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기사가 갑자기 사라졌어요”…언론중재법으로 달라지는 점
by김현아 기자
2021.07.29 17:44:44
①최대 5배 손해배상…비판 보도 위축, 자본 권력 종속 가속화
②모호한 열람차단 청구권…소리 없이 사라지는 기사
③언론사의 기자에 대한 구상권…기자의 펜 막는다
이준석 vs 이재명 '노무현 정신' 설전
언론5단체, 통과시 헌법 소원할 것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닭(가짜뉴스)잡는 데 소 잡는 칼(언론 자유 말살)을 쓰는 격이죠.”
더불어민주당이 8월 국회 처리를 목표로 추진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두고 비판이 거세다. 조선일보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 삽화 사건이나 MBC의 도쿄 올림픽 개막식 중계 자막 사고 같은 여론의 질타를 받은 보도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체 언론을 상대로 △판단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고의·중과실을 이유로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고 △고의와 중과실로 ‘추정’되거나, 문제가 있는 보도라고 ‘청구’만 들어간 상태에서도 인터넷을 통한 해당 보도 열람을 차단하며 △민법상 가능함에도 언론사가 기자에 대해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한 ‘언론중재법’은 득보다는 실이 더 크다는 지적이다.
헌법적 가치인 ‘표현의 자유’에 어긋나고,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인과 정부 정책의 비판·의혹 보도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겠다는 시도로도 읽히기 때문이다. ‘가짜뉴스’를 잡겠다는 민주당의 언론중재법이 시행되면 어떤 일들이 발생하기에 이처럼 비판이 클까.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되면 언론 활동이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언론의 고의·중과실 추정 기준이 모호한 반면, 손해배상액은 지나치게 크기 때문이다.
여기에 △기사 제목에 왜곡이 있는 경우와 △사진·삽화·영상 등의 시각자료로 기사 내용을 왜곡하는 경우까지 고의·중과실로 판단하는 내용이 포함돼 논란이다. 문구대로라면 편집자의 상상력이 가미된 제목이나 풍자가 섞인 삽화도 징벌적 손해배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법이 시행되면 언론사들은 자문 변호사를 늘리고 편집과 디자인, 뉴미디어 부서까지 모니터링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배상액 기준이 언론사 매출액의 1000분의 1에서 1만분의 1로 된 만큼, 매출액 1조 원이 넘는 KBS의 경우 10억 원까지 배상해야 한다.
이런 조문은 사업국 등 비취재 부서들의 분사를 이끌고, 언론사의 신규 사업 진출을 방해해 자본 권력(광고)에 종속하는 언론 구조를 심화시킬 것이란 예상도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정치권력이 언론의 입을 틀어막는 효과다. 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아무리 공적 가치를 내세워도 정부가 명확하지 않은 기준을 내세워 강제로 언론을 규제하는 것은 검열과 다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 지난달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미디어혁신특별위원회 제6차 회의에서 김용민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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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에는 열람차단청구권도 신설됐다. 고의와 중과실로 ‘추정’되거나, 문제가 있는 보도라고 ‘청구’만 들어간 상태에서도 인터넷포털이나 동영상 플랫폼 등은 언론 보도를 열람하는 걸 차단해야 한다.
물론 법안에는 △언론보도 등의 제목 또는 전체적인 맥락상 본문의 주요한 내용이 진실하지 아니한 경우 △사생활의 핵심영역을 침해하는 경우 △인격권을 계속 침해하는 경우 등이라는 단서를 붙였지만, 모호하다는 평가다.
지금도 유튜브나 포털에서는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접속 차단되거나 블라인드(숨김처리)되는 기사들이 상당한 데, 법이 시행되면 손배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인터넷 플랫폼들이 앞다퉈 열람을 차단할 가능성이 크다.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징벌적 손배 책임을 피하려고 플랫폼들이 임시조치를 강화하면 사법 판단에 따라 (가짜뉴스 여부가) 해결돼 판례가 쌓여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기회를 잃게 된다”면서, 표현의 자유 위축을 걱정했다.
기본적인 배상 책임은 언론사가 지지만, 기자들이라고 안전(?)한 것은 아니다. 법에서는 언론사가 △언론보도를 작성한 기자에게만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음이 명백할 경우 △언론보도를 작성한 기자가 데스크를 속였을 경우 등에 한해 해당 기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게 했다.
민주당 미디어혁신특위 김용민 의원실 관계자는 “기자보다는 언론사에 민사상 책임을 묻는 취지가 강하다. 기자들은 취재과정에서 손해배상 대상에서 제외되는 면책 규정을 폭넓게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MBC의 ‘검언유착’ 의혹 보도(2020년 3월 31일)이후 ‘강요미수죄’로 고발(2020년 4월 7일)되고, 회사에서 해고(2020년 6월 25일)당했다가 2021년 7월 16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이동재 전 채널A 기자 사태에서 보듯이, 사건이 한창 세상을 뜨겁게 달굴 때 곧바로 진실이 드러나기는 쉽지 않다.
수억 원의 손해배상을 요구받은 언론사는 기자들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것이고, 기자들의 취재 활동 위축과 함께, 언론사 내부의 불신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언론중재법은 대선을 앞두고 정치 쟁점화되고 있다. 29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노무현 정신’을 두고 설전을 벌였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통해 언론의 입을 막겠다는 것은 언론의 다양성을 확보해 국민이 선택할 수 있게 하자는 노무현 대통령의 언론관을 위배한 것”이라며 “각종 음모론을 퍼뜨렸던 김어준 씨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입장을 밝히라. 안 그러면 비겁자”라고 쏘아붙였다.
여권 유력 대선 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허위조작정보에 대해 언론사에 징벌적 손해배상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조치”라면서 “노무현 대통령 서거에도 가짜뉴스의 영향이 있다. 엉뚱한 논리로 노무현 정신을 훼손하지 않길 바란다”고 날을 세웠다.
언론중재법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 헌법소원이 이뤄질 전망이다. 한국기자협회·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한국신문협회·한국여기자협회·한국인터넷신문협회 등 언론 5단체는 “민주당이 입법 권력을 이용해 언론을 길들이려는 언론중재법 개정을 강행할 경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내는 것을 비롯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적극 저지에 나서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