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에이전트는 소비자 행동을 대체…경쟁 질서가 완전히 달라진다”

by김현아 기자
2025.12.01 16:10:29

프리소 보스틴 교수, 서울대법학전문대학원 세미나 참석
“경쟁법과 DSA, 정반대 규제 압력”
"출처 밝히거나 숨기고 책임지는 방식 모두 출현할듯"
“AI 시대 차별화 전략 불가피”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AI 에이전트의 확산은 기존 플랫폼 중심의 시장 질서를 근본적으로 뒤흔들 기술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네덜란드 틸버그대학교의 프리소 보스틴(Friso Bostoen) 경쟁법·디지털 규제학 조교수는 1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열린 ‘SAPI Colloquium 2025-V: AI 에이전트 시대의 경쟁 정책’에서 “AI 에이전트는 소비자의 판단과 행동을 대신하게 되면서 경쟁 구도를 재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네덜란드 틸버그대학교의 프리소 보스틴(Friso Bostoen) 경쟁법·디지털 규제학 조교수. 사진=링크드인
AI 에이전트는 사용자가 “여행 준비해줘”라고 말하면, 항공권 검색부터 숙소 비교·일정 조율·결제 옵션 추천까지 스스로 실행하는 자율형 AI다.

보스틴 교수는 “AI에이전트는 기존 AI 보조기보다 자율성과 능동성이 크게 높아져 소비자 행동을 대체할 수준”이라며 “이 과정에서 기존 플랫폼의 지위가 약화되거나 완전히 새 판이 짜일 수 있다”고 말했다.

세미나 현장에서는 AI 에이전트 시대에 서로 다른 규제 틀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질문이 이어졌다. 이에 대해 보스틴 교수는 경제적 경쟁 규제와 유럽연합의 DSA(디지털서비스법)가 서로 완전히 다른 압력을 만든다고 설명했다.

그는 “경쟁 정책 관점에서 개발자에게 주어지는 메시지는 ‘당신의 보완재를 상품화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AI 에이전트 개발자는 소비자가 그 호텔·샌드위치·상품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모르게 하고 싶어 한다. 상호작용의 소유권과 그로부터 발생하는 수익을 자신이 갖고 싶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DSA는 정반대 방향이다.

보스틴 교수는 “DSA는 문제 발생 시 책임 회피를 막기 위해 출처 명시를 강하게 요구하는 규제”라며 “제품·콘텐츠·예약·검색 결과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투명하게 밝히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두 힘이 서로 반대 방향에서 작용하기 때문에 시장이 어디로 갈지는 단정하기 어렵다”며 규제 충돌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보스틴 교수는 이러한 규제 환경이 결국 AI 에이전트 개발자들의 전략적 차별화로 이어질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어떤 개발자는 ‘우리는 출처를 명확히 밝히는 비즈니스 사용자 친화적 에이전트입니다’라고 할 것이고, 반면 또 다른 개발자는

‘책임은 우리가 떠안겠습니다. 사용자는 아무것도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라고 할 수 있다”면서 “두 방식 모두 시장에 존재할 수 있고, 규제 충돌이 오히려 다양한 서비스 전략을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보스틴 교수는 마지막으로 “AI 에이전트 기술은 기존 경쟁 정책과 디지털 규제의 접점을 재정의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정책은 기술 변화 속도를 따라가기 위해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질문에서 “누군가가 누군가를 대신해 행동할 때 생기는 법적 책임 관계인 대리법(Agency Law)과 소비자보호법이 AI 에이전트 문제에 적용될 때 경쟁법의 역할은 무엇이냐”고 묻자, 보스틴 교수는 EU의 P2B(Platform-to-Business) 규제 사례를 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소비자법은 투명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지만 국가별 집행 체계 때문에 실제 집행력이 약하다”면서 “틱톡이나 부킹닷컴 같은 대형 사건을 개별 국가 집행만으로 다루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때문에 그는 소비자보호법·대리법은 “최소한의 영향 완화 역할은 가능하지만, 모든 개발자가 이를 충실히 따를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경쟁법의 독자적 역할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온라인 청중이 “AI 시대, 정부가 빅테크와 협상할 실질적 힘은 어디서 나오느냐”고 묻자, 지정학적 요소를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지금 EU 정부의 협상력을 가장 제한하는 요소는 미국의 규제 방향”이라며 “이전 정부는 유럽과 보조를 맞추는 흐름이 있었지만, 현재 미국 행정부는 빅테크에 우호적이다. 그 영향으로 유럽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플랫폼 규제를 완화하라는 압력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이어 “정책적 협상력이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증거 기반이 부족한 미래 기술 규제는 늘 어렵다”고 덧붙였다.

한편 보스틴 교수는 스타트업의 경쟁제한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는 긍정적으로 답했다.

그는 “지난 20년간 새로운 빅테크의 등장은 거의 없었다는 의미에서 오픈AI의 부상은 매우 반가운 흐름”이라면서도 스타트업 보호를 위해서는 차등적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유럽연합 DMA(디지털시장법)는 극히 일부 게이트키퍼에게만 적용되기 때문에 신생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지우지 않는다”며 “반면 (유럽연합의)GDPR(일반정보보호규정)·AI Act(AI법)는 모든 기업에 적용돼 스타트업에게 불균형적 부담을 초래한다”고 말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현대자동차 관계자가 자동차 산업 관련해 질문하기도 했다.

보스틴 교수는 “자동차가 OS를 갖춘 플랫폼으로 변하면서 DMA의 ‘운영체제’ 정의에 들어갈 가능성은 있다”고 전제했다.

다만 그는 “게이트키퍼 요건, 특히 1만 명 이상의 비즈니스 사용자를 충족하기 어렵다”며 “완성차 OS는 제공 가능한 앱 종류도 제한적”이라고 했다. 실제로 자동차OS가 DMA 법 적용 대상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란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