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전재욱 기자
2018.01.25 15:51:32
실명거래 도입해 과세 첫걸음 뗐지만
비실명거래 파악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
1BTC 4년새 17배 수익났지만 세금은 누가 내나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정부가 가상화폐(암호화폐)에 대한 과세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가운데 거래실명제 이전 거래에 대한 과세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전망이다.
25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달 30일부터는 실명인증을 받지 않은 투자자는 가상화폐 거래소에 돈을 넣어 가상화폐를 살 수 없다. ‘실명확인 입출금계정 서비스’가 시중은행에 도입되기 때문이다.
투자자는 가상화폐 거래소와 해당 거래소의 거래 은행에 자신의 정보를 넘겨 일치를 시킨 후에야 가상계좌로 돈을 넣을 수 있다. 금융위는 나중에 과세 방안이 정해지면 실명 거래 기록을 과세 근거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거래 실명제는 과세를 위한 첫걸음으로 평가된다. 가상화폐를 과세 대상으로 정하고 투자자에게 세금을 매기려면 투자 수익이 얼만지 확인하는 게 우선이다. 수익은 매도가격에서 매수가격을 뺀 것이다. 가격을 계산하려면 매도와 매수 시점을 각각 알아야 한다. 앞으로 가상화폐 실명 거래제가 도입되면 누가, 언제 가상화폐를 매수했는지 알 수 있다. 이로써 해당 가상통화를 나중에 매도할 때 시세 차익을 계산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실명 거래제 도입 이전에 이뤄진 비실명 거래를 어떻게 과세할 것인지다. 현재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쓰이는 본인확인 시스템은 지난해 9월을 기점으로 도입됐다. 그 이전에는 비실명 거래가 자유로웠다. 가상화폐 거래소 가상계좌에 돈을 보내는 사람과 돈을 받는 사람이 일치하지 않더라도 입금이 됐다.
예컨대 투자자 A씨가 B씨 앞으로 된 가상화폐 거래소의 가상계좌를 통해 가상화폐를 사고팔아서 차익을 얻는 게 가능했다. 투자수익은 명목상 B씨 몫이지만 실제로 A씨 것이다. 그러나 A씨는 겉으로 매매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차익을 계산하기 곤란해서 세금을 붙이기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고 B씨에게 과세하면 실질과세 원칙에 어긋날 수 있다.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에서 1 비트코인은 이날 오후 4시 현재 1335만5000만원에 거래돼 첫 거래를 시작한 2013년 12월27일(75만5000원)과 비교해 17배나 뛰었다. 소득은 있는데 납세자가 모호한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
금융당국은 비실명 거래를 관리하기란 사실상 어렵다고 보고 있다. 금융위 실무자는 “자금세탁 의심 거래로 보고가 올라온 것이 아니라면 전수를 조사해서 매수 시점을 파악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 실무자도 “통제가 안 됐던 시기에 이뤄진 비실명 거래 규모는 추산하기도 추적하기도 어려울 듯하다”고 말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가상화폐 매매 차익에 과세할지 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과거 비실명 거래에 과세할지 언급하기 어렵다”고 했다.
결국 규제 공백기에 먼저 들어갔다가 빠진 쪽만 세금을 피하는 불합리가 발생할 수 있다. 오영중 법무법인 세광 변호사는 “비실명 거래의 매수 시점을 파악하는 것은 어려워 과세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며 “무리해서 과세하면 조세 저항에 맞닥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