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발목 잡힌 전기료…한전 적자 '23조' 빚더미 예고

by윤종성 기자
2022.05.11 19:00:00

고장난 연료비 연동제…한전, 1분기 적자 6조원 육박
올들어 석유·LNG·석탄값 치솟는데
연료비 조정단가 1·2분기 연속 동결
"정치권 눈치보느라 한전 망가뜨려
尹정부선 전기요금 현실화 나서야"

[이데일리 윤종성 김형욱 기자] 무력화된 연료비 연동제가 한국전력공사(015760)의 부실을 키우고 있다. 연료비 변동에 맞춰 탄력적으로 요금을 조정해 전기요금을 현실화하겠다던 도입 취지가 무색하게 정부 편의에 따라 정치적으로 운영되면서 제도 시행후 1년여 만에 한전의 누적 적자는 11조원을 넘어서고 있다. 이 추세라면 연말쯤 한전의 누적 적자는 23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관측된다.

11일 증권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한전은 올 1분기 5조7289억원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추정됐다. 지난해 연간 적자 총액(5조8601억원)과 맞먹는 분기 사상 최대 적자 규모다.

한전은 연료비 연동제가 처음 시행된 지난해 1분기 5716억원 흑자를 기록했으나, 이후 △2분기 -7648억원 △3분기 -9366억원 △4분기 -4조7303억원 △올 1분기 -5조7289억원(추정) 등 4분기 연속 적자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연료비 연동제 시행 후 한전의 누적 적자는 11조5899억원에 달한다. 현 추세라면 한전의 올해 연간 적자는 17조4723억원에 이르고, 누적 적자 규모는 23조1524억원 수준까지 불어날 전망이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연료비 연동제는 석유, 액화천연가스(LNG), 석탄 등 전기 생산에 들어간 연료비 변동분을 3개월 단위로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제도다. 한전의 연결 재무제표를 보면 발전 자회사들이 전력 생산에 투입한 연료비는 지난해 1분기 3조9470억원에서 4분기 5조9595억원으로 2조원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한전이 발전자회사들로부터 전기를 사들이는데 쓰인 전력구매비용도 4조9989억원에서 6조6284억원으로 증가했다.

제도 도입 취지대로라면 연료비 조정단가를 상향해 전기요금을 인상해야 했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해 1분기 조정단가를 0원에서 -3원으로 3원 내린 뒤, 4분기에 다시 3원 인상해 도로 0원으로 복구하는데 그쳤다.





올 들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 등으로 원자재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상황에서도 정부는 연료비 조정단가를 1, 2분기 연속 동결했다. 연료비 조정요금 운영지침의 ‘국민 생활 안정과 국민 경제의 원활한 운용을 위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조정 단가 적용을 일시 유보할 수 있다’는 조항을 근거로 유보권한을 발동해 연료비 상승분을 제때 전기요금에 반영하지 않고 있다. 발전업계 관계자는 “전기요금을 내릴 때는 득달같이 내리면서도, 올려야 할 때는 정치권 눈치보기에 급급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며 답답해 했다.

한전의 전력구입 비용은 계속 불어나고 있어 한전의 재무구조가 더욱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한전이 발전사에서 전기를 사오는 전력도매가격(SMP)은 4월 ㎾h(킬로와트시)당 202.11원을 기록했다. SMP가 ㎾h당 200원을 돌파한 것은 2001년 전력도매시장 개설 이후 처음이다. 거침없이 오르는 원유, LNG 가격 등을 감안하면 SMP 상승세는 당분간 지속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올 들어 SMP는 △1월 154.42원 △2월 197.32원 △3월 192.75원 △4월 201.58원 등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지난해 1월 ㎾h당 70.65원이었던 걸 감안하면 3배 가까이 올랐다. 반면, 한전이 소비자들에게 전기를 파는 가격인 전력판매단가는 ㎾h당 115.20원(2월 기준)에 그쳐, SMP를 크게 밑돌고 있다. 팔면 팔수록 한전의 적자만 커지는 구조인 셈이다. 한전 적자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늘어날 경우 결국 혈세로 메워야 한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한전이 3조6000억원대 적자를 냈을 때 정부는 6680억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발전업계는 ‘전기요금 원가주의‘를 선언한 윤석열 정부가 전기요금 현실화에 나설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9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전기요금은 계속 누르면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가는 것은 물론, 에너지 합리화를 저해한다”며 “중장기적으로 전기요금에 연료비를 연동해 가격을 결정하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적자 늪’에 빠진 한전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오는 6월말 발표하는 3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부터 상향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다만, 소비자물가상승률이 13년6개월 만에 최대 폭 상승하는 등 고물가 상황이 지속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조정단가 상향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정연제 에너지경제연구원 전략정책연구팀장은 “전기요금 산정에 총괄 원가를 반영하겠다는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정치권에선 전기요금이 표와 연결된다는 생각에 인상을 주저하고 있다”면서 “전기요금 결정 과정에 너무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들어와 한전을 망가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