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로켓 ‘누리호’ 우주 날았지만…위성 궤도 안착은 '미완'으로

by노재웅 기자
2021.10.21 19:31:18

숨막혔던 15분 비행…1·2단, 페어링 분리 성공
발사대 하부 밸브 점검으로 1시간 연기 ‘진땀’
한 차례 연기 후 5시 정각 자동 점화 개시
비행 성공했지만, 모형 위성 궤도 안착에 실패
내년 5월 2차 발사 때는 진짜 위성 쏘아 올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순수 국내 기술로 설계·제작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II)가 21일 오후 전남 고흥군 봉래면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되고 있다. <사진=한국항공우주연구원>


[이데일리 노재웅 기자] 21일 오후 5시 15분경. 누리호가 역사적인 우주 비행에 성공했다. 다만 최종 목표인 모형 위성(위성 모사체)의 궤도 안착에는 실패하면서 ‘미완의 성공’으로 정부는 평가했다.

누리호(KSLV-II)는 순수 우리 기술로만 만들어진 한국형 발사체다. 8년 전의 나로호는 러시아 기술로 만든 엔진으로 발사했지만, 누리호는 심장 역할을 하는 엔진뿐 아니라 설계, 제작, 시험, 발사 운용 등 전 과정을 순수 우리 기술로 진행했다는 점에서 진정한 ‘우주 독립’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역사적인 순간을 앞둔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아침에는 구름이 많았지만, 점심께가 지나자 볕이 나면서 쾌청한 하늘이 드러났다. 기온 16도에 바람은 초속 4m로 비교적 잔잔하게 불면서 발사에 적합한 기상 조건이 만들어졌다. 발사를 기다리던 현장 관계자들의 표정도 함께 맑아졌다.

이때부터 비행 방향 중심으로 해상은 좌우 12㎞(폭 24㎞), 길이 74㎞ 안쪽이 통제됐고, 공역은 좌우 24㎞(폭 48㎞), 길이 95㎞ 안쪽이 통제됐다.

온라인에서도 국민의 응원 열기는 뜨거웠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이 공동으로 마련한 유튜브·네이버TV 중계방송에는 시작 전부터 5만 명이 넘는 시청자가 들어와 채팅으로 쉴 새 없이 응원 메시지를 올렸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주식 샀다. 제발 성공해라”처럼, 누리호 발사에 핵심 역할을 한 한국기업들의 주가 비상에 관심을 보이는 반응도 눈에 띄었다.

실제로 AP위성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시간외 거래에서 강세를 보였다. AP위성은 +9.77% 상승한 1만6850원에 거래를 마쳤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9.53% 상승했다.

발사 전 출입 통제 중인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사진=공동취재단 제공>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연기 소식이 들리며 나로우주센터는 일순간 초긴장 상태에 돌입했다. 오후 2시 22분 발사를 위한 첫 단계인 연료탱크 충전을 시작한 지 8분 만인 2시 30분, 1시간 발사 연기가 발표된 것.

용홍택 과기정통부 1차관은 브리핑을 통해 “발사관리위원회는 회의를 통해 누리호를 오늘 오후 5시에 발사하기로 최종 확정했다”고 발사 연기 소식을 알렸다. 발사대 하부의 밸브 점검 과정에서 추가적인 시간이 소요된 것이 원인이었다.

점검을 통해 최종적으로 발사체 정상을 확인한 뒤 발사 준비는 다시 원래 예정대로 착착 진행됐고, 3시 35분 연료 충전을 완료했다.

발사 약 1시간 전인 3시 55분에는 누리호를 수직으로 세웠다. 지지대인 이렉터(Erector) 철수를 시작한 것이다. 이렉터 철수와 함께 산화제 충전도 진행했다.

산화제 충전까지 끝난 4시 24분 이렉터가 완전히 철수됐고, 발사 10분 전 발사자동운용(PLO) 프로그램이 가동되며 장내에는 흥분된 목소리로 ‘카운트다운’ 소식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울렸다. 발사 중계석에 선 이차연 과기정통부 사무관은 “롤러코스터에서 떨어지기 직전의 기분”이라며 떨림을 감추지 못했다.

