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경제에 리더십 공백…커지는 '재정부양·규제완화' 필요성
by강신우 기자
2024.12.17 17:58:05
내수부진 확대 우려에 대외 트럼프 리스크까지
정부, 경제활력보다 ‘리스크관리’ 최우선
추경 등 재정확대 통한 내수 부양 요구도
[세종=이데일리 강신우 김미영 기자] 한국 경제가 안팎으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내년 초 적기에 예산을 집행하는 한편,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과 대출규제 완화 등 내수 회복을 위한 정책이 빠르게 이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외적으로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른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 불확실성이 확대하고 내부적으로는 내수 부진이 확대할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리더십까지 부재하며 이 상태대로라면 내년 1%대 저성장을 기록하는 것은 물론, 저성장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어서다.
이에 연내 발표를 앞둔 내년도 경제정책 방향은 ‘경제활력 제고’보다는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 우려에 따른 리스크 관리와 내수회복에 방점이 찍힐 것으로 관측된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는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지속적으로 ‘민생경제 회복’을 강조하고 있다.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도 “정부는 무엇보다 민생경제 회복에 총력을 기울여 나가겠다”며 “내년도 예산안이 새해 첫날부터 즉시 집행될 수 있게 재정당국은 예산 배정을 신속히 마무리해달라”고 주문했다.
673조 3000억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심의·확정됐다. 기획재정부는 예산의 신속 집행을 위해 전체 세출예산의 75.0%를 상반기 배정했다. 자금배정 절차 등을 거쳐 연초부터 신속히 집행되게끔 사전준비한단 방침이다.
그간 윤석열 정부가 ‘역동경제’를 앞세워 활력 있는 민생경제를 내세운 것과 달리 내년 경제정책방향는 리스크 관리에 집중할 전망이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025년도 경제정책 방향에 대해 △대외 신인도 유지 △통상 불확실성 대응 △산업체질 개선 △민생 안정 등을 제시했다.
상황이 이렇자 경제정책 방향에 담길 성장률도 좀 더 보수적인 수치가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기재부는 앞서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서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을 ‘대내외 여건 개선 등으로 잠재 수준을 웃도는 2.2% 성장’으로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경제정책 방향이 박근혜정부 탄핵 이후 나온 정책과 ‘닮은꼴’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박근혜정부 집권 4년차인 2016년 12월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지난 2016년 당시 정책 방향은 ‘경제활력 제고’였지만, 탄핵 이후 출범한 문재인정부는 경제 불확실성에 대한 ‘리스크 관리’를 경제 정책의 최우선에 뒀다. 그 일환으로 △1분기 재정조기집행 △위축된 투자심리 회복 △민생안정 등에 집중했다.
탄핵소추안 가결로 금융·외환 시장의 불확실성이 제거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트럼프 2기 행정부에 대한 대응력 약화, 이에 따른 수출 부진의 우려가 나오며 환율도 1430원대 후반까지 치솟으며 고환율이 지속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선 내수경제를 지원할 수 있도록 추경 등을 통한 재정 확대 정책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잇따른다. 내수경제를 살리지는 못해도 더 나빠지지 않도록 방어막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정치적 혼란 등이 커질수록 대외 신인도가 낮아지면서 자본 유출과 환율 급등으로 경제는 위기의 위험에 노출된기 때문에 정부는 이러한 리스크 관리에 집중해야 한다”며 “동시에 부동산과 증시가 붕괴하지 않도록 대출 규제를 완화하고 재정 지출을 늘이는 정책이 급선무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역시 “내수 부진은 그나마 정부가 현재의 긴축 재정정책을 완화해 기조를 바꾸면 대응 방안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산업계에서는 반도체특별법 등 경제 위기 속 국내 산업의 미래를 결정지을 중요 법안들의 조속 처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기업의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는 기반 마련이 시급하다는 이유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는 규제와 조세가 한국에 투자할 요인을 막고 있다”며 “이런 것들이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고, 탄핵과 상관 없이 여야가 함께 풀어가겠다는 메시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한편에서는 추경 등을 통한 단기적인 경기 부양만으로는 내수 침체 등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철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추경을 통해 단기적인 경기 부양만을 고려해서는 구조적인 한국의 경제 난제를 풀 수 없다”며 “재정구조 개선과 의무·재량 지출 관계 등 장기적인 관점에서 경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우선 추경보다는 예산의 조기 집행에 집중할 방침이다. 최 부총리는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열린 긴급 현안질의에서 “민생이 어렵고 대외불확실성이 확대돼서 정부가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인식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면서도 “지금 상황에서는 예산안이 통과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시행 전이기 때문에 충실하게 집행을 준비하는 게 최우선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