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소득불평등 OECD '최악'인데…대통령·장관도 피해간 증세(종합)
by박종오 기자
2017.12.21 18:31:40
통계청 조사방법 바꿨더니 韓불평등 선진국 최상위
지니계수 악화 OECD 6위, 상대적 빈곤율은 1위
정부 재분배 정책 미흡한 탓
|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관계자들이 지난 15일 서울 은평구 한 독거 노인 집에 난방 텐트를 설치하고 창문에 보온 단열 시트를 붙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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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정부가 지난 7월 개정한 ‘공무원 보수 규정’을 보면 문재인 대통령의 연봉은 2억 1980만원이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연봉 1억 7040만원,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억 2892만원을 받는다. 일반 정부 부처 장관과 차관 연봉은 각각 1억 2530만원, 1억 2169만원이다.
정부는 “부자에게 걷은 세금으로 복지를 확대해 소득 재분배 효과를 높이겠다”며 내년부터 소득세 과세표준(각종 공제를 제외한 소득) 3억~5억원 구간 소득세율을 기존 38%에서 40%로 올리고, 과표 5억원 초과 구간 세율도 40%에서 42%로 높이기로 했다. 이른바 ‘핀셋 증세’다. 그러나 문 대통령을 비롯한 장·차관 모두 증세 대상에서 제외됐다.
한국의 소득 불평등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5개국 중 여섯째로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체 국민 중 중간 소득도 못 올리는 저소득층 비율은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많았다. 분배 상황이 주요 선진국 가운데 최악인 것이다.
이는 정부의 조세·복지 정책 등을 통한 소득 재분배 기능이 다른 나라보다 크게 뒤떨어지는 탓이다. 상위 0.1%만 겨냥한 ‘생색내기’식 증세 정도로는 불평등 개선을 기대하긴 갈 길이 멀다는 이야기다.
통계청과 금융감독원, 한국은행이 21일 발표한 ‘2017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의 처분가능소득(세후소득) 기준 지니계수는 지난해 0.357로 1년 전(0.354)보다 0.003포인트 상승했다.
지니계수는 한 국가의 소득 불평등 수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분배 지표다. 0(완전 평등)에 가까울수록 소득 분배가 평등하고 1(완전 불평등)에 근접할수록 불평등하다는 의미다. 통계청은 기존 분배 지표가 고소득층의 소득 축소 신고 등으로 한국의 불평등 수준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에 따라 국세청 과세 자료 등 행정 자료를 활용해 보완한 새 분배 지표를 이날 공개했다.
새로 집계한 지니계수는 세계 주요 선진국 중에서도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지금까지 정부는 부실한 통계를 근거로 “한국의 불평등은 심각하지 않다”고 했지만, 실태가 드러난 것이다.
본지가 입수한 통계청의 OECD 국가 비교 자료에 따르면 2015년 한국의 세후소득 지니계수(0.354)는 비교 가능한 35개 회원국 평균(0.317)을 크게 웃돌았다. 한국의 불평등은 멕시코(0.459), 칠레(0.454), 터키(0.404), 미국(0.390), 영국(0.360) 다음으로 심각했다. OECD 회원국 중 위에서 여섯째다.
지니계수가 아닌 다른 분배 지표는 사정이 더 나쁘다.
상위 20% 계층 소득을 하위 20% 소득으로 나눈 ‘소득 5분위 배율’의 경우 한국은 2015년 세후소득 기준 7배에 달했다. 상위 20%가 하위 20%보다 7배나 많은 소득을 올린다는 뜻이다. 한국의 소득 격차는 OECD 회원국 중 멕시코(10.4배), 칠레(10배), 미국(8.3배), 터키(7.8배)에 이어 다섯째로 컸다.
세후소득이 빈곤선인 중간 소득의 50%를 밑도는 인구 비중을 가리키는 ‘상대적 빈곤율’은 2015년 17.8%로 35개국 중 압도적인 1위였다. 빈곤층 인구가 OECD 평균(11.7%)보다 6.1%포인트나 많은 것이다.
이처럼 세후소득 기준 분배 지표가 바닥을 기는 것은 정부 정책의 소득 재분배 효과가 다른 나라보다 크게 뒤떨어져서다.
실제로 세후소득이 아닌 세전소득을 기준으로 집계한 한국의 지니계수는 2015년 0.396으로 OECD 35개국 중 스위스(0.382), 아이슬란드(0.393) 다음으로 양호했다. 그러나 세후소득으로 기준을 바꾸면 이처럼 낮았던 한국의 불평등 순위는 위에서 6위로 껑충 뛴다. 정부의 조세와 복지 정책을 통한 재분배 효과가 낮다보니 불평등도가 오히려 ‘역주행’하는 것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한국은 아직 고령화가 덜 진전돼 일하는 중?장년층이 많은 만큼 세전 소득을 기준으로 한 불평등은 다른 나라보다 심각하지 않다”며 “반면 유럽 선진국 등은 고령화에 따른 은퇴인구 증가 등으로 인해 세전 소득 불평등이 심각하지만, 연금 같은 노후 복지 정책이 잘 갖춰져 있어 세후소득으로 기준을 바꾸면 불평등이 크게 개선되는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후소득 지니계수에서 세전소득 지니계수를 빼 측정한 정부 정책의 소득 불평등 개선 효과는 한국이 0.042포인트로 OECD 평균(0.155포인트)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멕시코(0.019포인트), 터키(0.025포인트), 칠레(0.032포인트) 다음으로 낮다.
문제는 한국의 분배 지표는 향후 더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빠른 고령화 때문이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는 정부가 세금을 걷고 쓰는 부분 모두 재분배 효과가 약하다”면서 “OECD 회원국 평균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복지 지출 규모를 지속해서 확대하고 서민에게 더 많은 혜택이 가도록 복지 사각지대 개혁 등도 병행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