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GOP사업 제안요청서 오류 논란…방사청 '신뢰성 확보' 숙제

by최연두 기자
2025.05.22 18:04:56

RFP, 수치 오기에도 정정 없어
의견서 낸 업체엔 "원칙대로 진행" 원론적 답변만
이데일리 시험평가 현장 방문 요청도 번복

[이데일리 최연두 기자] 방위사업청이 주관하는 4600억원 규모의 ‘최전방 경계부대(GOP) 과학화 경계시스템 성능개량 사업’과 관련해 사업 제안요청서(RFP)에 기술 사양이 잘못 표기돼 있었음에도 이를 정정하지 않은 채 사업을 진행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업계는 방사청의 미흡한 대응과 형식적인 절차 운영에 대해 “사업 전반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최전방 경계부대(GOP) 관련 이미지(사진=생성형AI 서비스)


22일 업계에 따르면 GOP 사업 RFP에는 감시·감지용 광망(光網) 장비의 평균고장간격(MTBF)이 ‘34년’으로 기재돼 있다. MTBF(Mean Time Between Failures)는 제품이나 장비가 고장 없이 작동하는 평균 시간을 나타내는 기술 지표다. 실제 광망 장비의 MTBF는 3~4년 정도 된다.

국방 분야 전문가는 “(광망 MTBF 34년은) RFP 상 오탈자로 보인다”며 “중요한 수치에 오기가 있으면 통상 정정 공지를 하는데, 방사청이 이를 인지하고도 적극적인 정정이나 해명을 하지 않은 점은 문제”라고 꼬집었다. 한 업계 관계자도 “MTBF 34년은 사실상 불가능한 수치”라며 방사청의 사업 수행 조직에 대해 “기술 전문성이 매우 낮다”고 지적했다.

방사청은 이번 민간업체의 의견서에 대한 답변으로 “원칙대로 진행했다”는 입장만 밝혔을 뿐, 세부 항목에 대한 개별적 설명이나 기술적 질의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회신 없이 일괄 대응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 같은 불충분한 대응이 단순한 소통 부족을 넘어 실제 사업 신뢰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본지는 1차 서류평가를 통과한 SK텔레콤, KT, 에스원 3사가 시험평가를 받게 될 장소가 평지 위주의 9사단 자유로 구간으로 확정됐으며, 이 지형이 실제 배치될 GOP 지역의 산악 환경과는 크게 다르다는 논란을 보도했다.



이 같은 시험평가 환경이 특정 업체에 유리하게 설정됐다는 의혹이 나오는 상황에서 이데일리는 관련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자 방사청에 시험평가 지역 현장 방문을 요청했다. 방사청은 당초 오는 7월 방문 일정을 약속했지만, 최근 “다른 사업의 시험평가 장소는 공개된 적이 없다”며 입장을 번복했다.

방사청은 이번 GOP 사업의 정보화전략계획(ISP) 수립을 민간 업체인 A사에 위탁했으며, 이 과정에서 약 60억원의 용역비를 투입했다. 업계에서는 유사 사업에 비해 이례적으로 큰 금액이 들어갔음에도, 사업 관련 질의에 대한 방사청의 대응이 전문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에 대해 방사청 측은 23일 이데일리에 “사업 관리를 위해 국방과학연구소의 관련 분야 고경험자 및 박사급 인원의 기술 지원을 받고 있다”면서 “사업 관련 질의 혹은 건의사항은 사업 관리 회의를 통해 공식적으로 수렴·해소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RFP에 명시된 광망 장비의 MTBF 수치 오기와 관련해선 “해당 값은 기존 GOP 사업 사례를 참고해 제시한 수치다. 장비 신뢰도 값을 제시하라고 요구한 것이지 특정 수치를 강제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민간 업체의 의견서에 대한 회신이 원론적 수준에 그쳤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세부적인 기술 질의에는 유선으로 별도 안내를 진행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방사청과 군 등 사업 주관 기관은 특정 기업에 특혜를 줬다는 의혹에 대해 강하게 반박하고 있다.

방사청 측은 “객관적이고 공정한 사업 관리를 위해 단계별 감독·검증 절차를 적용하고 있다”며 “사업자 선정 과정에는 다수 관계기관이 참여하며, 시험평가와 종합평가를 모두 거치게 되므로 현 방위사업 추진 시스템상 특정 기업이 내정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시험평가를 총괄하는 군 관계자도 “구체적인 시험평가 기준이나 운영 방안은 군사기밀에 해당해 공개할 수 없다”면서도 “공정하고 객관적인 방식으로 시험평가를 수행한 뒤, 방사청이 주관하는 종합평가에 그 결과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