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물자·의약품 끊긴 가자지구…230만 민간인 생존 위기
by방성훈 기자
2023.10.12 19:48:04
이스라엘, 하마스 잔혹행위에 가자지구 전면봉쇄
발전소 연료부족으로 가동 중단…물·식량도 고갈
전기·의약품 끊긴 병원 환자들 생명 위협
민간인 피해 급증하자 국제사회 공습·봉쇄 중단 촉구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가자지구 안에 안전한 곳은 아무 데도 없다. 더 이상 갈 곳도 없다.”
2살, 7살 된 두 아들과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기관이 운영하는 학교로 대피한 사브린 알-아타르(27)는 11일(현지시간) AP통신에 “언제 공습을 받을지 모르는 위험에 처하고 물과 식량이 부족한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이곳에 머물수밖에 없다”며 이같이 토로했다. 그는 1600명이 빽빽하게 들어찬 대피소에 도착할 때까지 여러 곳을 거치며 공습을 당하거나 식량과 물이 떨어지는 상황을 반복했다고 덧붙였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전쟁으로 가자지구 내 인도주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하마스로부터 기습공격을 당한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를 전면 봉쇄하면서, 이 지역에 대한 전기, 물, 식량 등의 공급이 끊겼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스라엘의 보복 공습은 멈추지 않고 있어 민간인 사상자가 연일 속출하고 있다. 외신들은 현지 참상을 전하며 한목소리로 “피란민들이 가자지구에 갇혀 ‘말라 죽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기습공격으로 희생된 민간인들의 참상을 공개하며 보복을 다짐하고 있다. 하마스에 납치된 인질들이 구출되기 전까지는 봉쇄도 풀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유럽연합(EU), 유엔 등 국제사회는 무고한 민간인 피해자가 늘어날 것이라며 이스라엘에 봉쇄 해제 및 공습 중단을 촉구했다.
|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한 소녀가 12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공습 이후에 두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 (사진=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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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현지시간) CNN방송, 로이터통신 등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이날 하마스에 납치된 인질들이 모두 구출되기 전까지 가자지역에 대한 봉쇄를 풀지 않겠다고 밝혔다. 앞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완전 봉쇄를 선언한 이후 이 지역으로 향하는 전기는 물론 식료품, 물, 의약품 등 모든 생필품 반입은 중단된 상태다. 가자지구 주민 약 230만명 가운데 약 80%는 이번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도 외부의 인도적 지원에 의존했는데, 앞으로도 상당 기간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자지구 내 유일한 발전소마저 연료 부족으로 가동이 중단됐다. 가자지구 내 최대 병원인 알-시파의 무함마드 아부 살리마 원장은 “전력이 끊기면 우리 병원은 대형 무덤이나 다름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군의 공습은 멈추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가자지구 내 1300여곳이 폭격을 맞았으며, 주로 민간인 주거지역과 통신시설 등에 집중됐다. 집을 잃은 이재민만 18만명이 넘는다. 국외로 탈출하려 해도 유일한 접경국인 이집트가 난민 유입을 거부하고 있다. 로이터는 현지 주민들의 말을 빌려 가자지구의 현 상황에 대해 “희망도 없고 탈출도 불가능하다. 폭력과 공포, 절망만이 남아 있을 뿐”이라고 전했다.
인도주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자국 민간인들 역시 무자비하게 희생당했다며 보복을 다짐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전날 대국민 연설에서 하마스가 어린 아이들의 머리에 총을 쏘거나 자국민들을 산 채로 불에 태우는 등 잔혹 행위들을 저질렀다며 강력 규탄한 뒤, 지상군 투입을 거듭 예고했다. 사법개혁 논란으로 대립했던 여·야마저 전시 통합 비상 내각을 꾸리기로 전격 합의했다.
이에 발맞춰 이스라엘 당국은 각지에서 벌어진 참상을 공개했다. 남부 지역의 한 키부츠(농업 공동체)에선 CCTV, 주민들의 휴대전화 영상·사진, 생존 주민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영유아 40명 이상이 몰살당한 것이 확인됐다. 영유아 일부는 참수당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스라엘 정부는 하마스의 이러한 행위들을 ‘학살’로 규정했다. 하마스에 잡혀간 민간인 포로도 최대 150명에 달하는 것으로 이스라엘 당국은 보고 있다.
| 이스라엘 군인들이 키부츠인 크파르 아자에서 하마스에 의해 살해된 시신들 옆에 서 있는 모습. (사진=알자지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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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스라엘이 공습을 지속하는 상황에서 지상군까지 투입하면 민간인 피해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현재까지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1200명, 부상자는 5600명으로 집계됐다. 이스라엘에선 군인 169명을 포함해 1200명이 목숨을 잃었고, 3700명이 다쳤다. 첫 공습이 이뤄진 직후인 지난 8일 양측 사망자 수가 총 1100여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불과 사흘 만에 두 배 이상 급증한 것이다.
이에 국제사회는 무고한 희생자를 늘려선 안된다며 이스라엘에 일시 휴전 및 공습 중단 등을 요구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전날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을 재확인하면서도 네타냐후 총리에게 전쟁법을 따를 것을 당부했다. 하마스가 이스라엘 민간인을 살해했다고 이스라엘도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학살하는 식의 동일한 대응을 해선 안된다는 의미다.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이스라엘의 스스로 방어할 권리는 국제법과 국제인도법을 준수한 가운데 이뤄져야 한다”며 가자지구에 대한 전기 및 식료품 공급을 중단하면 안된다고 촉구했다. 폴커 투르크 유엔 인권 최고대표도 “민간인의 생존에 필수적인 물품 공급을 막아 생명을 위협하는 포위 공격은 국제인도법에 따라 금지된다”고 거들었다. 이집트는 가자지구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위해 6시간 휴전을 제안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이집트·시리아·팔레스타인 등 22개 아랍권 국가가 참여하는 아랍연맹은 전날 긴급 외교장관 회의를 개최하고, 무력충돌이 아닌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각각 다른 2개의 국가로 공존을 추구해야 한다는 ‘2개 국가 해법’으로 복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