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형사 리니언시 도입 2년…법원은 ‘부글’, 기업은 ‘눈치’

by조용석 기자
2022.04.13 17:29:04

검찰, 전속고발권 유지되자 자체 형사 리니언시 도입
법원, 형사 리니언시 맹비판…“헌법질서 우회한 편법”
檢·공정위 동시 리니언시 운영…제도 안정성 떨어져
“일원화가 원칙…형사 리니언시 하려면 법 개정해야”

[세종=이데일리 조용석 기자] “요새는 기업에 담합 관련 리니언시(Leniency·자진신고자감면)를 할 때 공정거래위원회와 검찰에 동시에 하라고 자문합니다. 공정위 전속고발권이 폐지되지 않았다고 해도 기업에서는 검찰의 형사 리니언시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죠. 최대한 안전하게 가야 하니 양 기관에 모두 리니언시 자료를 내는 것이 최선이죠.”

대검찰청(사진 = 연합뉴스)


공정거래법 전문 변호사는 형사 리니언시 도입 후 달라진 점을 이 같이 설명했다. 검찰이 공정거래법상 담합(카르텔)사건에 대한 형사 리니언시를 도입한 지 2년이 넘어선 가운데 법원의 비판과 기업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학계에서도 리니언시 안정성을 위해서라도 검찰이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등 제도 정비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공정위 리니언시 제도는 부당한 공동행위(담합)를 한 사업자가 이를 입증할 충분한 증거를 자진 제출하고 조사에 협조할 경우 과징금 등을 감면해주는 것이다. 1순위는 과징금 100%, 2순위는 과징금 50%를 감면하고 1·2순위 모두 형사 고발을 하지 않는다. 형사 고발 면제는 공정위의 전속고발권(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은 공정위 고발이 있어야 검찰 기소 가능)을 활용한 것이다.

앞서 법무부(검찰)-공정위는 2018년 전속고발권 폐지를 논의하면서 자진신고자가 제출한 정보를 양 기관이 실시간 공유하고, 검찰이 1순위에 대해 형 면제 등을 할 수 있도록 근거 조항을 넣어 공정거래법을 개정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당시 검찰권 강화를 우려한 정부가 전속고발권 유지를 결정하자 검찰은 형법상 자수감경조항 등을 활용, 자진신고자 기소를 면제하는 형사 리니언시제도를 만들었다. 2020년 초 시범운영 후 그해 12월부터 본격 운영 중이다. 지난해 10월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형사 리니언시에 따른 첫 기소 면제 사례를 만들었다.

형사 리니언시제도를 강하게 비판하는 곳은 법원이다. 형 감면의 근거가 될 법 조항이 없다는 이유다. 강우찬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는 작년 한국경쟁법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검찰은 형법상 자수감경 규정 및 공익신고자 관련 형의 감경을 근거로 들고 있으나, 해당 규정은 형의 감면에 관한 것으로 법관에 대한 수권 규범”이라며 “특히 (1순위에 부여하는) 기소면제는 영미법상 플리바게닝과 동일한 효과를 가진 것으로 국민적 합의에 기초한 입법적 결단사항”이라고 비판했다. 강 부장판사는 ‘헌법질서를 우회한 편법’, ‘법치주의의 중대한 장애’ 등의 표현도 썼다.

박상기(왼쪽) 법무부 장관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2018년 8월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공정거래법 전속고발제 개편 합의문 서명식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당시 공정거래법 초안에는 형사 리니언시를 위한 조항이 있었다.(사진 = 뉴시스)




법원의 또다른 우려는 검찰을 감독·견제할 장치가 없는 점이다. 공정위는 리니언시 인정 여부에 대해 사무처가 의견을 내고 이후 위원회가 심의하는 과정이라도 있으나 검찰은 없다. 또 일반 사건은 검찰의 불기소처분에 피해자가 헌법소원 등을 제기하는 형태로라도 불복할 수 있으나 또렷한 피해자가 없는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은 이도 어렵다. 수사기관에 부여할 형의 면제권은 의회 논의를 거쳐 법이나 최소한 대통령령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검찰이 형사 리니언시 제도를 도입한 가장 큰 목적은 증거 확보가 용이해지기 때문이다. 또 강제수사권을 가진 검찰은 리니언시 정보를 토대로 명확히 범죄를 특정할 수 있게 돼 압수수색 영장 등을 받기도 용이하다. 2018년 당시 전속고발권 협상에 참여했던 전직 공정위 관계자들은 “검찰이 진짜 원했던 것은 리니언시 정보”라고 전했다.

기업은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전속고발권이 유지되고 있기에 공정위 리니언시만 제대로 된다면 형사 고발을 피할 수 있겠지만 반대로 검찰 형사 리니언시만 먼저하고 공정위 리니언시를 하지 않았다면 과징금 감면 등을 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기소는 면제됐으나 과징금은 부과되는 등의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공정거래법 전문 변호사는 “검찰이 ‘형사 리니언시와 공정위 리니언시는 다른 제도’라고 말하고 있기에 검찰이 불편한 기업으로서는 공정위 리니언시만 하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현재로선 양 기관에 동시에 리니언시를 하는 것이 안전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 전경.(사진=이데일리DB)


학계 역시 검찰과 공정위가 충돌하는 모양새의 현 리니언시제도는 빨리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신영수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실 공정거래법 위반에 대한 형사 처벌을 공정위에 일원화하는 것이 지금의 제도”라며 “검찰이 그간 공정위 리니언시에 대해 ‘범죄자와 협상한다고 비판했다’가 형사 리니언시를 도입한 것은 다소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이 형사 리니언시를 하려면 법을 개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며 “기업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리니언시제도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라도 서둘러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