화 약 1034조원)의 경제회복기금이 유럽연합(EU) 경제를 되살릴 수 있을까. EU의 경제회복기금 합의 이후 ‘재정동맹’이라는 새로운 역사의 장이 열렸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남유럽 지중해 인접 국가들이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순탄치 못했던 합의 과정에서 드러났던 것처럼 유로존 국가들의 빚 부담만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기적으로는 재정위기 가능성을 더욱 높였다는 비판이다.
EU 정상들은 지난 21일(현지시간) 닷새 간의 마라톤 협상 끝에 갚지 않아도 되는 보조금 3900억유로, 상환해야 하는 저금리 대출 3600억유로로 구성된 경제회복기금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등 코로나19 타격이 큰 국가들이 대규모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으며 네덜란드를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도 EU 재정기여금의 일부를 돌려받는 리베이트를 받을 수 있게 됐다.
파이낸셜 타임스(FT) 등 외신들은 이번 기금 합의에 따른 최대 수혜국으로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들고 있다. 이번 합의 타결에는 “남유럽 국가들이 파산하면 결국 유럽 전체가 파산한다”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설득이 결정적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이 유로존 붕괴보다는 합의가 더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해석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번 합의로 그리스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이 올해 196.4%에서 내년엔 182.6%로 하락할 전망이다. 이탈리아도 158.9%에서 153.6%로 떨어지고 프랑스(116.5%→111.9%), 스페인(115.6%→113.7%), 오스트리아(78.8%→75.8%) 등 상당수 국가들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이 내년에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지원을 받는 국가는 EU에 노동 및 연금 제도와 같은 민감한 부분의 자체 개혁안을 제출하고, 기금 지출 내역 및 방식과 관련해 다른 회원국들의 감시를 받아야 한다. BBC는 지원을 받는 국가들에 대한 개혁 요구가 해당 국가의 포퓰리즘 정책을 제한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고, FT는 블록 단위의 재정정책에 대한 긴밀한 조정이 가능한 틀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올해 유로존 GDP 성장률이 전년대비 8.7% 뒷걸음질 칠 것이라는 우려 속에서도 내년에는 유럽 경제가 회복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졌다. 가장 큰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탈리아의 올해 GDP 성장률 전망치는 마이너스(-)11.2%에서 내년 6.1%로 대폭 개선될 것으로 예측된다. 또 다른 최대 수혜국 스페인도 -10.9%에서 7.1%로 돌아설 전망이다. 이외에도 프랑스(-10.6%→7.6%), 그리스(-9%→6%), 독일(-6.3%→2.8%), 네덜란드(-6.8%→4.6%), 폴란드(-4.6%→4.3%) 등으로 예상됐다.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는 이날 EU의 전체 회복 기금의 28%인 2090억유로(보조금 810억유로·대출금 1270억유로)가 이탈리아에 할당될 예정이라며 “이탈리아가 힘을 내 다시 시작할 기회가 생겼다. 우리 정부는 국가의 얼굴을 바꾸겠다”고 자축했다.
기금 합의 소식에 21일 유럽국 증시가 일제 상승한 것은 물론 유로화 가치도 18개월 만에 최고치로 상승했지만 이번 경제회복기금 합의가 “오히려 빚만 불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상당수 EU 국가들이 재정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장기적인 빚 부담은 위기를 더욱 키울 것이란 우려다. 이에 22일 장 초반 프랑스와 독일, 영국 등 유럽 증시는 전날 상승폭을 모두 반납했다.
이탈리아 극우정당 ‘동맹’의 마테오 살비니 상원의원은 “누구에게도 공짜는 없다. 이탈리아가 받은 건 모두 빚더미”라며 비판했다. 그는 보조금보다 대출금이 더 많다는 점, 그리고 보조금을 30년 상환 조건으로 EU 채권 발행으로 충당하는 만큼 대출과 다름 없다고 지적했다.
EU 차원의 지원에 가장 강력하게 반대했던 네덜란드의 마르크 뤼테 총리는 합의 후 “가끔 우리는 충돌할 수도 있지만, 모두가 그것을 다룰 수 있다. 우리는 모두 프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자국에서는 입장을 선회한데 대한 해명과 비판이 빗발치는 등 역풍을 맞고 있다. 네덜란드 우익 포퓰리즘 정당 FvD의 더크 얀 에핑크는 “한 번 더 우리가 EU의 자동인출기(ATM)이 된 것 같다”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