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절대 꺼내선 안 될 위험한 `D램 보복 카드`

by양희동 기자
2019.08.13 17:21:30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 발언 파장
업계 "일본에 소재 규제 확대 빌미 제공 우려"
스마트폰 제조사 있는 미중 양국 자극할 수도

[이데일리 양희동 기자] “일본 역시 우리한테 의존하는 부분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자면 우리가 D램 같은 경우는 시장 점유율이 지금 72.4%다. 만약 D램 공급이 2개월 멈춘다면 전 세계에서 2억3000만 대의 스마트폰을 만드는 데 차질이 생긴다. 그래서 우리도 그런 카드가 옵션이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와 관련한 정부 고위 관계자의 발언이다. 주인공은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으로 그는 지난 12일 오전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일본 대응 카드로 D램 메모리 공급 중단 가능성을 언급했다. 하지만 김 차장의 이같은 발언을 두고 반도체 업계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날 오후 우리 정부는 일본이 지난 2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전략물자 절차 간소화 대상국)에서 제외한 것에 대한 대응책으로 우리나라도 화이트리스트에서 일본을 제외하는 전략물자수출입고시 개정안을 발표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정부 차원의 맞대응이 시작된 가운데 국제통상 전문가로 청와대 고위직인 김현종 차장이 D램을 대응 카드로 직접 거론한 것이 매우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일본이 수입하는 한국산 메모리의 비중이 높지 않은데다 대체재가 확보돼 있고 오히려 일본의 소재 규제를 확대하는 명분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이 지난해 일본에 수출한 메모리반도체는 1조 2809억엔, 수입은 4161억엔로 수출에서 수입을 뺀 수지는 8648억엔(약 10조원)이었다. 우리 메모리 수출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8~9%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일본 입장에서도 D램 세계 3위인 마이크론이 과거 자국 업체인 엘피다 반도체를 인수한 곳이라 대체 수급이 충분히 가능하다. 또 낸드플래시는 세계 2위인 도시바는 물론 도시바와 협력한 3위 웨스턴디지털에서도 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 여기에 한국 기업이 중국 공장에서 생산한 물량을 우회 수입하는 것도 가능하다.

반면 포토리지스트(PR·감광재)나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 등을 빼더라도 메모리 공정에 필수적인 반도체 웨이퍼의 일본산 비중은 60%에 달한다. 또 포토마스크와 펠리클 등은 90%를 넘을 정도로 수많은 소재를 일본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현재 시점에선 한국이 일본에 대한 D램 수출을 규제하면 반대로 생산 공정에 필요한 소재 수급이 막혀 생산 자체가 어려워지는 역공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더 큰 문제는 전 세계 밸류체인(공급망)에서 한국 기업들의 신뢰도가 급격히 악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김 차장의 발언대로 한국이 D램을 무기화 한다면 일본뿐만 아니라 애플, 화웨이, 샤오미 등 세계 주요 스마트폰 제조사가 있는 미국이나 중국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미·중 무역전쟁 속에서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 등 국내 기업이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김 차장은 지난 2009년부터 3년간 삼성전자에서 해외법무 사장을 지내며 애플과의 특허 소송을 진두지휘했던 인물이다. 그는 10년 전 삼성전자에 입사한 직후 첫 사장단회의 당시 기자들을 만나 “기업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 나라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이 신념은 굳건히 지켜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