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조롱·혐오 '점입가경'…"비난 멈추고 함께 고민할 때"

by권효중 기자
2022.11.01 17:42:46

사고 이후 온라인·SNS선 피해자 비난에 혐오, 조롱 계속
'토끼 머리띠가 범인' 위험한 마녀사냥
사고 사진과 영상, 조롱 게시물에 '2차 가해' 호소
"비난 표현 도움 안돼…문제 해결 위해 함께 고민해야"

[이데일리 권효중 기자] 150명이 넘는 인원이 숨진 ‘이태원 참사’를 두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사고 희생자와 유족들을 비난하거나 조롱·혐오하는 표현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글들로 인해 사고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닌 이들도 트라우마 등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어 ‘2차 가해’가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무분별한 표현을 자제하고, 원인 규명, 재발 방지 등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짚었다.

사고 원인을 토끼 귀 머리띠를 한 특정인으로 지목하는 SNS 게시물 (사진=트위터 캡처)
◇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는 핼러윈 데이를 즐기기 위해 10만명이 넘는 인파가 몰리면서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 1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까지 모두 156명이 숨지고 151명이 부상을 입었다. 대부분의 희생자는 20, 30대로 집계됐다.

SNS, 인터넷 등에 익숙한 젊은이들이 많이 모인 현장인 만큼 사고 당시의 상황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실제로 사고 당일부터 현장의 인파는 물론, 심폐소생술(CPR)을 받는 부상자들의 모습 등이 온라인을 통해 무분별하게 유포됐다. 모자이크 처리가 이뤄지지 않아 신상을 특정할 수 있거나, 현장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는 사진, 영상 등도 있었다.

온라인상에서는 ‘이태원 참사’를 두고 희생자들을 비난하거나 모욕하는 댓글, 게시글 등도 이어졌다. 이들은 “놀러갔다가 죽은 걸 왜 굳이 추모해야 하나”, “추모를 강요하지 말라” 등의 반응을 남겼다. 지난달 30일에는 ‘장난으로 밀었는데 죽을 줄은 몰랐다’ 등 조롱조의 게시물이 트위터에 올라왔다 삭제되기도 했다. 또 사진 속 얼굴은 물론 CPR을 받기 위해 상의를 벗겨둔 몸 등을 평가하고 조롱하는 표현들도 줄을 이었다.



가스 누출, 마약 등 ‘음모론’과 더불어 사고에 책임이 있는 이들을 찾으려는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도 이뤄지는 중이다. 최근까지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토끼 귀 머리띠를 한 남성’이 이번 참사의 원인을 제공한 자로 지목됐다. SNS 이용자들은 언론을 통해 알려진 목격자 증언 중 “‘밀어’라고 계속 외친 5~6명의 남성 무리”, “토끼 귀 머리띠를 한 남성”이라는 내용이 반복돼 이들을 수사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토끼 귀 머리띠 남성’으로 지목된 이는이날 자신과 무관한 일이라며 사고 직전 이태원을 벗어난 교통카드 이용내역을 공개했다.

◇ 이러한 악성 댓글, 유언비어에 상처 받는 건 직접적인 사고 희생자 유족들뿐만이 아니다.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일반 시민들도 이를 접하며 긴장감 등 트라우마를 호소한다. 사고 당시 친구가 이태원에 있었다는 직장인 A(28)씨는 “사고 이튿날까지 친구와 연락이 되지 않아서 마음을 졸였고 아직까지도 사고 뉴스를 보면 숨을 쉬기 힘든 기분이 느껴진다”며 “뉴스 댓글, SNS 게시물로도 계속 자극을 받는데 이런 게 다 ‘2차 가해’”라고 했다.

정부는 온라인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심리적 어려움 등에 대한 지원에도 나섰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중대본 회의에서 “유가족뿐 아니라 현장에 계셨거나 소식을 접한 시민들도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으셨다”며 “심리 상담과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태원 참사 관련 온라인 게시글을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위법 시 처벌이 가능하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무분별한 표현이 문제의 본질을 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놀러갔다가 사고를 당해도, 일을 하다가 사고를 당해도 죽음은 모두에게 평등한 ‘비극’인데 당시 현장에 있던 개인을 비난하는 것은 올바르지 못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사고 원인 규명, 재발 방지 대책 등 과제가 산적해 있는데 개인을 비난하거나, 이러한 게시물을 통해 조회수를 얻어 영리를 꾀하려는 목적이 있다면 플랫폼 등도 이를 방치하는 대신 적극적으로 처벌해 이러한 행동이 옳지 않다는 경각심을 주어야 한다”고 짚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 역시 “SNS를 통해 가짜뉴스 등을 생산하고 무분별한 표현을 실어나르는 대신 안전 시스템, 재난 방지 등을 위해 함께 고민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