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EP “WTO 개혁으로 우리 농업 보조정책 제동 가능성…미리 전략 세워야”

by김형욱 기자
2020.06.30 17:48:38

8조원 이르는 농업보조 감축 대상 재분류 가능성
현 정책 재검토·수정 통해 문제 될 가능성 없애야

연합뉴스 제공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2018년 이후 본격화하고 있는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개혁 과정에서 관행적으로 허용되던 우리 정부의 농업 보조(금)정책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현 농업 보조정책을 WTO 농업협정문 기준에 맞춰 엄격히 적용한 후 문제의 소지가 있는 정책은 재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책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30일 이 내용을 담은 ‘WTO 개혁 쟁점 연구: 농업보조 통보 및 개도국 세분화’ 연구보고서를 펴냈다.

WTO는 1995년 출범 이후 무역자유화에 주요한 역할을 해왔으나 최근 체제 개혁 논의가 제기되고 있다. 중국이 개발도상국 특혜를 활용해 WTO가 제한하고 있는 자국 산업에 대한 광범위한 보조금 지급을 통해 자국 산업을 키우면서 WTO 규정을 상대적으로 충실히 준수해 온 미국 등 서방 선진국의 불만을 샀기 때문이다. 수출 주도 경제인 우리 역시 WTO 체제 약화를 우려해 여기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문제는 WTO 체제 개혁 과정에서 우리 정부의 농업보조 정책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 정부는 2015년 기준 8조2033억원 규모 농업보조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관행적으로 이중 약 90%를 허용보조(Green Box)라고 WTO에 통보해 왔는데 WTO가 규정을 엄격히 적용한다면 이중 상당액이 차츰 줄여야 할 감축 의무가 있는 감축대상보조(Amber Box)로 재분류돼 다른 나라로부터 지적받을 수 있다는 게 KIEP의 우려다.

KIEP는 이에 현 농업보조정책을 WTO 농업협정문 기준을 엄격히 적용해 재검토하고 문제가 될 여지가 있다면 보조금 성격을 재분류하거나 WTO 기준에 맞춰 운용 방식을 수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 과정에서 감축대상보조로 보일 가능성이 있는 정책은 허용보조로 전환하고 이를 질적으로 발전시켜야 농가 피해를 최소화하면서도 WTO 체제 개혁 과정에서도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KIEP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추진하는 농가경영안정사업 중 재해보험 관련 보조와 농업자금 이차보전, 농기계 임차, 쌀 고정직불과 밭 농업직불, 경영이양직불, 조건불리직불 등을 정밀 검토 대상으로 꼽았다.

농업재해보험은 기본적으로 허용보조로 분류할 수 있지만 재해발생 손실 보전 외에 보험료 일부를 정부가 대신 내주는 부분은 재해 미발생 땐 농가에 대한 금전적 혜택이 될 수 있어 감축대상보조로 분류될 수 있다고 봤다. 쌀소득보전 고정직불 등도 생산비와 연계한 소득 지지라는 점은 문제가 아니지만 국내외 가격이나 생산 요소에 연계되지 않아야 한다는 요건을 엄격히 적용해도 될지는 세부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KIEP는 WTO 개혁 과정에서도 쌀 등 우리의 민감 품목을 보호할 수 있도록 관련 협상을 준비해야 한다는 제언도 덧붙였다. 우리가 비록 개발도상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기로 했지만 쌀 등 민감한 소수 품목에 대해선 현 고율 관세 유지를 비롯한 상당한 예외 확보가 중요하고 이를 위해선 사전에 철저한 협상 대책과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모든 품목이 민감하다고 예외를 주장할 수 없는 만큼 국내 이해관계자의 합의를 통해 소수 민감품목을 정한 후 다른 WTO 회원국을 설득할 합리적 근거와 입증 가능 자료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며 “WTO 체제 개혁 관련 협상 때 선진국들과 함께 개도국 세분화 논의를 주도하는 방식으로 우리에 필요한 추가 예외 확보를 모색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