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 농사' 망친 ‘트럼프 관세’…저PBR株 쏟아져
by이용성 기자
2025.04.09 17:00:38
코스피 PBR 0.82배 수준…코로나 이후 최저
관세 불확실성에 사업도 차질…밸류업 공시 '주춤'
외국인 순매도 가속…달러 강세도 부담
[이데일리 이용성 기자] 정부와 금융당국이 야심 차게 추진한 ‘밸류업’ 프로그램이 시행된 지 1년 가까이 흘렀지만, 시장에서는 오히려 ‘밸류 다운’된 저평가 주들이 쏟아지고 있다. 트럼프발 관세 여파로 투자 심리가 짓눌리면서 기업의 펀더멘털과 무관하게 주가가 급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 미국의 상호관세가 발효와 함께 코스피 2,300선이 무너진 9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 각종 지수가 표시돼 있다.(사진=연합뉴스) |
|
9일 엠피닥터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82배 수준이다. 지난 7일에는 0.81배를 찍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2020년 5월 이후 최저치다. PBR은 현재 주가를 주당 순자산으로 나눠 구하는데, PBR이 1배 미만이면 주가가 청산 가치보다 낮다는 의미다. PBR은 금융당국이 밸류업 지수 선정 시 기업의 저평가 여부를 판단하는 핵심 지표 중 하나로 활용된다.
최근 지수가 하방압력을 받으면서 코스피·코스닥 상장사의 PBR도 하락하고 있는 모습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가 취급하는 2576개 상장사의 PBR을 2020년부터 5년간 추적 분석한 결과, 5년 만에 최저 PBR을 기록한 상장사는 1725곳이다. 특히 코스피 상장사의 경우 PBR 1배 미만 기업은 지난해 3월 기준 69%였으나 지난달 73%로 오히려 늘었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도입돼도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현상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를 두고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영향이 크다고 분석한다. 미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 전쟁’을 선포했고, 기업의 펀더멘털과 상관없이 주가를 끌어내렸기 때문이다. 코스피는 이날 2300선이 무너지면서 1년 5개월 만에 최저치를 찍었다.
트럼프발 관세 불확실성 여파로 밸류업 공시도 지난해 대비 주춤하고 있다. 미래 사업 계획을 담보할 수 없게 되면서 신규 투자를 하거나 주주 환원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1월 밸류업 공시(예고 공시 제외)를 한 코스피 기업은 4곳, 2월에는 9곳이다. 3월에는 주총 시즌 영향으로 10곳으로 소폭 늘었지만, 이달 들어선 한 곳도 없다. 지난해 11월에는 코스피 상장사 27곳, 12월에는 28곳이 밸류업 공시를 한 바 있다.
문제는 불확실성이 계속 이어지면서 외국인 이탈이 가속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본래 밸류업 프로그램의 취지는 기업이 자구책을 세워 스스로 저평가를 해소하고 외국인 등의 자본을 끌어와 주가를 부양시키는 것인데 트럼프발 관세 ‘악재’가 밸류업 프로그램이라는 ‘호재’를 압도한 모습이다.
외국인은 올해 코스피에서 14조 4450억원을 순매도했다. 이는 지난해 8월부터 8개월 연속 순매도세다. 이처럼 외국인이 코스피에 대해 장기간 매도 흐름을 이어가는 것은 지난 2007년 이후 처음이다.
높아지는 달러·원 환율도 부담이다. 달러 강세가 이어지면 외국인 입장에서는 환차손 리스크를 회피하고자, 안전한 달러 자산으로 이동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이날 달러·원 환율은 3개월 만에 최고치로 개장해 전 거래일 대비 10.9원 오른 1484.1원에 마감했다.
증권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 카드’로 쓸 것이라 예상했던 상호관세 조치가 결국 발효됐고, 중국과 강 대 강 대치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시장에 우려가 지속될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이에 따라 내달 진행되는 ‘밸류업 공시’ 우수 표창 등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도 줄어들 전망이다.
이웅찬 iM증권 연구원은 “코스피는 많이 내려와 있는 상태고, 대선 및 내수부양 기대감, 관세 협상 가능성 등을 고려한다면 추가 하락 폭이 크지는 않을 것이나 그렇다고 상승할 이유도 보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결국 상승 추세의 회복은 관세 정책의 축소와 미 연준의 금리 인하로부터 시작하기에 4~6월의 협상과정을 자세히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