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콘에어'…해외 도피 범죄자들 국내 첫 '집단 송환'

by김성훈 기자
2017.12.14 17:27:12

필리핀 도피 범죄자 47명 국내 첫 '단체 송환'
전세기로 14일 인천국제공항 도착해 신병 인도
호송 인력 등 경찰 180명 배치…긴장감 고조
경찰 "도피 사범 송환 절차 협의 이어갈 것"

범죄를 저지르고 필리핀으로 도피했다 붙잡혀 송환된 피의자 47명이 국적항공 전세기편으로 14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인천=이데일리 김성훈 기자] 14일 오후 인천 국제공항 좌측 끝에 자리한 F 출입문 앞에는 긴장감이 돌았다. 경찰관 수십명이 출입문 주변을 돌며 시간대별로 상황을 확인했다. 국내로 들어오는 여행객들도 가던 길을 멈춰 선 채 무슨 일이 있는지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경찰이 기다리는 것은 국내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필리핀으로 도주한 한국인 범죄자 47명을 태운 비행편이다.

경찰청은 이날 오후 인천 국제공항을 통해 필리핀으로 도주한 한국인 범죄자 47명을 필리핀으로부터 인도한다고 밝혔다. 수십명 범죄자를 전세기를 통해 국내로 송환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범죄자를 항공기로 집단 송환하는 내용을 다룬 할리우드 영화 ‘콘 에어(Con Air)’가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오후 4시 전광판에 마닐라 발(發) 비행편이 도착을 알리자 일대가 소란스러워졌다. 피의자들은 공항에 도착한 뒤 사전에 준비한 입국심사를 받았다.

1시간여가 흐른 오후 5시 10분쯤 수갑을 찬 피의자들이 출입구에 쏟아졌다. 경찰관 50여명이 호송 차량으로 향하는 직원 상주 통로를 에워싸면서 긴장감이 고조됐다. 현지 호송인력과 경찰들은 신속하게 피의자들을 차량으로 인도했다. 경찰은 피의자들을 정해진 호송 차량에 태워 사건을 맡은 담당 경찰서로 이동했다.
범죄를 저지르고 필리핀으로 도피했다 붙잡혀 송환되는 피의자 47명이 국적항공 전세기편으로 14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번에 국내로 송환하는 범죄자들은 △사기사범 39명(전화금융사기 28명 포함) △마약사범 1명 △폭력사범 1명 △절도사범 1명 등이다. 인터폴이 적색 수배를 내린 범죄자 11명에 300억원 상당 가상화폐 투자 사기 일당 중 1명도 포함됐다.

이들이 국내에서 저지른 범죄로 발생한 피해액만 총 460억원 규모다. 필리핀에 최장 기간 체류한 피의자는 1997년 11월 필리핀으로 도피한 폭력사범으로 약 19년 만에 국내 땅을 밟게 됐다.



앞서 이날 오전 필리핀 이민청 소속 수사관 120명은 호송차량 20대를 이용해 마닐라 국제공항에서 우리나라 국적기로 호송을 마쳤다. 경찰은 국적기인 호송기에서 피의자들에 대한 체포영장을 집행했다. 피의자들은 한국으로 오는 기내에서 수갑을 찬 채 형사들의 감시를 받았다.

경찰은 국내 첫 피의자 집단 소환에 현지 호송 인력과 경찰 특공대, 공항 경찰대 등 국내외 경찰 병력 180명을 배치했다. 경찰 관계자는 “국내 최초로 시도하는 범죄자 단체송환인데다 일반인이 공항을 이용하는 시간대인 만큼 다양한 변수 방지에 만전을 기했다”고 설명했다.

필리핀은 국내 범죄자들이 도피하거나 국제범죄의 근거지로 삼는 국가 중 하나다. 경찰에 따르면 올 한해 필리핀으로 도피한 한국인 범죄자는 총 144명으로 전체 도피 사범(485명)의 29.7%를 차지했다. 필리핀에서 검거한 한국인 범죄자도 해마다 늘어 외국인 수용소에 수감 중인 한국인은 지난달 현재 90명에 육박한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자 경찰은 필리핀 법무부, 이민청 등과 협의를 거쳐 통상 3~6개월 걸리는 국내 송환 절차를 단체 송환을 통해 해결하는 데 뜻을 모았다.

주 필리핀 한국대사관 소속 경찰 주재관과 코리안데스크들은 현지 한인사회를 탐문과 증거 수집 등 필리핀 당국 수사를 지원하고, 필리핀 법무부·이민청과 집단송환 절차에 합의했다.

경찰은 이번 집단 송환을 계기로 필리핀 도피 사범 송환 절차를 필리핀 당국과 계속 협의해 나갈 계획이다.

임병호 경찰청 외사수사과장은 “앞으로도 외국 경찰과 적극적으로 공조해 범죄자는 반드시 검거되어 처벌을 받는다는 원칙을 확립하겠다”고 말했다.
14일 오후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한 필리핀 도주 사범들이 호송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김성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