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급 첫 회의 열렸지만…‘돈줄’ 방안 없었다(종합)
by김상윤 기자
2016.09.07 16:59:06
|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 가운데)이 7일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4차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기재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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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데일리 김상윤 박종오 경계영 기자] 한진그룹이 1000억원의 자금을 긴급지원 카드를 꺼내 들고, 미국 법원이 한진해운에 임시 파산 보호 승인을 내리는 등 한진해운 발(發) 대란의 한고비는 넘어가는 모양새다.
하지만 한진해운을 재가동하는 데 필요한 자금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추가 ‘돈줄’을 마련할 방법은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4차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한진해운 발 물류대란 정상화 방안을 내놨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간 이후 처음으로 열린 장관급 회의다.
하지만 기존 대책을 반복했을 뿐, 눈에 띌 만한 내용은 없었다. 선적 대기 중인 화물에 대해서는 미주, 유럽, 동남아 노선 등에 기존 13척에서 7척 늘린 20척 이상을 추가 투입하겠다는 내용 정도가 추가됐다. 피해가 상대적으로 더 크게 미칠 한진해운 협력업체와 중소 수출기업에 대해서는 중기청과 정책금융기관의 긴급경영안정자금과 특례보증을 통해 경영 안정화를 지원해 나가겠다는 방안 정도가 담겼다.
하지만 한진해운을 재가동할 수 있는 핵심인 ‘돈줄’을 마련하는 방안은 여전히 빠졌다. 한진이 계획한 1000억원의 자금을 대더라도 현재 공해 상에 떠돌고 있는 선적을 입항·하역하는 자금은 충분치 않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미수금을 받지 못한 하역업체들이 하역비를 더 올릴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당장 물건을 내릴 수 있는 비용만 2000억원까지도 늘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한진해운이 못 내고 있는 용선료, 하역 운반비 장비 임차료 등 밀린 외상값(상거래 채무)은 총 6500억원에 달하고 있다.
문제는 한진해운이 이미 사실상 남은 자산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추가로 담보를 잡고 대출을 받을 방안이 없다. 한진그룹도 이미 추가 대출을 안 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친 상황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한진해운과 대주주인 한진그룹이 물류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한진해운의 주채권은행이자 사실상 정부가 의사 결정을 하는 국책은행인 KDB산업은행 역시 담보나 보증 없이는 한진해운에 신규 자금을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선순위 채권자인 선주·항만·하역업체 등으로 투입한 자금이 고스란히 빠져나가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것이다.
그 결과, 정부와 수출업계·해운업계 모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입만 바라보는 모양새가 연출되고 있다. 물류난 해소의 실마리가 법적 근거도 없는 총수의 ‘통 큰 결정’에 달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더는 한진그룹에 책임을 물리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주주는 원칙적으로 출자분만큼만 손해를 부담할 뿐 신규 자금 지원을 해야 할 의무가 없다”면서 “이런 식으로 대주주의 도덕적 의무를 강조하면 나중에 거꾸로 법에 없는 총수의 권한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시장에서는 법정관리에 들어간 한진해운이 사실상 청산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 회사를 운영할 최소한의 자금조차 갖고 있지 않아서다. 이미 국제 해운 동맹에서 퇴출당해 영업망이 끊기고 물류 파동을 겪으며 업계 신뢰도 바닥에 떨어진 상태다. 한진해운이 재가동할 수 있는 운영자금 마련이 시급하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어 정부가 말하는 ‘플랜B’(대안)의 실체조차 없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진해운을 떠안은 법원은 회생 기업에 대출해주는 ‘DIP 파이낸싱(Debtor In Possession Financing)’을 통해 영업 종잣돈을 마련하자고 제안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국책은행은 국민 혈세를 투입한다는 여론 부담에 추가 지원에 쉽사리 동의할 리 없고, 외부 투자자를 찾는 것도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의 결단 외에는 이 문제를 풀 뾰족한 해법이 없다고 지적한다. 한진그룹이나 정부(국책은행) 모두 한진해운에 추가로 돈을 대는 것이 ‘배임’ 이슈로 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구조조정 전문 변호사는 “한진해운은 ‘배 째라’고 버티고, 채권단은 채권단대로 구체적인 ‘플랜B’ 없이 원칙만 밀어붙이다가 지금 같은 난감한 상황을 피할 적기를 놓쳤다”면서 “이 문제가 정말 시급하고 절실하다면 국회가 국민을 설득하고 한진해운에 세금을 넣도록 동의해 주는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