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후원 논란’ 김기식 前 금감원장 항소심서 무죄 주장

by박순엽 기자
2020.07.23 17:22:06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김 전 원장 항소심 결심공판
1심 “기부행위 제한 위반”…징역 6월·집유 1년 선고
변호인 “유추해석으로 기소”…검찰 “기부행위 위법”

[이데일리 박순엽 기자] 국회의원 시절 받은 후원금을 자신이 속한 단체에 후원한 이른바 ‘셀프 후원’ 혐의로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이 항소심서 무죄를 주장했다. 검찰은 김 전 원장의 항소를 기각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부(재판장 변성환)는 23일 오전 김 전 원장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한 항소심 결심 공판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김 전 원장의 변호인은 “김 전 원장의 연구기금 출연행위가 공직선거법상 허용되지 않는 기부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고, 정치자금법이 금지하고 있는 부정한 용도의 (정치자금) 지출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5000만원 셀프후원’ 의혹을 받는 김기식 전 금감원장이 지난 2월 13일 오전 서울 양천구 남부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앞서 1심에선 김 전 원장이 2016년 자신이 속한 단체 ‘더좋은미래’에 5000만원을 기부했던 행위를 공직선거법 제113조에서 정한 ‘기부행위 제한’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고, 더좋은미래가 재단법인 ‘더미래연구소’에 연구기금 8000만원을 출연한 뒤 김 전 원장이 더미래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하며 임금과 퇴직금을 받은 행위도 정치자금의 지출 목적상 사회 상규나 신의성실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에 변호인은 김 전 원장의 기부 행위가 더좋은미래의 정관·규약·운영상 의무 등에 따른 것이라며 1심 판결에 반박했다. 즉, 김 전 원장의 기부는 의례적 행위로서 공직선거법상 ‘기부행위 예외’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변호인은 또 “연구기금은 정기적으로 내는 게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내는 비상시적 성격의 기금이어서 종전의 범위를 초과해 기부했다고도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변호인은 김 전 원장이 더좋은미래에 출연한 연구기금과 더미래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하면서 받은 급여 사이 관련성이 떨어진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더미래연구소의 2016~2017년 후원금 중 더좋은미래 후원금은 12%에도 미치지 않는다”면서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월평균 1회 정책보고서를 발간하고, 토론회·강연회를 개최한 행위에 대해 김 전 원장이 정당한 대가를 받은 것”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변호인은 검찰이 김 전 원장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면서 공직선거법 규정을 끌어들인 부분도 지적했다. 변호인은 “정치자금법과 공직선거법은 입법 취지나 적용 법리 등을 달리한다”며 “정치자금법 사안에 공직선거법을 적용하는 건 피고인에게 불리한 유추 해석”이라고 비판했다. ‘유추 해석’이란 어떤 사항을 직접 규정한 법규가 없을 때 그와 비슷한 사항을 규정한 법규를 적용하는 법의 해석방법으로, 죄형법정주의 원칙상 금지된다.

반면, 검찰은 1심 판결의 의미를 강조하면서 김 전 원장 측의 항소를 기각해 달라고 요구했다. 검찰은 “피고인의 기부 행위는 단체 정관·규약·운영상 의무 등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게 명확하고, 기부 금액도 종전의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 게 명확하다”면서 변호인 주장에 반박했다. 검찰은 또 “피고인의 기부 행위는 공직선거법상 금지되는 기부행위로서 정치자금 지출 목적이 위법하고, 지출 목적 등을 종합하면 사회 상규나 신의성실 원칙에도 위배된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어 유추 해석으로 기소했다는 변호인의 지적에 대해 “정치자금을 지출할 때 법령에 따른 적법한 장치나 요건을 갖춰야 한다는 건 기본 원칙”이라며 “공직선거법뿐만 아니라 형법 등 다른 법규에서 금지하는 위법한 목적으로 정치자금을 지출하는 것이라면 정치자금 지출의 위법성을 인정하는 것에 하등의 지장이 없다”고 맞섰다.

이날 김 전 원장은 1심 판결에 참담함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김 전 원장은 “동료 의원들과 정책을 중심으로 하는 모임을 만들어 의정 활동에 이바지하려고 했다”며 “정책 연구모임에 기부한 행위를 유권자 매수나 가계 생계 수단을 만들려는 목적이라고 판단한 점에 인간적 참담함을 느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더미래연구소장으로 근무하면서) 발간한 30여건의 정책 보고서 제목만이라고 보고 판단해 달라”며 재판부에 호소했다.

한편 김 전 원장은 19대 국회의원으로 재직하던 2016년 5월, 임기 종료 열흘을 남기고 후원금 중 남은 5000만원을 후원 명목으로 더좋은미래에 기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더좋은미래는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초·재선의원으로 구성됐다. 이후 김 전 원장이 국회의원에서 물러난 뒤 더좋은미래의 싱크탱크인 더미래연구소 소장으로 취임하면서 ‘셀프 후원’ 의혹이 불거졌다.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 사안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판단했다. 김 전 원장의 후원금 액수가 그전까지 낸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게 이유였다. 이 의혹으로 김 전 원장은 2018년 4월 금감원장에 취임한 지 보름 만에 자진해서 사퇴했다.

이후 검찰은 김 전 원장을 벌금 300만원에 약식기소했으나 김 전 원장이 반발하면서 정식 재판이 진행됐다. 이후 1심에서 검찰은 벌금 300만원을 그대로 구형했지만, 1심 법원은 김 전 원장에 구형보다 높은 형량인 징역 6개월과 집행유예 1년, 120시간 사회봉사를 선고했다. 김 전 원장 측은 1심 판결 직후 곧바로 항소했다.

김 전 원장의 항소심 선고기일은 오는 9월 24일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