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출산여부 결정권 있어" vs "성관계 결과인 임신 책임져야"

by이승현 기자
2019.04.11 17:49:40

재판관 9명, 헌법불합치 4명·단순 위헌 3명·합헌 2명
위헌과 합헌, 자기결정권과 생명권 중 우선순위서 엇갈려
태아 생명보호 효과 두고 헌법불합치 측과 단순위헌 측 이견
합헌 측 "국민의견 도출 뒤 국회 주도…성관계 따른 책임져야"

낙태죄 반대를 외치던 시위자들이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헌법 불합치 판결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포옹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헌법재판소가 66년 만에 낙태죄 처벌에 대한 위헌취지 결정을 내린 가운데 9명의 재판관들은 주요 쟁점에서 크고 작은 의견 차이를 보였다.

11일 헌재에 따르면 9명의 재판관은 형법 269조 1항(자기낙태죄)와 270조 1항(동의낙태죄)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사건에서 헌법불합치 4명과 단순 위헌 3명, 합헌 2명으로 나뉘었다. 헌재는 형법상 낙태죄 처벌조항에 대해 법률 위헌정족수(6명 이상)를 충족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했다.

이 사건 핵심 쟁점은 임신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 보다 우선하냐는 것이다. 위헌 취지 의견과 합헙 취지 의견은 여기에서 확연히 갈렸다.

헌법불합치 입장인 유남석 소장과 서기석·이선애·이영진 재판관 등 4명은 “자기결정권은 여성이 인격권을 바탕으로 자율적으로 생활영역을 형성할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하고 여기에는 임신 여성이 신체를 임신상태로 유지해 출산한 것인지 여부에 대해 결정할 수 있는 권리도 있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현행 낙태죄 조항은 임신기간 전체에서 모든 낙태를 전면적·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위반하면 형벌을 부과해 임신의 유지와 출산을 강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한다고 지적했다.

단순위헌 의견을 낸 이석태·이은애·김기영 재판관은 한발 더 나아갔다. 이들은 “임신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려면 여성이 임신의 유지 또는 종결에 관해 한 전인격적인 결정으로서의 자기결정권 행사가 원칙적으로 임신기간 전체에 걸쳐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태아의 생명보호와 여성의 생명보호 및 신체안전 등을 위해 자기결정권을 제한할 수 있다고 단서를 제시했다.

낙태죄 합헌 의견을 밝힌 조용호·이종석 재판관은 태아의 생명권을 중시했다. 이들은 “출생 전의 생성 중인 생명을 헌법상 생명권 보호대상에서 제외한다면 생명권 보호는 불완전하다”며 “태아도 헌법상 생명권 주체가 된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이어 “태아가 모체의 일부여도 임신 여성에게 생명의 내재적 가치를 소멸시킬 권리, 즉 낙태할 권리를 여성의 자기결정권 내용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또 국가가 생명보호 의무의 이행을 위해 임신 여성의 태아에 대한 침해를 제한할 수 있다고 의견을 밝혔다.



현행 낙태죄 규정이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는지를 두고도 의견이 갈렸다. 과잉금지원칙은 국민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률은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합성 △법익의 균형성 △침해의 최소성 등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헌법불합치 의견을 낸 4명은 낙태죄 처벌조항이 태아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입법목적이 정당하고 이 목적 달성에 적합한 수단이라고 봤다. 그러나 임신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해 침해의 최소성을 갖추지 못했고 태아의 생명보호라는 공익에만 일방적 우위를 부여해 법익 균형성도 위반했다고 했다. 낙태죄 조항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한 이유다.

단순 위헌 의견을 밝힌 3명은 낙태죄 처벌조항이 태아의 생명보호라는 입법목적 달성에 기여했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자기낙태죄 조항은) 국가의 인구정책에 따라 실제가동 여부가 좌우되거나 상대 남성 또는 주변인의 복수나 괴롭힘의 수단으로 악용됐다”며 “여성이 임신 유지에 필요한 사회적 논의나 소통을 하지 못한 채 임신 종결을 결정해 안전하지 않은 방법으로 낙태를 하도록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특히 법적공백 방지 등을 이유로 낙태죄에 즉시 위헌이 아닌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는 점을 비판했다. 이들은 “낙태죄 조항이 낙태예방 효과가 제한적이고 형벌조항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해 (당장) 폐기되도 극심한 법적 혼란이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내년 말까지) 낙태죄 위반자에 대한 기소를 일단 가능하게 한 뒤 사후입법으로 이를 해결하는 것은 규율의 공백을 개인에게 부담시켜서 가혹하다”고 비판했다.

합헌 의견을 낸 조용호·이종석 재판관은 낙태죄 조항이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낙태 허용 여부와 허용시 기간설정 등의 문제는 먼저 사회적 논의를 통해 다수 국민의 의견을 도출한 뒤 국회가 주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지난 2012년 헌재가 낙태죄 조항에 합헌 결정을 내린 후 약 7년이 지난 현재 기존 입장을 바꿀 만할 사정변경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두 재판관은 낙태허용 사유인 이른바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대해서도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사회적·경제적 사유는 결국 임신 여성의 편의에 따라 낙태를 허용하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헌법 전문은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라고 선언하는데 성관계라는 원인을 선택한 이상 그 결과인 임신과 출산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게 이러한 헌법정신에도 맞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