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주총]④헤지펀드·대리기관도 가세한 주주제안…이사 선임·해임까지
by이명철 기자
2017.03.13 16:19:18
경제민주화 바람 맞물려 주주 목소리 커져…안건 상정 속속
美 헤지펀드, 의결권 대리업체 등도 참여…기업도 적극 대응
“단순 차익 바라는 태도 지양해야” 성숙한 주주의식 필요성도
[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해마다 정기주주총회 시즌이 거듭될수록 소액주주 중심의 주주제안 움직임이 확산되는 추세다. 올해는 경제민주화 바람과 맞물리면서 기업 가치를 노이라는 주주들의 목소리가 더욱 힘을 받을 전망이다.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처럼 단순히 차익을 거두는 목적의 제안이 아닌 중장기 안목으로 기업 성과를 공유해야 한다는 시각이 나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1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전수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8일까지 올해 정기주총에서 주주제안을 안건에 올린 상장사는 약 20곳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같은기간 두 배 가량 늘어난 수준이다. 아직 주총 시즌이 본격 시작되지 않은 점을 감안할 때 주주제안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주주제안 요구를 받은 기업은 시가총액이 5000억원대를 밑돌거나 작게는 수 백억원인 중견·중소기업이 대부분이었다. 주주제안 내용을 보면 현금배당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회사가 제시한 배당규모를 더 늘리거나 신규 배당을 실시하라는 의견이다.
송원산업(004430)이나 넥센테크(073070)처럼 주당 배당금에 대한 회사안과 주주제안 차이가 2~3배 수준에 그친 경우도 있고 아트라스BX(023890)처럼 주주제안(최대 1만원)이 회사안(300원)의 30배 이상 넘는 곳도 나타났다. 주주들이 원하는 사외이사나 감사를 선임해달라거나 유상감자, 무상증자, 자사주 매입·소각, 주식 분할 등의 요구도 있었다.
주주제안을 하는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하며 연대를 제안하는 움직임도 이제는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미국계 헤지펀드인 SC펀더멘탈(SC Asian Opportunity Fund, L.P.)은 GS홈쇼핑(028150)에 대해 “잉여현금흐름의 적은 부분만 환원하는 배당 정책으로 8000억원 이상의 현금성 자산이 축적됐다”며 주당 8000원(회사안 7000원) 배당을 제시하고 동참을 요청했다. 사외이사 1인 선임도 요구했지만 결격 요건(겸직)이 발견됐다며 안건에 빠졌다. 이에 대해 ‘일방적인 소액주주 제안 누락’이라며 안전 재상정을 추진할 것임을 밝히기도 했다. 의결권 대리행사 전문업체인 네비스탁은 네오디안테크놀로지(072770) 경영진 자질을 의심하는 주주들의 의견을 모아 사내이사 해임과 사외이사·감사 선임을 안건으로 냈다.
우노앤컴퍼니(114630)는 주주제안으로 현금·주식배당과 사내이사·감사선임이 안건으로 올라왔다. 회사 유보금은 늘어나는데 주가는 공모가를 밑돌고 있다는 게 제안자의 설명이다. 임원 연봉 인상도 문제 삼으며 이사보수한도를 5억원(회사안 20억원)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미래아이앤지(007120)는 20일 예정된 정기주총을 열지 말고 이사 수를 늘리는 안건을 상정하라는 가처분신청이 제기돼 법정 다툼도 벌이게 된 상황이다.
정기추종에서 주주제안이 늘어나면서 회사 대응 또한 신속하게 변한 모습은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주주제안 과정에서 불거진 소극적인 주주친화정책 지적에 대해 적극 해명하며 주주와 소통에 노력을 기울이는 양상이다. 주주제안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다른 주주들이 현명한 판단을 내려달라며 의견도 개진했다. 한 상장사의 경우 현금 배당액을 늘리라는 주주 제안이 들어온 후 배당액을 50% 올리기도 했다. 소액주주 연대가 갈수록 단단해지면서 이들 의견을 무시할 수 없게 된 것이 주된 이유다. 한 코스닥 상장사 IR담당자는 “지금도 감사 3% 의결권 제한제도가 있고 개인주주 결집이 강해지면서 더 이상 의견을 묵살하기만 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주주 소통이 선택이 아닌 필수임을 강조했다. 향후 상법 개정안 개정시 전자투표제 의무화나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지분 대결에서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처지가 된다.
성숙한 주주행동주의가 정착돼야 한다는 의견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주식 농부’로 불리며 슈퍼개미로 알려진 박영옥 스마트인컴 대표는 본인이 주주로 있는 회사들을 상대로 일제히 주주제안을 요구했다. 조광피혁의 경우 주당 2000원의 현금배당(회사안 100원)과 액면분할을 제안해 이미 안건에 상정됐다. 교보증권(030610), 대륙제관(004780), 코엔텍(029960) 등에게도 배당 확대를 요구했다. 상당량의 지분을 보유한 그의 ‘입김’에 소액주주들이 응원을 보내고 있지만 박 대표는“당장 표 대결로 몰고 가 배당액을 올려서 차익을 얻는 게 목적이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박 대표는 “기업들이 발행시장과 달리 유통시장에서는 주주를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다”며 “실적이 꾸준한 곳들은 선진국 수준으로 배당성향을 높여 성과 공유를 고민할 때가 됐다고 알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투자자도 단기 차익만 얻으려는 행태에서 벗어나 되는 기업에 투자해 성과를 공유하는 성숙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의견이다. 실제 부탄가스업체 태양(053620)에게는 동일 업종 계열사 세안산업과 합병을 제안했다. 자전거 사업이 부진한 참좋은레져(094850)에게는 숍인숍 도입, 첼로 자전거사업 분리 등의 조언을 건넸다. 그는 “되는 기업에 투자해 성과를 공유하면 충분히 돈을 벌고 노후 준비도 할 수 있다”며 “중장기 관점에서 기업 성과를 공유하는 주인의식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