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증세부담에 골드만삭스도 월가 떠나 플로리다로
by이준기 기자
2020.12.07 18:29:22
'80억弗' 자산운용 부문 플로리다行
원격근무 경험에 적은 세금도 매력
부유층 은퇴자 유입 많아…'노다지'
'금융 허브' 뉴욕의 명성 추락하나?
[이데일리 이준기 기자] “현재 맨해튼에는 9·11사태 이후 가장 많은 사무실이 비어 있다.”(블룸버그통신)
미국 금융회사들이 잇달아 월가(街)가 있는 미국 뉴욕 맨해튼을 떠나 플로리다주(州)에 새 둥지를 트고 있다. 급기야 월가의 간판격인 골드만삭스까지 핵심 조직을 플로리다로 보내기로 하면서 월가의 플로리다행(行) 대열에 몸을 실었다. 골드만이 월가에 미치는 파급력을 감안하면 플로리다가 ‘제2의 월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관측마저 나온다.
7일(현지시간) 블룸버그 등 미 언론에 따르면 뉴욕에 본부를 둔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가 자산운용 사업부를 플로리다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재 골드만은 마이애미 인근 포트로더데일이나 팜비치카운티를 새 사무실 후보군에 올려 놓고 둘러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자산운용 사업부는 연 매출이 약 80억달러(약 8조6600억원)에 달할 정도로 골드만 내에서도 비중이 큰 파트다. 그럼에도, 골드만이 과감한 결단을 내린 데에는 무엇보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과정에서 배운 ‘원격근무’ 경험이 밑바탕이 됐다는 분석이다. 굳이 한 건물을 모여 있지 않아도 업무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굴러가자 큰 고민 없이 결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물론 그 배경에는 뉴욕의 막대한 세금도 한몫했다. 플로리다행(行)은 금융사로서는 꽤 큰 세금비용, 즉 돈을 아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뉴욕주와 뉴욕시는 코로나19 사태 속에 추가 세수 확보에 나설 공산이 크다. 금융사로서는 가뜩이나 18%와 6%씩의 증권 거래세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 증세 부담을 떠안아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 골드만이 플로리다주 당국과 세제 혜택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협의에 나선 이유다.
은퇴자를 비롯한 부유층 유입이 많은 폴로리다가 새로운 시장이 될 것이란 기대도 있다. 중개업자인 벤 브리드랜드는 “인생 대부분을 동북부에서 산 뒤 플로리다 등 남부로 이동하는 인구층이 있다”고 했다. 실제로 플로리다주는 뉴욕과 달리 개인소득세·자본이득세 등을 부과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부유층으로선 구미가 당길 수 밖에 없는 곳이다. 뉴욕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가와 온화한 기후도 매력적이다.
같은 맥락에서 골드만은 플로리다와 여러 환경이 비슷한 텍사스·댈러스주 등을 자산운용 조직의 이전 장소로 택할 수도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이와 관련, 골드만 측 관계자는 블룸버그에 “미 전역의 고부가가치 지역에서 더 많은 일자리를 찾는 전략을 실행하고 있다”면서도 “현재로서는 구체적으로 발표할 내용은 없다”고 했다.
이미 사모펀드의 플로리다행은 가시화하고 있다. 미국의 행동주의 사모펀드로 유명한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내년 7월 본사를 맨해튼에서 플로리다 웨스트팜비치로 이전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폴 싱어가 설립한 엘리엇은 410억달러 규모의 자산을 운용하는 사모펀드로, 과거 삼성물산 합병 반대·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공격 등 소위 행동주의 투자활동으로 한국 내에서도 조명을 받은 바 있다. 다만 창업자이자 공동 최고경영자(CEO)인 싱어는 뉴욕 사무실을 두고 남을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기업 사냥꾼’으로 유명한 칼 아이컨도 올해 상반기 자신의 투자회사를 뉴욕에서 플로리다로 옮겼으며, 억만장자 헤지펀드 투자자 폴 튜더 존스, 데이비드 테퍼 등도 플로리다행에 동참했다.
일각에선 월가 금융사의 이전 배경에는 맨해튼 지역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도 자리 잡고 있는 만큼 뉴욕의 ‘금융허브’ 지위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는다. 블룸버그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스톤과 헤지펀드인 시타델도 플로리다주에서 거점을 확대해왔다며 월가의 간판인 골드만마져 플로리다에 새 ‘둥지’를 틀 경우 뉴욕의 명성은 과거와 같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