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조 전세대출 조인다…지방 대출규제 완화·보험 5종세트 추진
by김국배 기자
2025.01.08 17:50:38
[금융위 2025년 업무보고]
전세대출 보증 비율 90% 일원화…"100% 보증 비정상"
"전세대출 제도 정상화 적기"…지방 대출 규제는 완화
사망보험금 연금으로 받고 ISA 의료비 인출 자유롭게
[이데일리 김국배 최정훈 기자] 금융당국이 오는 7월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3단계 도입을 앞두고 최대 100%를 해주던 전세대출 보증을 90%로 낮추기로 했다. 전세대출을 DSR 규제에 넣는 것을 두고 논란이 많다 보니 보증 비율을 먼저 낮추는 방안으로 전세대출 규제에 시동을 건 것으로 풀이된다. ‘갭투자(전세를 끼고 매수)’ 등에 이용되던 일부 전세대출을 줄이는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다만 일각에선 보증 비율이 낮아지면 임대인들이 월세를 선호하는 경향이 커지면서 세입자의 피해가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8일 ‘2025년 경제 1분야 주요 현안 해법 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업무계획을 발표했다. 계엄과 탄핵 추진 등 정국 혼란 속에서 ‘시장 안정’을 최우선에 두겠다고 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전세대출의 보증 비율을 90%로 일원화하는 것이다. 현재 전세대출금의 최대 100%를 보증하고 있다. 한국주택금융공사(HF)는 90%, 주택도시보증기금(HUG)과 서울보증보험(SGI)은 각각 100%를 보증한다. 앞으론 모두 90%까지 낮아질 뿐 아니라 수도권은 부동산 시장 상황 등에 따라 비율을 더 내리는 추가 대책까지 검토한다.
금융당국이 이런 규제를 추진하는 것은 전세대출 시장이 200조원 수준으로 커진 데다 은행이 손실 리스크가 작다보니 전세대출을 쉽게 내주는 경향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보증사가 보증 비율을 낮추면 은행 등 금융사는 위험 부담이 늘어나니 임차인의 전세대출 심사를 더 까다롭게 할 수밖에 없다. 금융당국이 그간 강조해 온 ‘갚을 수 있을 만큼만 빌리라’는 DSR 규제 목표와도 궤를 같이한다. 권대영 금융위 사무처장은 “100% 보증은 정상은 아니다. 금융회사가 상환 능력에 대해 일정 부분 봐야 한다”며 “금리가 하락 추세에 있는 지금이 정상화된 전세대출 제도를 운영할 수 있는 적기다”고 했다.
보증 비율을 낮추면 금리가 올라갈 수 있지 않으냐는 우려에 금융당국은 “부분 보증이 되면 금리가 조금 올라갈 가능성은 있겠지만 그렇게 높은 수준은 아닐 것이다”며 “일정 부분 금리가 올라가는 것은 시장 원칙상 불가피한만큼 인정하고 가겠다”고 언급했다.
다만 보증 비율 인하가 전세의 월세화 현상을 부추겨 임차인의 주거 불안정을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김효선 NH농협은행 수석전문위원은 “아직 전세 사기로 보증금 미반환 우려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보증비율을 낮추게 되면 임대인이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하게 될 수 있기 때문에 임차인들은 주거비 부담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영세 세입자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줄어드는 등 주거 취약계층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했다.
금융당국은 전세대출 규제에 손을 대 가계대출 관리 강화 기조를 이어가면서도 지방에 대해선 가계대출 한도에 조금 더 ‘여유’를 두도록 방향을 잡고 있다. 명목 국민총생산(GDP) 성장률 이내 연간 가계대출 증가율을 관리하는 것이 금융당국의 기본 입장이지만 돈이 돌지 않은 지방에는 증가율을 차등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권 처장은 “지방이라고 더 빌려주고 서울이라고 덜 빌려주는 것은 DSR의 원칙에 안 맞는다”며 “현재 지방의 어려움을 고려해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일부 고려할 수 있다. 단 ‘지방에서 늘어난 돈은 지방에 머무른다’는 대전제가 깔렸다”고 했다.
금융당국은 이날 ‘노후 지원 보험 5종 세트’를 추진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우선 사망보험금 유동화를 추진한다. 사후 소득인 보험금을 생전 소득으로 유동화시켜 저소득층 노인의 노후 대비 수단으로 활용토록 하겠다는 취지다. 사망보험금의 일정 비율을 담보로 산정한 금액을 연금 방식으로 지급하거나, 요양시설 입주권·헬스케어 이용권 등의 현물을 서비스로 제공하는 방식이다. 금융위에 따르면 현재 보험료 납입이 끝나 유동화가 가능한 종신보험 계약 건수는 약 362만건이다.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연금저축계좌를 의료비 저축계좌로 쓸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현재는 중도 인출하면 납입 한도가 복원되지 않는데 의료비 목적의 인출은 한도를 복원해준다. 또 계좌와 연계된 카드로 의료비를 지출하면 증빙할 필요없이 의료비 목적으로 자동 인정한다.
보험계약대출에 우대금리 항목도 신설한다. 보험계약대출은 보험 가입자가 미래에 받을 보험금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것인데 과거 확정 고금리(연 6~8%)로 판매한 상품은 최종 대출 금리가 높게 설정돼있는 상태다. 이에 금융위와 보험사들은 보험계약대출 기본 가산금리에 우대금리 항목을 만들어 고령자 고객, 고금리 상품 계약자 등의 금리를 할인해주기로 했다.
초고령자, 유병력자의 실손보험 가입(70~75→90세)·보장 연령(100→110세)을 확대해 의료비 보장도 강화한다. 고령화 시대에 맞춰 실손보험 사각지대를 줄이려는 의도다. 또 금융위는 신탁업을 활성화해 생애종합 서비스를 제공한다. 예컨대 신탁계약을 통해 초기 노년기에는 연금 지급, 후기 노년기에는 건강보호·간병 지원과 상속 지원을 받도록 설정하는 식이다. 금융위는 내달 제7차 보험개혁회의를 통해 상품별 구체안을 발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