순수 국내 기술로 설계·제작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II)가 21일 오후 전남 고흥군 봉래면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0, 9, 8, 7, 6, 5, 4, 3, 2, 1”



PLO가 누리호의 정상 상태를 확인했고, 발사 성공을 염원하는 전 국민의 카운트다운과 함께 5시 정각 1단 엔진이 자동 점화됐다. 초당 드럼통 5개(1000㎏)의 추진제·산화제가 폭발하며 추력을 내기 시작했고, 발사대 아래쪽에서는 하얀 수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 수증기는 3300도의 고열에 발사대가 녹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지하에서 물이 분사되면서 발생한 것이다.

추진제·산화제 폭발 수초 만에 최대 추력 300톤에 도달한 뒤 누리호를 붙잡고 있던 4개의 지상고정장치(VHD)가 해제되면서 드디어 누리호가 하늘로 향했다. 누리호가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솟구치자 현장 관계자들과 국민의 함성소리가 누리호의 굉음과 진동을 뚫고 중계 스튜디오까지 전해졌다.

누리호가 발사된 지 약 2분이 지나자, 고도 59㎞에서 1단 로켓이 분리됐다. 1·2·3단 로켓 사이에 장착된 폭약이 적절한 시점에 터지면서 문제없이 단이 분리되는 게 최대 관건인데, 첫 번째 고비를 넘긴 것이다. 로켓의 절반인 1단 로켓에는 이 로켓에는 75톤급 엔진 4개가 묶여 있는데, 이 300톤 엔진은 누리호를 이륙시킬 수 있는 추진력을 갖고 있다.

몸체를 가볍게 하고 가속을 시작한 누리호. 이번에는 75톤급 엔진 1개가 장착된 2단 로켓의 분리를 향해 갔다.

발사된지 약 4분이 지났고, 고도 191㎞에서 위성(모사체)를 덮고 있는 페어링(위성덮개)이 분리됐다.

이후 약 4분 30초 뒤에는 고도 258㎞에서 2단 로켓이 분리됐고, 3단 로켓이 가동됐다. 이날 발사를 앞두고 가장 우려됐던 2단 로켓 점화가 성공된 순간이다. 누리호는 5시 7분 500km 고도를 지나 순항했다.

발사 약 15분이 지나, 700km 고도에서 마지막으로 1.5톤짜리 모형 위성이 분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를 통해 누리호가 역사적인 첫 우주 비행에 성공한 것으로 관측했으나, 이후 최종 확인을 통해 3단에 장착된 7톤급 액체엔진이 목표된 521초 동안 연소 되지 못하고 475초에 조기 종료됐음이 확인됐다. 이날 비행은 발사체 성능 확인이 주목표였기 때문에 진짜 위성은 싣지 않았다.

21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에 설치된 모니터에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II) 발사 장면이 생중계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 2, 3단 분리와 위성 분리까지 성공하면서 국내는 물론 세계 각국에서도 한국의 기술력에 찬사를 쏟아냈지만, 최종적으로 누리호의 첫 번째 도전은 실패로 기록됐다.

임혜숙 과기정통부 장관은 브리핑을 통해 “누리호는 이륙 후 1단 분리, 페어링 분리, 2단 분리 등 전 비행 과정이 정상적으로 수행됐으나, 3단에 장착된 7톤급 액체엔진이 목표된 521초 동안 연소 되지 못하고 조기 종료되면서 궤도에 안착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날 브리핑에서 정부와 항우연은 공식적으로 ‘실패’를 언급하진 않았다.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우주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장기적인 안목에서 흔들림 없이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울러 “우주탐사 프로젝트에 더욱 과감하게 도전해 2030년까지 우리 발사체를 이용해 달 착륙의 꿈을 이루겠다”며 “내년에 달 궤도선을 발사하고, NASA가 50년 만에 추진하고 있는 유인 달 탐사 사업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기술과 경험을 축적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2023년에는 NASA와 함께 제작한 태양관측망원경을 국제우주정거장에 설치하고, 2029년 지구에 접근하는 아포피스 소행성 탐사계획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누리호의 도전은 이번이 끝이 아니다. 이번 1차 발사에 이어 2차 발사는 내년 5월로 예정돼 있다. 2차 발사 땐 모사체를 띄웠던 이번 1차 발사와 달리 위성 투입 성능을 검증하는 0.2톤 규모의 작은 위성이 쏘아 올려진다. 이후 2027년까지 4차례의 추가 발사를 시도한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