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보조금 중단·美연비기준 완화… 韓배터리에 '날벼락'
by김정유 기자
2020.04.06 17:08:22
[불확실성 커지는 韓배터리]①
獨 베를린주 자국내 처음으로 전기차 보조금 중단
美선 차량연비기준 완화에 전기차 전환 지연 우려
中은 보조금 연장, 자국산업 보호에 차별 걱정
각국 후퇴하는 환경정책, 韓배터리 변수로 작용
| 헝가리 코마롬에 위치한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생산 공장. 현재 연 7.5GWh 규모의 배터리를 생산하는 제 1공장은 완공됐으며, 제 2공장이 완공되면 연간 16.5GWh의 배터리를 생산하게 된다. (사진=SK이노베이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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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유 기자] 국내 배터리 업계가 글로벌 전기자동차 주요 시장인 유럽·미국·중국에서 일제히 악재를 맞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해 각국의 전기차 관련 정책이 잇달아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어서다. 전기차 보조금 정책을 중단 또는 연장하거나 환경규제를 연기해달라는 요청까지 잇따르는 등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올해 공격적인 외형 성장으로 글로벌 배터리 시장을 선점하려던 국내 업체들의 긴장감도 높아지고 있다.
6일 외신 및 업계에 따르면 독일 베를린주는 최근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독일 내에선 처음으로 전기차 보조금을 중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독일 정부는 지난해 전기차 보조금 한도와 지급 기한을 연장하며 보급형 전기차 판매를 촉진해왔던터라 코로나19 사태가 뼈 아프다. 당초 독일 정부는 올해까지 전기차를 100만대까지 늘리고 오는 2030년까지 최대 1000만대를 보급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코로나19라는 변수로 인해 재정압박과 불확실성이 커졌다. ‘유럽 자동차 시장의 중심’인 독일의 이 같은 상황은 국내 배터리 업계에도 부정적인 요소로 다가올 전망이다.
국내 배터리 업체 A사 관계자는 “LG화학(051910), SK이노베이션(096770) 등과 거래하고 있는 폭스바겐만 해도 한국 배터리 업계의 ‘메이저’ 수요처”라며 “독일의 수도 베를린이 전기차 보조금 중단 결정을 내릴 정도라면 이후 다른 주로 보조금 중단 조치가 확산될 수 있는 만큼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의 전기차 관련 정책도 후퇴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실제 최근 유럽연합(EU)에서도 신규 차량의 이산화탄소(CO2) 연평균 배출량을 95g/km로 제한하는 규제 시행을 두고 잡음이 일고 있는 상황이다. 이 규제는 당장 내년부터 적용될 예정이지만 유럽내 자동차 관련 협·단체들이 제동을 걸고 있다. 유럽자동차제조협회(ACEA) 등 현지 자동차 제조 3개 단체는 최근 EU집행위원회에 CO2 배출 규제 시행을 연기해달라는 서한을 전달한 바 있다. EU가 해당 요청을 수용할 경우 향후 ‘친환경’ 전기차 시장 성장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국내 배터리 업체들의 사업 계획도 차질을 빚게 된다.
미국에서도 정책 변수가 생겼다. 미국 교통부는 최근 연평균 자동차 연비 개선율을 2012년 제정된 5%에서 1.5%로 대폭 낮추는 새로운 규정을 발표했다. 기존 규정대로라면 자동차 업체들이 차량 평균 연비를 ℓ당 23.2km까지 맞춰야 했지만, 이번 개정에 따라 적용해야 하는 평균 연비 기준도 ℓ당 17.2km까지 완화됐다. 연비 기준 완화로 미국내 승용차 및 경트럭 가격 인상을 막고 더 많은 내연기관차들이 판매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트럼프 행정부의 부양책 중 하나다. 하지만 이번 정책은 배터리 업계로선 악재다. 차량 연비 기준을 완화하면 전기차로의 전환 시점이 늦어지게 되는만큼 배터리 시장에 장기적인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의 박찬길 연구원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자국내 풍부한 셰일가스를 적극 소비해야 하는만큼 전기차보다 내연기관차 중심으로 정책을 끌고 나가고 있다”며 “국내 배터리 업계로선 좋지 않은 이야기”라고 했다.
국내 배터리 업계의 최대 수요 시장인 중국 역시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자국산업이 위축되자 전기차 보조금 제도를 2년 연장키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당초 올해 말로 예정됐던 전기차 보조금 폐지 시점은 오는 2022년 말로 미뤄졌다. 이번 보조금 연장 조치가 자국 산업 보호라는 큰 틀에서 진행되는 만큼 국내 업체들 입장에선 부정적 영향이 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불확실성 측면에서 우려감이 크다.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과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사태로 2016년 1월부터 보조금 대상에서 빠졌다가 최근에서야 다시 명단에 올랐다. 향후에도 중국 정책에 따라 언제든 제외될 수 있다는 얘기다.
당초 국내 배터리 업계는 공격적인 설비 투자로 올해 본격적인 글로벌 시장 선점에 나설 계획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등의 변수로 불확실성이 대폭 확대되면서 올해 경영 차질이 예상된다. 특히 글로벌 전기차 주요 시장인 유럽·미국·중국 등 3개 지역에서 일제히 환경 등 정책 변화 조짐이 보이면서 불확실성을 더 키우는 모양새다. 당장 코로나19로 인해 배터리 판매가 줄어드는 것보다 향후 전기차로의 전환이 늦어지는 시장 환경 변화에 대한 걱정이 더 크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최대 시장인 유럽·미국·중국에서 모두 악재를 맞고 있는터라 긴장하고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코로나19로 내연기관차 업계도 죽어가는 상황이라 전기차는 후순위로 밀리고 있고 환경규제도 후퇴하고 있어 본격적인 전기차 시장 개화 시기가 미뤄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