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인양은 시작일 뿐"…광화문 추모공간 시민 발길 이어져

by고준혁 기자
2017.03.23 16:38:02

팽목항行 유가족들 대신 시민단체 회원들이 추모객들 맞아
"게으른 정부에 분노, 기성세대로서 부끄러울 뿐" 고개 숙여
시만단체 측 "인양작업 끝나도 할일 많아 추모공간 유지"

지난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 맹골수도에서 침몰한 세월호가 1073일 만에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23일 오후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세월호 추모 공간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고준혁 기자)
[이데일리 고준혁 기자] “이유도 모른 체 목숨을 잃은 아이들에게 뭐라 할 말이 있겠습니까.”

세월호가 1073일 만에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2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세월호 추모 공간(가로 15m·세로 20m, 약 300㎡). 참사 1주기를 앞둔 지난 2015년 4월 11일 광화문광장에 들어섰다.

추모 공간이 만들어진 뒤 매일 같이 이 곳을 찾는다는 지모(53)씨는 “지금의 세상을 만든 기성세대 중 한 사람으로 그저 죄스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3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러서야 처참한 모습으로 인양된 세월호를 보게 된 그는 착잡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침몰 해역인 전남 진도 동거차도 앞바다에서 세월호가 모습을 드러낸 이날 평소보다 많은 시민들이 광화문광장의 추모 공간을 찾았다.

‘4월 16일의약속국민연대’(4·16연대)에 따르면 이날 오전 기준 하루 평균 방문객의 배에 가까운 400여명의 시민들 발길이 이어졌다. 유가족 대부분이 세월호 인양이 진행되는 진도군에 가 있어 4·16연대 관계자들이 시민들을 맞았다.

등굣길에 들른 대학생, 점심 식사를 마치고 회사로 들어가기 전 분향소를 찾은 회사원뿐만 아니라 지방에서 올라온 시민도 있었다.

6살·4살 형제를 둔 회사원 강모(41·여)씨는 “뉴스로 팽목항에 가 있는 미수습자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봤다”며 “3년이란 긴 시간 차가운 물 속에 있다 하루도 채 안 돼 올라오는 세월호를 보고 게으른 정부에 대해 화가 치밀었는데 그분들은 어떤 심정일지 가늠조차 안 된다”고 말했다. 대학생 김모(27·여)씨는 “학교 갈 때 버스 안에서만 분향소를 지켜봤는데 인양 소식을 듣고 직접 오게 됐다”고 했다.



‘노란 리본 공작소’에선 10명 정도의 자원봉사자와 일반 시민이 ‘세월호 노란 리본’을 열쇠고리에 끼우고 있었고 그 옆에선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추모 공간을 찾은 시민들은 ‘세월호 진상규명 촉구’라고 쓰인 종이에 이름과 주소를 적고 사인을 했다.

맞은 편 ‘광화문 4·16가족분향소’에선 여러 시민들이 흰 국화를 단에 올려놓은 뒤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묵념했다. 분향소 한 쪽 ‘경축 박근혜 탄핵’이란 문구가 쓰인 리본이 달린 꽃바구니가 눈길을 끌었다.

분향소 옆 ‘기억하라 0416 전시관’ 한가운데 놓인 텔레비전에선 세월호 2주기를 맞아 제작한 다큐멘터리 ‘아버지의 목소리’가 상영되고 있었다. 아이를 잃은 한 아버지가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문득 그놈 생각이 난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왔다. 이를 지켜보던 몇몇 시민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4·16연대 등 시민단체와 유가족들은 정부가 세월호 인양 작업을 마무리 한 후에도 추모 공간을 유지할 방침이다.

배서영 4·16연대 사무처장은 “인양은 진상규명의 시작일 뿐 끝이 아니다”며 “아무 것도 밝혀진 게 없는 현 시점에서 추모 공간을 없앨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특별조사위원회 2기 발족, 세월호 특별법 개정, 미수습자를 찾는 것 등 앞으로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한 시민이 2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광화문 4·16가족분향소’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사진=고준혁 기자)
서울 광화문광장 세월호 추모 공간에 있는 ‘세월호 노란 리본 제작소’ (사진=고준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